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Young: 약칭)은 한국인 청년이었고, 케서린(Ketherine: 약칭 Keth)은 미국인 아가씨였다. 영(Young)과 케스(Keth)라는 두 선남선녀(善男善女)는 서로 떨어져 있는 먼 거리만큼 서로가 만날 가능성도 멀고 멀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지금으로부터 약 50년 전, 200년 이상의 장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영국의 대기업, S그룹에서 일하는 동안 운명적인 만남을 가지게 되었다.
영(Young)은 아직도 케스(Keth)를 처음 만났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Welcome to Korea, Ketherine”이라고 적은 피켓(Picket)을 들고 김포공항 입국장 앞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케스(Keth)는 나타나지 않았다. 미국에서 도착한 승객들이 대부분 빠져나오자 영(Young)은 혹시나 자기가 든 피켓을 케스(Keth)가 못 보고 지나치지 않았나 싶어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그녀를 찾았다.
그때 누군가가 영(Young)이 든 피켓을 손가락으로 ‘탁’ 치면서 “Young, nice to meet you.”하며 나타났다. Young(영)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자마자 선 채로 얼어붙고 말았다.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을 뺨치는 절세가인(絕世佳人)이 그의 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처음 만났던 날부터 두 사람은 나이도 비슷했기 때문에 서로를 친구로 생각하고 Young(영)과 Keth(케스)라는 약칭으로 가볍게 부르기로 했다.
Keth(케스)는 한국에 머무는 동안 언제 어디를 가든 “한국 측 업무 파트너”였던 영(Young)과 함께 다녔다. 두 사람이 그렇게 가까워질수록 두 사람의 무역실적은 세계 각국에 있는 모든 지사 직원들이 부러워할 만큼 고공행진을 했다. 그렇게 무역실적이 고공행진을 할수록 Keth(케스)의 한국 방문 횟수는 늘어났고, 서로는 점점 더 가까워졌다. 그러나 회자필리(會者必離)라 했던가? 몇 년 후 케스(Keth)가 한국을 떠나기 어느 전날, 두 사람은 차(茶)를 마시면서 Young(영)이 먼저 말을 꺼냈다.
“케스(Keth), 미안하지만 난 곧 회사를 그만 둘거야.” 케스(Keth)가 깜짝 놀라면서 말했다. “뭐라구? Young(영), 도대체 무엇 때문에? 무슨 불만이 있어? 말해봐. 진급을 시켜 달라면 진급을, 연봉을 올려 달라면 연봉을 올려주도록 내가 적극 건의할 게.”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야. 공부를 더 할 작정이야.” 케스(Keth)가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더 좋은 직장, 더 좋은 직위를 준다는 곳에 가는 것이 아니라 공부를 더 하겠다고? 그런 일이라면 말릴 수도, 말리고 싶지도 않군.”
케스(Keth)는 결국 Young(영)의 결심을 꺾을 수도, 꺾어서도 안 되겠다는 사실을 알고 차분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너의 결심이 정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떠나는 이별의 선물을 하나 주고 싶은데 뭐 받고 싶은 게 있어?” “으으~음, 있어, 전쟁 책~” 케스(Keth)는 또 한 번 깜짝 놀라면서 “무슨 책~? 전쟁 책이라고? 제정신으로 하는 말이야?” “물론이지. 좋은 전쟁 책 한 권을 선물해 주면 정말 고맙겠어. 내가 전쟁 공부를 한 후 너의 나라 미국으로 쳐들어가면 선물을 준 대가로 너만은 꼭 살려줄게”
Young(영)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Keth(케스)는 너무도 기가 막힌다는 듯 소리를 버럭 질렀다. “Young(영), 너 미쳤어? 그게 될 법이나 한 말이야? 전쟁 공부를 해서 네가 세계 최강국 우리나라 미국을 쳐들어 온다고?” “그래, 그렇게 할 작정이야.” “이건 정말로 말이 안 돼. 지금이라도 마음을 돌려. 그동안 우린 정말 손발이 잘 맞았잖아. 동남아 어느 국가의 지사장으로 나가는 건 어때?” “Keth(케스), 그렇게 말해줘서 정말 고마워. 그러나 나의 결심은 변하지 않을거야.”
Young(영)과 Keth(케스)는 그렇게 헤어졌다. 그리고 Keth(케스)가 미국으로 귀국한 지 보름 후 쯤, Young(영)은 소포 한 박스를 받았다. 펼쳐보니 자기가 케스(Keth)에게 부탁했던 전쟁 책이었다. 그 전쟁 책의 제목은 『Atlas of Military stratage』(첨부사진 참조)였다.
Young(영)은 지금도 그 전쟁 책을 책장에 꽂아 놓고 보고 또 보면서 “미국으로 쳐들어가는 날, 너만은 꼭 살려줄게”라고 약속했던 자신의 말을 책임지겠노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동키호테(Don Quixote) 보다 더 무모하고 대책 없었던 Young(영)은 어느덧 80세의 노인이 되었다. 물론 케스(Keth)도 살아있다면 80세 가까운 노마님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Young(영)이 그녀를 못 잊고 있듯, 그녀도 Young(영)을 못 잊고 있을 것이다. 만일 지금 다시 두 사람이 만난다면 케스(Keth)는 이렇게 물을 것 같다. “Young(영), 언제 미국으로 쳐들어 올거야?” 그러면 Young(영)은 이렇게 대답할 것 같다. “멀지 않는 내일” “그 내일이 언제인데? 설마 영원한 내일은 아니겠지?” “지난 50년이 어제처럼 느껴지듯 그렇게 머지않은 내일”
천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는 Young(영)과 Keth(케스)의 이런 만남과 헤어짐은 꿈에도 잊지 못할 선남선녀의 기적같은 만남이었을까? 아니면 별난 놈과 별난 년의 만남이었을까?
그도 저도 아니면 먼 훗날, 한 편의 신화(神話)로 각색되어 인류사에 길이 남을 운명적 만남이었을까? 뭐라고요? 따뜻한 감동이 메마른 이 시대에 아름답고도 슬픈 그 스토리를 한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들면 대박 나겠다고요?
-손 영일 컬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