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우리의 숨결이자 얼굴
시월의 아침 공기는 유난히 맑고 서늘하다. 높고 푸른 하늘 아래, 계절의 깊이를 실감하는 이맘때면 우리는 달력에 새겨진 반가운 휴일, 한글날을 맞이한다. 그러나 한글날은 단순한 휴식의 기쁨을 넘어, 우리가 매일 숨 쉬고 말하는 모든 순간에 공기처럼 스며들어 있지만 너무나 쉽게 잊고 사는 근원적인 선물, '한글'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숙연한 성찰의 시간이다.
글이 없던 시대를 상상해 본다. 우리에게는 고유한 소리와 이야기가 있었지만, 그것을 오롯이 담아낼 그릇이 없어 소리가 되어 흩어지고 기억으로 희미해졌다. 소수의 지식인은 남의 글자인 한자를 빌려 학문을 뽐냈지만, 이 땅의 대다수 백성은 제 생각을 글로 표현할 길이 없었다. 이름 석 자를 적지 못해 평생 일군 땅을 빼앗기고, 억울한 사연을 가슴에 피멍처럼 안고 살아야 했던 이들의 침묵은 단순한 문맹 상태를 넘어, 영혼의 목소리가 갇혀버린 먹먹한 어둠이었을 것이다.
바로 그 어둠 속에서 한 위대한 군주는 백성의 아픔을 헤아렸다. 모든 백성이 저마다의 뜻을 자유롭게 펼치기를 바랐던 뜨거운 마음, ‘어여삐 여겼던’ 그 마음이 스물여덟 개의 소리글자로 피어났다. 훈민정음의 창제는 단순한 문자 개발이 아닌, 닫힌 입을 열어주고 갇힌 영혼을 해방시킨 위대한 혁명이었다. 혀의 위치와 입술 모양을 본뜬 과학적 원리보다 더 가슴 벅찬 것은, 그 바탕에 흐르는 ‘사랑’이라는 동력이었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우리 모두의 언어가 된 기적, 그것이 바로 한글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이 위대한 선물의 역사는 순탄치 않았다. 기득권층은 ‘언문’이라 폄하했고, 폭군의 시대에는 탄압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 설움의 역사는 나라를 빼앗기고 우리말과 글마저 금지당했던 일제강점기에 가장 아픈 방식으로 되풀이되었다.
그 암흑의 시절, 선조들에게 한글은 단순한 글자가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증명하는 마지막 ‘얼굴’이었고, 꺼져가는 민족의 혼을 붙잡는 실낱같은 ‘숨결’이었다. 모든 것을 빼앗긴 이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낸 것이 바로 우리의 글이었다는 사실 앞에서, 너무 흔해서 그 소중함을 잊는 오늘 우리의 모습은 부끄럽기만 하다.
그 기나긴 투쟁의 시간을 건너, 우리는 오늘을 살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스마트폰으로 메시지를 확인하고, SNS에 내 생각을 적으며, 사랑하는 이에게 마음을 전한다. 이 모든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 수백 년 전 한 임금의 고뇌와 수십 년 전 선조들의 투쟁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세계 최고 수준의 문해율을 바탕으로 문화 강국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가장 근원적인 동력 역시, 배우기 쉽고 쓰기 쉬운 한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우리가 누리는 이 모든 것은 거대한 역사의 빚 위에 서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한글날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이 위대한 선물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느냐고, 그 맑은 그릇에 무엇을 담고 있느냐고 말이다. 우리는 때로 날카로운 언어로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생각 없는 표현으로 공동체의 신뢰를 무너뜨린다. 사람의 숨결을 본떠 만든 글자로 사람의 영혼을 병들게 하는 역설을 너무나 자주 범하고 있다.
한글날의 진정한 의미는 우수한 문자를 가졌다는 자부심을 넘어, 그 글자를 창제한 마음, 즉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오늘 우리의 삶에서 실천하는 데 있을 것이다. 어둠 속에서 빛을 염원했던 백성의 마음과 그에 응답했던 군주의 마음이 시공을 초월하여 만나는 오늘, 우리의 숨결이자 얼굴인 한글을 더 소중히 여기고 아름답게 가꾸는 하루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삶이 계속되는 한, 우리의 이야기는 이 아름다운 글자로 영원히 쓰여질 것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