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5일, 정부가 또 한 번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다. 발표 직후 가장 많이 들린 말은 “또 나왔네”였다. 집값을 잡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여전하지만, 국민은 더 이상 놀라지 않는다. 수십 번 반복된 대책 발표 속에서 시장은 이미 ‘정책 피로감’ 상태에 빠져 있다.
지난 10년간 부동산 정책은 거의 계절마다 바뀌었다. ‘8·2 대책’, ‘9·13 대책’, ‘12·16 대책’ 등 날짜가 곧 정책 이름이 된 역사는 그만큼 정부 개입이 잦았다는 뜻이다.
문제는 정책의 빈도가 아니라 신뢰의 누적이다. 단기적으로는 거래량이 줄고 가격이 안정되는 듯 보였지만, 6개월만 지나면 다시 반등하는 일이 반복됐다. 국민은 “잡겠다”는 말보다 “언제 또 바뀔까”를 먼저 떠올린다. 정책은 방향보다 일관성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정부는 잊고 있다.
‘10·15 부동산 대책’은 공급 확대와 규제 완화를 동시에 내세웠다. 생애 최초 구입자 대출 한도 상향, 양도세 감면, 재건축 규제 일부 완화, 도심 내 공급 활성화 등이 대표적이다. 언뜻 보면 균형 잡힌 접근 같지만, 실제로는 방향성이 모호하다.
공급 확대는 장기 안정에 도움이 되지만, 대출 완화는 단기적 수요 자극을 불러온다. 둘 다 추진하면 서로 상쇄될 위험이 있다. 예를 들어, 대출이 풀리면 실수요자뿐 아니라 투자 수요도 늘어난다. 그 결과 공급 효과가 시장에 반영되기도 전에 집값이 다시 오르는 현상이 생긴다.

부동산 시장의 핵심 변수는 세 가지다. 심리, 돈, 데이터. 정부는 언제나 ‘심리 안정’을 정책 목표로 내세운다. 그러나 심리를 결정짓는 것은 말이 아니라 숫자다.
현재 우리나라의 주택보급률은 104%를 넘었지만, 서울의 체감 공급률은 여전히 90% 수준에 머문다. 반면 실수요자의 구입 여력은 2021년 대비 20% 가까이 하락했다. 금리 인하 기대감이 확산되자 시장은 이미 “지금이 저점”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결국 정부가 발표문을 준비하는 동안 시장은 이미 움직인다. 과거엔 정책이 시장을 이끌었지만, 지금은 시장이 정책을 예측한다. “정부는 늘 세 달 늦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부동산 시장은 ‘정책의 시점’보다 ‘신뢰의 타이밍’에 반응한다.
부동산은 숫자보다 심리에 민감한 자산이다. 정부가 “잡겠다”고 말할 때마다 사람들은 오히려 “그만큼 오를 여지가 있다”고 해석한다. 반대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때는 “정책 여력이 없다”는 불안이 커진다. 정부의 말 한마디가 시장 심리를 좌우하는 이유다.
이제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대책’이 아니다. 정책의 일관성과 신뢰 회복이다. 한 번의 발표로 시장을 진정시키기는 어렵다. 정부가 시장과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중장기 로드맵을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언제까지 단기 처방으로 위기를 넘기려 한다면, 시장은 곧 정부의 의도를 선반영해버린다.
‘10·15 부동산 대책’이 진짜 효과를 내려면 이번 한 번의 이벤트로 끝나선 안 된다. 꾸준한 방향 제시, 투명한 데이터 공개, 예측 가능한 규제 환경이 필요하다. 부동산은 결국 신뢰의 게임이기 때문이다.
시장은 숫자가 아닌 신뢰로 움직인다
‘10·15 대책’은 단기 진통제의 역할은 할 수 있다. 그러나 근본 처방은 신뢰 회복이다. 정부가 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시장은 ‘이번에도 똑같을 것’이라 생각한다면, 어떤 대책도 약발이 들지 않는다.
정책은 언제나 시장보다 느리다. 이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시장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신뢰를 선도하는 것이다. 부동산 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규제의 강도도, 세율의 높낮이도 아니다. 오직 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