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제된 행복, 사라진 감정
— 『기억 전달자』가 우리 시대에 다시 필요한 이유
로이스 로리의 소설 『기억 전달자』는 처음 출간된 지 3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현재형의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이다. 모든 것이 통제되고, 선택이 사라진 사회 — 작가는 이를 “늘 같음 상태(Sameness)”라 부른다. 그곳에서는 고통도, 색깔도, 감정도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 구성원은 효율성과 안정이라는 이름 아래 ‘동일한 삶’을 강요받는다.
이 완벽한 사회는 겉보기에 평화롭지만, 실상은 인간의 본질을 잃어버린 폐쇄된 체계이다. 사랑은 ‘비효율적’이라는 이유로 약에 의해 제거되고, 장애인이나 노인은 ‘임무 해제’라는 명목 아래 사라진다. 로리스 로리는 이 냉혹한 시스템을 통해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가를 묻는다. 행복이란 통제 속의 안정이 아니라, 감정과 기억을 통해 얻는 ‘진짜 인간성’임을 소설은 조용히 설파한다.
『기억 전달자』의 세계에는 색이 없다. 인간의 눈은 인위적으로 조절되어 색을 인식하지 못한다. 이는 다양성을 제거한 사회의 은유이다. 빨강, 파랑, 초록의 세계는 사라지고 모든 것이 회색빛으로 균일화된다. 작가는 이를 통해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가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준다.
언어 역시 단조롭다. 사랑, 고통, 열정, 희망 같은 단어는 사용되지 않는다. 사회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감정을 억누르고, 감정의 언어를 지워버렸다. 로리스 로리는 “언어를 잃는 것은 생각을 잃는 것”이라 경고한다. 이는 오늘날 SNS에서 감정이 단축된 이모티콘으로 대체되고, 생각이 짧은 문장으로 축소되는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주인공 조너스는 열두 살 생일에 ‘기억 보유자’로 선택된다. 그는 ‘기억 전달자’로부터 인류의 모든 기억을 받으며 잊혀진 감정의 세계를 경험한다. 눈부신 색, 따뜻한 햇살, 눈 내리는 풍경, 그리고 사랑의 기억까지. 그 모든 것은 사회가 ‘불필요한 혼란’이라며 제거한 것들이었다.
조너스는 고통의 기억을 통해 ‘사랑의 의미’를 깨닫고, 통제된 사회의 실체를 인식하게 된다. 그는 마침내 벽 너머의 세상으로 탈출을 결심한다. 그 여정은 곧 ‘자유를 향한 인간의 본능’을 상징한다. 기억이란 단순한 과거의 데이터가 아니라,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하게 하는 근원임을 조너스의 각성은 보여준다.
2025년의 오늘, 『기억 전달자』는 단지 청소년 소설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대한 예언서처럼 읽힌다. AI와 알고리즘이 인간의 선택을 대신하고, 데이터가 감정을 판단하는 시대. 우리는 이미 ‘늘 같음 상태’로 향하고 있지는 않은가.
로리스 로리는 뉴베리상 수락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벽으로 둘러싸인 세상, 즉 우리 모두 ‘늘 같음’ 상태로 안전하다고 느끼는 ‘오직 우리, 오직 지금’이라는 세상에서 살 수 없다.”
그의 말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기억 전달자』는 완벽을 꿈꾸는 사회가 결국 감정과 다양성을 희생시킬 수 있음을 일깨운다. 진정한 행복은 통제가 아닌 공감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다시 ‘기억’을 통해 인간다움을 회복해야 하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