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하루도 버텼다.”
많은 부모들이 잠든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이 말을 속으로 되뇌인다.
눈을 뜨자마자 쏟아지는 집안일, 어린이집 등원 준비, 회사 회의, 저녁 준비, 그리고 다시 육아의 시작. 하루가 도무지 끝날 줄 모르는 마라톤 같다.
『조금 천천히 커줄래』(드로잉오뉴 지음)는 바로 그 지친 부모들의 마음 한가운데에서 말을 건넨다.
“괜찮아요, 조금 천천히 커도 돼요.”
그림 속 아이는 여전히 느리지만,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 그림을 바라보는 부모는 비로소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급해졌을까?”
요즘의 부모들은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너무 빠르게 달린다.
발달표를 보며 불안해하고, 또래와 비교하며 초조해한다.
하지만 아이의 성장은 마치 나무의 나이테처럼, 조용히 제 속도로 쌓인다.
그림 속의 아이처럼, 오늘 조금 넘어지고, 내일 조금 웃으며 자라난다.
부모가 해야 할 일은 그저 곁에서 기다려주는 것이다.
조금 늦게 피어도, 아이는 자라고 있다
아이의 성장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다.
드로잉오뉴의 그림에는 느리지만 단단한 하루가 담겨 있다.
때로는 울음으로, 때로는 침묵으로 표현되는 아이의 시간은 그 자체로 성장의 과정이다.
부모가 조급함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아이는 자신만의 속도로 살아간다.
육아는 정답이 없는 길이다.
다른 집 아이보다 말이 늦을 수도 있고, 글씨를 못 쓸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차이는 언젠가 자연스럽게 메워진다.
문제는 그 ‘차이’보다도, 부모의 마음이 불안에 잠식될 때 생긴다.
“남들보다 늦으면 안 된다”는 강박은 아이보다 부모를 먼저 지치게 만든다.
이 책의 그림 속 아이는 그렇게 말하는 듯하다.
‘엄마, 아빠. 나는 내 속도로 크고 있어요. 기다려 주세요.’ 그리고 그 말은 사실, 부모 자신에게도 필요하다.
아이를 기다려주는 일은 결국 자기 자신을 기다려주는 일이기도 하니까.
완벽하지 않아도 되는, 함께 자라는 시간
육아는 아이를 키우는 일이자, 자신을 다시 키우는 일이다.
『조금 천천히 커줄래』의 그림을 보다 보면 어느 순간, 부모 자신이 어린 시절의 자신을 마주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불안했던 아이, 사랑받고 싶었던 아이, 조금만 더 천천히 자라고 싶었던 그때의 나.
그 기억을 떠올릴 때, 비로소 ‘완벽한 부모’가 아닌 ‘진짜 부모’로서의 내가 된다.
부모가 완벽할 필요는 없다.
때로는 짜증 내도, 때로는 눈물 흘려도 괜찮다.
중요한 건 아이와 함께 자라는 그 시간의 진심이다.
그림 속 아이가 느리게 걸어갈 때, 그 옆에서 발맞추는 부모의 발자국이 바로 사랑이다.
그리고 그 느린 걸음 속에서 부모도 성장한다.
육아는 ‘잘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것’이다.
아이가 천천히 자라듯, 부모도 천천히 배우면 된다.
누군가는 말한다. “그림 한 장으로도 위로받을 수 있다”고.
그 말처럼, 『조금 천천히 커줄래』는 바쁜 일상 속에서 부모에게 쉼표 하나를 건네는 책이다.
하루 중 단 5분이라도 아이의 그림을 함께 바라보며, 그 속에서 서로의 숨결을 느껴보자.
그 5분이 결국 ‘함께 자라는 시간’이 된다.

육아는 기다림의 예술이다.
빠른 세상 속에서 아이가 천천히 자라는 일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그 느림 속에서 부모는 아이의 미소를, 손의 온기를, 성장의 빛을 다시 발견한다.
『조금 천천히 커줄래』는 단지 한 권의 그림책이 아니다.
그림을 통해 부모의 마음을 다독이고,
“괜찮아요, 당신도 천천히 자라면 돼요.”라는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거울이다.
아이도, 부모도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오늘도 버텨낸 당신에게,
“조금 천천히 커도 괜찮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