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인간 관계에서 ‘가스라이팅’이라는 용어가 종종 사용되곤 한다. 이 말의 유래는 1938년에 극작가 패트릭 해밀턴이 발표한 "가스등(Gaslight)"으로 잉그리드 버그만과 찰스 보이어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보석을 훔치기 위해 남편은 윗집 여자를 죽이고 밤마다 그 보석을 찾기 위해 윗집을 뒤진다. 그런데 이 건물은 가스등(Gaslight)을 쓰고 있고, 건물 전체가 가스를 나누어 쓰는 구조라, 윗집의 가스등을 켜면 다른 집의 가스등은 희미하게 어두워진다. 아내는 밤마다 가스등이 어두워지고 윗집에서 이상한 소음이 들려오자 불안해 떨며 잠을 이루지 못한다.
하지만 남편은 자신의 행위가 드러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짐짓 모른 척하며, 아내에게 환청이라고 몰아간다. 처음에 긴가민가하던 아내도 반복되는 남편의 이런 세뇌에 점점 무기력해져 남편이 조종하는대로 스스로를 정신이상자라고 여기게 된다. 이미 가스라이팅된 것이다. 이렇듯 가스라이팅은 상대의 자주성을 교묘히 무너뜨려 타인을 통제하고 조종하는 것을 말한다.
가스라이터는 때로는 상대가 잘한 일도 평가 절하해서 기를 죽이고 그의 실수는 확대 해석해서 비난거리로 삼는다. 흔히 사이비 종교에서 교주가 자행하는 세뇌와 유사하다. 교주가 자신을 믿고 따르도록 하기 위해 신도의 언행을 지적해서 그의 정신을 완전히 지배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그 누구도 타인으로부터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안타깝게도 명백히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지만 스스로 모르는 경우를 종종 목격한다. 종교에 빠져 모든 재산을 헌납하고 가족과 절연한 채, 교주 밑에서 급여도 받지 못하고 허드렛일만 하는 경우, 연애 상대가 돈을 노리는 사기꾼이라고 주위에서 아무리 뜯어 말려도 도무지 듣지 않고 만신창이가 될 때까지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이용당하는 경우가 그러하다. 어리석고 한심하지만 이미 정신을 번쩍 차리고 났을 때에는 어쩔 수가 없다.
가스라이팅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시작한다. 그렇다면 가스라이팅을 당하지 않으려면 평소 어떻게 사람들과의 관계 맺음을 해야할까?
전문가들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기 존중감을 기르고, 소통의 경계를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먼저, 평소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존중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에 휘둘리지 않도록 자기 중심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고집스러움이나 독단과는 다르며 평소 사람들과의 소통이 전제되어야 함이 필수이다. 또한 곁에 단수가 아닌 복수의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어떤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할 때 소통을 통해 충분히 다각적으로 조언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 타인과 잘 지내고 싶어한다. 하지만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 때에는 단호하게 인간관계의 경계를 설정해야할 필요가 있음도 잊어서는 안 된다.
전문가들은 쉽게 가스라이팅이 되는 사람들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인정과 평화를 중시하는 착한 사람 유형, 자존감이 낮은 의존형 인간 유형, 감정 공감이 과도하게 높은 감성형 인간 유형 등이다. 혹시라도 여기에 해당한다면 가스라이팅 당하지 않게 평소 조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이진희
서울대학교 대학원 졸업(교육학박사)
현) 한겨레중고등학교 교장
현) 경기중등여교장회 회장
현) 한국공공정책신문 칼럼필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