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의 정신적 지주 대종교 -광주 MBC
지난 기사에 이어 독립군단 주요 인물 중 두 번째 이야기, 최해 선생님에 대해 알아 보려 한다. 단사 최해 선생님은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를 졸업하고 흥업단(興業團) 간부로 활동하였다.
참고로 신흥무관학교는 이회영 6형제의 공이 크다. 특히 6형제 중 이석영 선생님은 재산을 여기에 모두 쏟아 부으셨다고 한다. 망명 자금 마련을 위해 모든 재산을 헐값으로 팔아 약 40만 냥, 오늘날 금액으로 약 600억 원을 마련했다. 지금도 600억은 상당히 큰 금액이다. 당시 쌀 한가마니 가격이 3원이었다 하니 600억 재산의 가치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신흥무관학교는 일제 관헌의 감시를 피하고자 학교가 아닌 강습소라 칭했다. 하지만 신흥무관학교라고 모두 인식하고 있었다 한다. ‘신흥’이라 이름한 것은 신민회의 ‘신(新)’자와 다시 일어나는 구국투쟁이란 의미의 ‘흥(興)’자를 합친 것이다.
그리고 흥업단은 1919년 7월 만주에서 대종교인(大倧敎人)을 중심으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이다. 흥업단은 표면적으로는 이주 한인의 경제적 독립을 위한 산업진흥을 표방하였다. 그러면서 실제적으로는 이주 한인을 결속시켜 독립군 기지를 건설하기 위한 항일 무장투쟁의 배후지 역할을 하고자 하였다.
거의 모든 독립운동 단체가 일제와 중국의 눈치를 보고 항일운동을 전개했다. 아주 쉽게 말해 현재 우리나라에서 우크라이나라나 팔레스타인과 같은 난민들이 독립운동 하겠다고 우리나라에서 군사훈련이나 교육 사업을 해달라고 요구하면 허락하기 힘들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에서 한국인이 아닌 다른 국가 사람이 한국 땅에서 군사훈련은커녕 교육도 따로 받게 해 달라면 허락이 쉽지 않을 것이다. 몇 년 전 조선족 맘카페에서 태극기를 아이들에게 가르치지 말라 해서 문제가 된 적이 있다.(참고: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103056501H)
이 기사를 보고 나는 분노했다. 한국이란 나라에 살며 특혜를 누리면서, 중국인의 정체서은 유지하고 싶은 그들의 태도가 싫었다. 한국이란 사회적 안전망이 약한 나라에서 다문화라는 이름으로 엄청난 복지와 혜택(참고: 여성가족부 누리집https://www.mogef.go.kr/mp/pcd/mp_pcd_s001d.do?mid=plc503&bbtSn=704995)이 있는 것을 알기에 화가 났다.
한민족 문화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도 화나는데 무장을 하고 군사 훈련을 한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허락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당시 중국도 비슷한 상황이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그래도 독립운동가의 열정과 헌신 덕에 일부 중국 지도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고, 군사 훈련할 수 있었다. 또 항일 무장투쟁을 같이 한다는 기치 아래 많은 독립운동가가 한중 합작 전투에 참여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독립운동가가 목숨을 잃고 부상을 입었다.
단사(檀史) 최해 선생님은 북로군정서 여단장(旅團長)에 선임되어 청산리전투(靑山里戰鬪)에 참가하였다. 1923년 5월 자유시 참변 이후 독립군 부대를 재정비하는 과정에서 조직된 단체인 고려혁명군에서 부관으로 활동하였다. 1930년부터는 독립군 자활이론(自活理論)을 제창하여 둔전제(屯田制)를 실시하고 병농일치(兵農一致)의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광복 이후 대동청년단(大同靑年團) 훈련대장으로 활동하였다.
선생님의 호인 ‘檀史’가 흥미롭다. 향나무 ‘단’이기도 하고 단군왕검을 가리키기도 하는 ‘단’자이다. 그리고 역사 ‘사’자를 쓰고 있다. 단기고사(檀奇古史)의 줄임말로도 볼 수 있는 단사를 호로 쓰셨다. 대종교에 참여하셨기에 한민족 뿌리인 단군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참고로 단기고사는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의 아우 반안군왕(般安郡王) 대야발이 8세기경에 편찬했다고 주장하는 역사서이다. 현재 원문은 사라진 상태이며, 해방 이후 출간된 국한문본이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우리 모든 고대 역사 자료를 일제가 수거해서 없앴기에 남아 있는 자료가 없다. 과거 책에서 언급되어 이름만 남아 있는 책도 많다. 이게 한민족 역사 연구의 비극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참고로 대동청년단은 광복 전과 후가 성격이 다르다. 이름만 같을 뿐 다른 단체인 것 같다. 대동청년단은 일제강점기에는 청년을 중심으로 항일운동을 한 비밀 단체였지만, 해방 후에는 정권과 결탁한 것처럼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