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완장의 시초 : 불과 권위의 탄생
인류 문명의 역사는 불(火)의 발견과 완장(腕章)으로 상징되는 권위(權威)의 등장이라는 두 가지 혁명적 사건을 통해 압축될 수 있다. 완장은 단순한 장신구나 옷의 일부가 아니며, 인간이 집단생활을 시작하면서 발생한 권력과 역할 분담의 가장 원초적이고 시각적인 표식이다.

완장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청동기 시대의 장신구(Armlet)나 바이킹 시대의 재산과 서약을 상징하는 팔찌(Arm Ring) 등 다양한 형태가 있지만, 인문학적 통찰을 위해 우리는 그보다 더 먼 원시 시대로 시선을 돌릴 필요가 있다.
완장의 원시적 시작은 '차이'를 표시하는 행위 자체에서 비롯된다. ‘차이’라고 순화해서 이야기 했지만 ‘순수한 계급의 탄생’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무리를 지어 사냥하고 약탈에 맞서던 고대 인류에게 있어 생존은 곧 집단의 효율성에 달려 있고 이 효율성은 전투력을 가늠하는 원천이었을 것이기 때문에 완장을 찬 자의 책임감은 막중했을 것이다.

이때 가장 중요한 자원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불"이었다. 불을 피우고, 불을 관리하고, 불을 이용해 음식을 조리하는 능력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었다. 그것은 춥고 어두운 야생으로부터 집단을 보호하고, 소화하기 쉬운 음식을 제공하여 뇌의 용량을 증가시키며, 밤 시간의 사회적 활동을 가능하게 한 문명의 근원이었다.
불을 책임지는 자, 즉 '불의 수호자(The Guardian of the Flame)'는 곧 부족의 생존을 책임지는 리더였다.
이 원시적 리더는 아마도 부족민과 구별되는 어떤 표식을 지녔을 것이다. 사냥꾼이 특별한 깃털이나 문신을 했듯이, 불의 수호자는 팔에 뼈나 가죽으로 만든 띠를 둘러 "나는 불을 다루는 권위를 가진 사람이다"라는 시각적 신호를 보냈을 것이다. 이것이 곧 권위와 책임을 상징하는 완장의 원시적 형태가 아니었을까. 완장은 곧 불을 통제하는 리더십의 시각적 증명이었다.
2. 바비큐와 진화 : 완장이 부여한 권력의 맛
고대 인류에게 있어 불을 이용한 조리는 곧 바비큐(Barbecue)의 원형이다. 뜨거운 불에 고기를 익혀 먹는 행위는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을 넘어, 공동체 의식과 사회적 지위를 확인하는 의례였다.
인류학자 리처드 랭엄(Richard Wrangham)의 '요리 가설(Cooking Hypothesis)'에 따르면, 익힌 음식은 소화에 필요한 에너지를 절약하고 영양 흡수율을 높여 인간의 뇌가 커지고 진화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즉, 바비큐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 핵심 진화 동력이었던 것이다.

이 진화 과정에서 '완장'을 찬 리더는 더욱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 자원의 통제 : 누가, 얼마나, 어떻게 고기를 분배할 것인가?
* 질서의 유지 : 불 주변에서의 분쟁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 기술의 전수 : 불을 안정적으로 다루는 지식을 누구에게 전수할 것인가?
완장은 리더에게 이러한 통제권을 시각적으로 부여하는 도구였다. 불 앞에서 고기를 굽는 행위는 권위의 정점이었고, 가장 좋은 고깃점은 완장을 찬 자의 몫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인문학적 교훈이 등장한다. 완장으로 상징되는 권위는 생존과 질서를 위해 필수적이었지만, 동시에 '권력 남용'이라는 인간의 어두운 그림자를 낳았다.
불을 다루는 완장이 생겨나자, 리더는 공공의 이익을 넘어 사적인 이익을 위해 불과 고기의 분배를 통제하려 했을 수 있다. 이것이 지배의 시작이 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완장은 본래 '책임'을 표시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나, 쉽게 '특권'을 휘두르는 수단으로 변질되었다.
완장의 더 큰 문제는 오래지 않은 시간에 계급이 된 것이고 계급이 정치적 타락을 하면서 지배의 수단이 되어갔다는 것이다.
20세기 격동의 역사 속에서 '붉은 완장'이나 '나치의 완장'이 공포와 폭력의 상징이 되었던 것은, 원시 시대 불의 수호자가 가졌던 통제 권력이 극단적인 정치 권력으로 변형되면서 인간의 불행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3. 현대 바비큐와 완장의 교훈
현대에 이르러 바비큐는 더 이상 원시시대처럼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가족, 친구, 이웃이 함께 모여 교류하고 즐기는 하나의 사회적 의례이자 놀이가 되었다. 사람들은 마당이나 캠핑장에서 바비큐를 하면서 원시 조상들이 느꼈을 법한 불 주변의 따뜻함과 공동체의 유대감을 공유한다.
이 현대적인 바비큐 공간에서도 '완장'의 역할은 미묘하게 남아있다.

