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착한 가족’의 비밀,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가면을 쓰고 사는가
서하진의 소설집 『착한 가족』(문학과지성사, 2014)은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내면으로는 균열과 불안이 소용돌이치는 가족의 초상을 그린다. 작가는 가족을 사회의 축소판으로 바라보며, “착함”이라는 윤리적 외피 아래 감춰진 인간의 욕망과 자기방어의 심리를 세밀하게 해부한다. 표제작 〈착한 가족〉을 비롯해 〈아빠의 사생활〉, 〈슬픔이 자라면 무엇이 될까〉 등의 작품은 모두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작은 파열음을 통해 인간 관계의 본질을 탐색한다. 그 속에서 가족은 더 이상 온기의 상징이 아니라, 서로를 지키기 위해 서로를 속이는 ‘가면의 무대’로 드러난다.
서하진의 인물들은 언제나 ‘평범함’의 껍질 속에 있다. 그들은 착한 엄마, 자상한 아빠, 성실한 아내, 혹은 평온한 가장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평화로움은 허상이다. ‘착한 가족’의 아내는 가족의 안정을 위해 모든 것을 감내하며 헌신하지만, 그 헌신은 타인을 위한 사랑이 아니라 자신이 지켜야 할 ‘가면’이자 생존 방식이다. 작가는 질문한다. “과연 착한 가족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은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가족, 자신의 일상을 돌아보게 만든다. 우리가 지키는 평화는 진정한 이해의 결과인가, 아니면 서로에게 들키지 않기 위한 위선의 합의인가. 작가는 이 모순된 평화를 섬세하게 해체하면서, 일상의 균열을 마치 빛이 새어 나오는 틈처럼 보여준다.
서하진의 인물들은 모두 ‘가면’을 쓴다. 바람을 피우는 아빠, 암을 앓는 엄마, 병든 한의사, 작가 지망생 모두 자기만의 비밀을 감추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가면은 단순히 거짓을 숨기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오히려 서로를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한 일종의 방어기제다.
이 ‘가면 바꾸기’는 서하진 문학의 핵심 장치다. 인물들은 때로는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이며, 진심을 숨기지만 그 숨김 속에 또 다른 진심이 있다. 그들의 침묵은 죄책감이 아니라, 관계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윤리의 형태다. 작가는 이를 통해 인간관계의 근원적 아이러니를 포착한다. 즉, 진실을 말하지 않음으로써만 관계가 유지되는 사회 — 그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계다.
‘착함’은 이 소설집 전반을 관통하는 주제다. 하지만 그 ‘착함’은 도덕적 순수성이 아니라, 사회가 요구하는 생존 전략에 가깝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사랑받기 위해, 혹은 비난받지 않기 위해 우리는 ‘착한 사람’이라는 가면을 쓴다. 그 결과, 인간의 욕망은 억눌리고, 감정은 은폐된다.
〈아빠의 사생활〉에서 바람을 피우는 아빠는 분명 잘못된 행동을 하지만, 독자는 그를 미워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역시 ‘착한 아빠’라는 역할 속에서 자신을 소멸시킨 희생자이기 때문이다. 〈슬픔이 자라면 무엇이 될까〉에서 병든 여자는 가족을 위해 슬픔을 감추고, 〈모두들 어디로 가는 것일까〉의 한의사는 자신을 속이며 삶을 연명한다. 그들의 침묵은 굴종이 아니라, 인간이 끝내 감내해야 하는 윤리의 형태로 작용한다. 서하진은 그 침묵 속에서 오히려 인간적인 따뜻함을 발견한다.
평론가 정여울은 서하진의 인물들을 두고 “9회말 2아웃의 순간까지 자신의 욕망을 유예시키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했다. 이 표현은 그녀의 문학 세계를 정확히 요약한다. 『착한 가족』은 사건이 폭발하기 직전의 정적, 감정이 폭발하기 전의 ‘견딤의 시간’을 그린다.
그 견딤은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서하진은 가족의 붕괴를 비극으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 붕괴의 순간을 통해 우리가 진정으로 마주해야 할 ‘나 자신’을 발견하게 한다. 『착한 가족』의 인물들은 결국 혼자 남지만, 그 고독은 절망이 아니라 이해로 향하는 출구가 된다.
서하진의 문체는 담백하고 절제되어 있으며, 감정의 폭발 대신 침묵의 여백을 남긴다. 그 여백 속에서 독자는 자신을 투영한다. 그래서 이 소설은 단순한 가족 이야기나 불륜 서사가 아니라, ‘현대인의 초상화’이자 우리 모두의 거울이다.
『착한 가족』은 가족이라는 친밀한 공간을 통해 인간의 본질을 탐색하는 작품이다. 그곳에는 사랑이 있지만, 동시에 거짓이 있다. 평화가 있지만, 동시에 침묵이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서로를 지키기 위한 또 다른 형태의 이해다.
서하진은 도덕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다. 대신, 냉철한 거리감 속에서 인간을 따뜻하게 이해한다. 그녀의 소설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어떤 가면을 쓰고 있는가?”
그 질문 앞에서 우리는 비로소 깨닫는다. 가족은 완벽한 안전망이 아니라, 서로의 불완전함을 견디며 살아가는 ‘가면의 공동체’라는 사실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