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호사밧의 영광에서 여호람의 몰락까지, 신앙의 계승은 왜 실패했나
유다의 왕 여호람은 아버지 여호사밧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그의 통치는 여호사밧이 세운 신앙의 기반을 무너뜨린 시대였다. 아버지와 할아버지 아사 왕이 평생 동안 쌓아올린 여호와 신앙의 전통은 여호람의 손에서 하루아침에 붕괴되었다. 그는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동생들을 죽였고, 유다 전역에 산당을 세워 백성을 우상 숭배로 이끌었다.
한 시대의 영광은 끝나고, 하나님을 떠난 통치는 몰락으로 이어졌다. 여호람의 생애는 신앙의 유산이 단순히 ‘전수되는 것’이 아니라 ‘지켜내야 하는 것’임을 보여주는 비극의 기록이다.
여호사밧은 유다 역사에서 손꼽히는 신앙의 개혁자였다. 그는 나라 곳곳에서 바알 숭배를 제거하고 여호와의 율법을 가르치는 교육 제도를 세웠다. 정치적으로도 외교적 안정을 이루며 강한 국력을 유지했다.
그의 통치 아래 유다는 평화로웠고, 백성은 하나님을 경외했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북이스라엘 아합 왕과의 정략결혼을 통해 ‘아합의 딸’을 며느리로 들이는 실수를 저질렀다. 당시에는 정치적 동맹을 위한 결정이었지만, 이 결혼이 여호람의 타락으로 이어지는 비극의 씨앗이 되었다.
역사는 종종 인간의 합리적 선택이 영적 관점에서는 치명적인 실수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왕위에 오른 여호람은 곧바로 자신의 형제들을 살해했다. 왕권을 안정시키기 위한 냉혹한 계산이었지만, 그 순간부터 여호람은 하나님의 보호를 잃었다. 그는 여호사밧이 제거한 산당들을 다시 세웠고, 백성에게 바알 숭배를 강요했다.
그의 통치 아래 유다는 점차 혼란에 빠졌다. 에돔과 립나가 반기를 들고 독립을 선언했으며, 국력은 급속히 약화되었다. 그러나 여호람은 이 위기 속에서도 회개하지 않았다. 그는 신앙 대신 권력과 세속적 힘을 의지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권력욕은 그가 지키고자 한 왕좌를 무너뜨리는 불씨가 되었다.
북왕국의 선지자 엘리야는 여호람에게 편지를 보냈다. 편지에는 여호람의 악행이 낱낱이 지적되었다. 그는 백성을 음란의 길로 인도했고, 자신의 형제들을 살해했으며, 여호사밧의 신앙을 배반했다.
엘리야는 그 결과로 재앙이 임할 것을 경고했다. 가족과 재산이 파괴되고, 여호람 자신은 중병에 걸릴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러나 여호람은 이 경고를 무시했다.
결국 엘리야의 말은 현실이 되었다. 블레셋과 아라비아 군대가 유다를 침략해 왕궁의 보물과 아내, 자녀를 빼앗았다. 여호람은 극심한 내병에 걸려 고통 속에 죽었고,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왕이었지만, 장례에는 영광이 없었다. 그가 평생 붙잡은 권력은 죽음 앞에서 아무 의미가 없었다.
여호람의 몰락은 단순한 개인의 실패가 아니다. 그것은 ‘신앙의 계승이 실패할 때 어떤 결과가 오는가’를 보여주는 역사적 경고이다. 여호사밧의 경건함도, 그의 개혁도, 후대에 전달되지 못했다.
신앙은 유산처럼 자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가정과 공동체가 매 세대마다 새롭게 세워야 하는 ‘관계’다.
오늘날 우리 사회 역시 신앙의 전통이 약화되고, 세속의 가치가 신앙을 밀어내는 현실 속에 있다. 여호람의 비극은 지금의 시대에도 울림을 준다. 신앙을 잃은 권력, 회개 없는 번영, 그리고 영적 타협은 결국 파멸을 부른다.
신앙의 계승은 단지 ‘믿음의 기억’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믿음을 ‘살아내는 것’임을 역대기는 묵묵히 일깨운다.
여호사밧의 시대가 ‘하나님과 함께한 영광의 시대’였다면, 여호람의 시대는 ‘하나님을 버린 몰락의 시대’였다. 두 세대 사이의 극명한 차이는 신앙의 계승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결국 여호람의 이야기는 한 왕의 몰락이 아니라, 신앙의 단절이 불러온 국가적 붕괴의 상징이다.
오늘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이 남는다. “우리는 무엇을 다음 세대에게 전하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