'그릴 마스터(Grill Master)'의 완장은 바비큐 파티에서 누군가는 숯불을 피우고, 고기를 굽고, 굽는 타이밍을 결정하는 책임을 맡는다. 그는 비록 천 조각이 아닌 집게나 토시를 착용할지라도, 일시적인 '그릴 마스터' 완장을 찬 셈이다. 이 역할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모인 사람들에게 최고의 맛과 경험을 제공하려는 자발적인 봉사와 책임감의 표현이다.
현대 사회의 완장은 이제 물리적인 띠가 아니라, '직함', '재산', '학력' 등 사람들의 마음속에 새겨진 유무형적 권위의 상징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윤흥길 작가의 소설 『완장』이 풍자하듯, 가장 하찮은 직책이라도 완장을 차게 되면 권력의 꿀맛에 취해 '완장질'을 하는 인간의 나약하고 사악한 본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바비큐와 완장의 연결 고리는 우리에게 중요한 인문학적 교훈을 던져준다.
권력의 근원으로 완장은 인류의 가장 중요한 자원인 '불과 생존'을 통제하는 역할에서 비롯되었으며, 권위는 본래 '책임'과 '봉사'를 기반으로 해야 한다.
인간 진화의 양면성에서 보면 불이 인간을 진화시킨 것처럼, 완장은 사회의 효율성을 높였으나, 반면, 권위의 남용(완장질)으로 언제나 공동체를 파괴할 수 있는 위협 요소가 되었다.
지금 성찰해 보면 현대의 그릴 마스터 완장이 자발적인 봉사와 나눔으로 실현될 때, 우리는 비로소 원시적 완장이 변질되며 잃어버렸던 공동체의 진정한 유대를 회복할 수 있다.
진정한 리더십은 완장을 차고 권위를 행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불(자원)을 모두와 나누고 모두를 따뜻하게 만드는 책임감 있는 행동에서 나온다. 다음 바비큐 파티에서 집게를 드는 사람은, 원시 시대부터 이어진 책임과 권위의 전통을 이어받은 '현대의 제사장 완장'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한 때 완장은 제복이 없을 때 소속원을 구별하는 표식이었을 때가 있었다. 소속원이란 공동운명체를 의미한다. 공동운명체란 삶과 죽음이 남의 것이 아니라 내 것으로 공존한다는 의미다. 완장은 내 팔뚝에 채워졌지만 타인의 생명이라는 의미도 있는 것이다.
태초의 완장은 ‘불의 수호자’로 신과 인간을 잇는 제사상이 였으며 권력이라기 보다 책임이 더 앞에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완장의 타락으로 인해 권력과 폭력이 되어 타인의 삶과 세상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다.
‘완장질’ 참 무지막지한 이야기다. 일제 강점기 그들이 팔뚝에 채워준 천쪼가리가 무슨 짓을 했는지 생각해 보면 알 일이다.
프로메테우스가 불을 훔쳐 인간에게 가져다 준 순간, 인간은 더 이상 짐승이 아니게 되었다. 짐승과 구분되면서 독보적 영장류로 진화하게 된 것이다.
인간에게 완장이란 그런 것이다. 계급적 권력과 폭력을 채워준 것이 아니라 공동운명체의 인간을 위한 책임을 맡긴 것이다.
불과 인간, 그 사이 제사장이라는 완장은 오늘날의 리더로 읽히지만 그 리더는 권략과 폭력이 아닌 존경과 찬사로 명예라는 것을 갖게되는 것이다.
저자
Shaka (차영기, 경기도 화성시, 샤카스바비큐)
프로바비큐어
바비큐 프로모터 겸 퍼포머
대한아웃도어바비큐협회 회장
바비큐 작가
Korea Barbecue University
Korea Barbecue Research & Institute
이메일 araliocha@gmail.com(010-2499-924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