
콘크리트 벽과 마음의 경계
- 열네 살 두 소년이 건넨 평화의 언어
우리는 종종 ‘벽’이라는 말을 상징적으로 쓴다. 마음의 벽, 사회적 벽, 언어의 벽. 그러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현실에서 벽은 상징이 아니다. 그것은 총탄과 철근,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실체다.
샤론 E. 맥케이의 『친구의 벽』은 그 실체적인 벽을 배경으로 두 소년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한쪽 눈을 잃은 팔레스타인 소년 유수프, 한쪽 다리를 잃은 이스라엘 소년 샘. 둘의 만남은 우연이지만, 동시에 전쟁의 결과라는 점에서 필연이다.
이 이야기를 읽는 우리는 아이들이 견뎌야 했던 폭력의 일상성, 그리고 그 속에서 여전히 사람을 믿고자 하는 희미한 불빛을 마주하게 된다. 그것은 단지 전쟁의 이야기가 아니라, ‘분단과 편견’을 일상적으로 겪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유수프가 눈을 잃은 것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다. 이스라엘 군인을 향해 돌을 던지는 형을 말리려다 일어난 일이다. 폭력이 일상이 된 사회에서, 아이는 이미 정치적 존재로 태어난다.
샘 역시 다리를 잃었다. 그러나 그의 사고 또한 “전쟁 중이던 거리”에서 벌어진 것이다. 서로의 세계에서 ‘적’으로 규정된 상대방은, 실제로는 같은 상처를 입은 소년이었다.
맥케이는 이 이야기 속에서 전쟁의 피해자가 누구인지를 묻는다. 그것은 어른이 아니라, 증오를 물려받은 아이들이다. 작가는 단순한 ‘피해와 가해’의 구도를 넘어서, 폭력이 어떻게 세습되고 체화되는지를 조용하지만 날카롭게 포착한다.
그 세계에서 아이들은 학교보다 검문소를 더 자주 통과하고, 꿈보다 공포에 더 익숙하다. 그래서 유수프와 샘이 만난 병원은 단지 치료의 장소가 아니라, ‘대화가 가능해지는 유일한 공간’이다.
유수프와 샘은 예루살렘의 하다사 병원에서 같은 병실을 쓰게 된다. 서로에게 등을 돌린 채, 오직 미움으로만 존재하던 두 소년이 처음으로 말을 트는 곳이다.
병원은 상징적이다. 그것은 국경선 밖의 중립지대이자, 치유의 공간이다. 이곳에서 둘은 ‘적의 아이’가 아닌, 그저 ‘환자’로서 마주한다. 맥케이는 이 과정을 통해 독자에게 묻는다 — “우리는 언제 상대를 사람으로 보게 되는가?”
두 소년은 처음엔 사소한 농담조차 던지지 못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의 불편함을 넘어선 호기심이 싹튼다. 인간의 마음은 그렇게 작고 느리게 움직인다. 증오를 벽돌처럼 쌓는 데는 단 하루면 충분하지만, 그것을 허무는 데는 끝없는 용기가 필요하다.
유수프는 시력을 잃었다. 샘은 다리를 잃었다. 한 명은 세상을 보는 눈이 없고, 한 명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다리가 없다. 하지만 둘은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준다.
유수프가 샘의 휠체어를 밀며 병원을 나서는 장면, 샘이 유수프의 길잡이가 되어 예루살렘 구시가지로 들어서는 장면은 이 소설의 백미다. 그들의 여정은 상처의 교환이 아니라, 인식의 전환이다.
이 여정에서 두 소년은 자신이 믿어온 ‘역사적 진실’의 절대성을 의심하게 된다. 유수프는 샘의 예루살렘을 보고, 샘은 유수프의 팔레스타인을 본다. 그리고 깨닫는다. 자신들이 믿어온 ‘우리와 그들’의 구분이 얼마나 인공적인지.
결국 ‘눈’과 ‘다리’는 상처가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통로가 된다. 인간은 그렇게 결핍을 통해 성장한다.
이 책의 마지막 장면에서, 유수프와 샘은 서로의 허리띠를 묶고 함께 걷는다. 한 발을 내딛을 때마다 비틀거리지만, 결국은 나아간다.
이 장면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다. 그것은 평화란 거대한 협정이 아니라, 한 걸음의 의지에서 시작된다는 선언이다.
‘평화를 원한다면 적에게 말을 걸라’는 이스라엘 외무장관 모세 다얀의 말처럼, 맥케이는 우리에게 묻는다 — “당신은 언제 마지막으로 적에게 말을 걸었는가?”
『친구의 벽』은 청소년 문학의 외피를 썼지만, 어른들이 읽어야 할 책이다. 왜냐하면, 진짜 벽을 세우고 있는 건 어른들이기 때문이다.
『친구의 벽』은 전쟁의 비극을 아이들의 눈높이로 전환하면서도, 결코 순진하지 않다. 오히려 그 단순함 속에 진실이 있다.
이 책은 평화를 이야기하지만, 그 평화는 감상적이지 않다. 증오와 슬픔, 두려움과 분노를 통과한 뒤에야 비로소 도달할 수 있는 평화다.
성인 독자에게 이 책은 ‘타자에 대한 인식’을 되묻는다. 나는 내 벽을 허물 용기가 있는가? 나는 내 안의 유수프와 샘을 인정할 수 있는가?
『친구의 벽』은 어른들이 잊은 가장 단순한 진리를 상기시킨다 —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친구가 될 수 있었던 아이들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