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이라 하지마라. 사후 학생 아니더냐

'학생'인가, '도생'인가: 삶의 자세를 결정하는 이름

판밖에서 성도(成道)하는 시대의 요구

공리의 덫을 넘어, '도생'의 시대 정신을 선언하다

 

도생의 선정화 빛꽃 수행 사례 발표

 

"이 세상에 학교를 널리 세워 사람을 가르침은 장차 천하를 크게 문명케 하여 천지의 역사(役事)를 시키려 함인데 현하의 학교 교육이 학인學人으로 하여금 비열한 공리功利에 빠지게 하므로 판밖에서 성도成道하게 되었노라." 증산도 도전

 

이 시대의 교육 현실에 던지는 이 엄중한 선언은, 오늘날 우리가 겪는 문명의 위기가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라 교육의 목적 상실에서 비롯되었음을 통렬하게 고발합니다. 학교는 본래 인간을 완성시켜 천지의 큰 역사役事, 즉 인류의 문명을 다음 단계로 진화시키는 성스러운 임무를 수행하게 하려고 세워졌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학교는 그 웅대한 비전을 상실한 채, 고작 '비열한 공리功利'를 추구하는 기술 훈련소로 전락했습니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 더 많은 연봉. 이 지극히 세속적이고 단기적인 목표들이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학생들의 영혼을 좀먹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공리주의적 굴레를 박차고 나온 곳, 이른바 '판밖'에서, 진정한 인간 완성의 길을 모색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바로 '동방 신선학교'와 같은 새로운 시대 정신의 출현입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사람을 학생學生이라 부릅니다. 학생學生이라는 말은 조선시대에 벼슬을 하지 않은 선비에게 유생幼生이라 부르던 것을 사후死後에, 생전에 벼슬하지 않은 사람에 대한 존칭으로 부르던 말입니다. 우리는 이 시대의 배움의 주체를 도생道生이라 불러야 합니다.

 

 

마고 삼신 할머니의 빛꽃 전수 이미지

 

도생道生은 단순히 '공부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도道, 즉 우주의 근원적 이치와 자신의 생명 본질을 깨닫고 그것을 삶에서 실현하며 완성해 나가는 구도자求道者입니다. 도생에게 배움은 단순한 지식 습득이 아니라, 자신의 잠재력을 활짝 열어 인간의 신성神性을 회복하는 수행修行입니다.

이름은 곧 정체성입니다. '학생'이 경쟁과 성공이라는 공리의 덫에 갇힌 존재라면, '도생'은 천지 광명光明을 자신의 삶 속에서 이루어내는 문명의 개척자입니다.

 

현대 사회가 추구하는 기술 문명과 물질적 풍요는 이미 그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물질 문명의 정점에서, 인류는 이제 정신 문명으로의 대전환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이 거대한 전환, 즉 천지를 크게 문명케 하는 역사는 더 이상 입시와 취업에 매몰된 지식인들이 해결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생명과 우주의 조화로운 원리를 깨닫고 실천하는 도생만이, 혼란과 위기의 시대를 넘어 인류를 광명의 새 문명으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학교는 이제 스스로 이 시대 정신을 자각하고, 학생들에게 비열한 공리가 아닌 천지의 도道를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학교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인류의 미래를 결정지을 진정한 교육의 미래는 암담합니다.

당신의 삶은 지금, '학생'의 얄팍한 공리를 좇고 있습니까, 아니면 '도생'의 웅대한 성도成道를 향하고 있습니까?

 

 


 

작성 2025.10.06 17:58 수정 2025.10.06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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