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함을 돌보는 단어들』이 말하는 영혼의 성장법
- - 늙어감이 아니라 ‘자라남’의 시간
“늙어간다”는 말에는 종종 사라짐과 약해짐의 그림자가 따라붙는다. 그러나 김주련 작가는 『약함을 돌보는 단어들』(성서유니온, 2025)에서 이 자연스러운 과정을 ‘자라남’이라 부른다. 『어린이를 위한 신앙낱말사전』으로 신앙 언어의 세계를 넓혔던 그는 이번 책에서 나이 듦이라는 주제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저자는 몸의 속도가 느려지는 대신 영혼의 움직임이 깊어지는 순간을 붙잡고, 그 속에서 신앙의 진짜 ‘동사들’을 발견한다. 늙는다는 것은 멈춤이 아니라, 다른 방식의 성장임을 이 책은 조용히 증언한다.
책은 “약해지다”, “시들다”, “잊다”, “앉다”, “있다” 등 24개의 동사를 따라가며 인간의 노년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이 단어들은 모두 약함을 상징하지만, 동시에 회복과 기도의 언어이기도 하다. 저자는 “신앙은 완성형 명사가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는 동사”라고 말한다. 믿음은 멈춰 있는 상태가 아니라, ‘견디다’, ‘기다리다’, ‘함께하다’와 같은 실천의 움직씨를 통해 자라난다.
이러한 관점은 약해짐을 단순한 결핍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몸의 느려짐은 영혼이 세밀하게 세계를 느낄 수 있는 감각의 확장으로 이어진다. 철학자 한병철의 말을 빌려 저자는 “부서져 구멍 난 자리에서 타자의 소리를 듣는 귀가 열린다”고 말한다. 약함은 닫힌 문이 아니라, 새로운 신앙의 감각이 깨어나는 통로인 셈이다.
특이하게도 이 책의 중심에는 ‘그림책’이 있다. 저자는 노년의 신앙을 이야기하면서 아이들의 그림책을 주요 도구로 사용한다. 처음엔 낯설지만, 곱씹을수록 설득력 있다. 그림책은 단순한 문장과 이미지로 존재의 본질을 직관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김주련은 “그림책은 어른의 영혼을 다시 어린 시절로 돌려보내는 문”이라고 말한다. C. S. 루이스가 “어른이 되어보니 동화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 것처럼, 그는 그림책을 통해 신앙의 순수한 언어를 되찾는다. 나이 듦의 길목에서 다시 동심으로 돌아가는 이 여정은, 단순히 추억이 아니라 신앙의 회복이다.
이 책의 마지막 단어는 ‘있다’다. 저자는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음이 은총의 기적이며 수고의 보상”이라고 말한다. 더 이상 업적을 쌓지 않아도, 존재 그 자체로 족하다는 메시지다.
이는 성과 중심의 사회에서 잊힌 인간의 본질을 되살리는 선언이기도 하다. 저자는 “사람의 쓸모가 그의 가치인 것처럼 여겨지는 시대”에, ‘존재의 가치’라는 전혀 다른 축을 제시한다. 노년의 삶을 존엄하게 바라보는 이 시선은, 신앙을 가진 이들에게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따뜻한 위로를 전한다.
『약함을 돌보는 단어들』은 신앙서이자 인문학서이며, 동시에 노년철학의 산문집이다. 약해진 몸을 탓하기보다 그 약함을 끌어안고 신앙의 언어로 새롭게 번역해 낸 저자의 문장은, 늙음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부드럽게 해체한다.
책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늙어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자라고 있습니까?” 이 물음은 단지 나이 든 사람에게만 던지는 질문이 아니다. 매일 조금씩 약해지는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존재의 성찰이다.
결국 나이 듦은 쇠락이 아니라, 깊어짐이다. 김주련의 문장은 이 단순한 진실을 가장 따뜻하게 증명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