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해 국립한글박물관 한뫼 이윤재 선생님 소개글 -약산소식지 허예주 기자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돌아가신 분으로 이윤재 선생님과 한징 선생님이 있다. 오늘은 한뫼 이윤재 선생님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개인적으로 김해 한글박물관을 방문하기 전까지 이윤재 한글학자를 몰랐다. 그럴 때마다 우리나라 교육과정은 왜 이 정도로 독립운동하고 항일운동 한 분들을 제대로 알리지 않는지 궁금하다. 이분들의 삶이 역사고, 글이 국어 문학이고, 노래가 음악이다. 이것을 교과서에 가르치고 또 가르쳐서 한민족의 정신, 얼을 알게 하는 일을 해야 하는 게 정상적인 나라가 아닐까 생각한다.
김해 출신 한뫼 이윤재 선생님은 한글학자 이전에 독립운동가이다. 1888년에 태어나 서당에서 학문을 시작하여 신학문을 배웠다. 그리고 교사로 조선어와 역사를 가르쳤다. 교사 시절 삼일 만세 운동을 주도하여 옥살이했다. 옥살이 후 또 ‘조선독립선언서’를 배포하다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 후 일본 유학을 할 수 없어서 중국 유학을 했다. 그곳에서 안창호와 신채호를 비롯한 독립운동가를 만나 활동했다. 유학 후 귀국해서 다시 가르치는 일을 했다. 이때 독립운동하던 윤우열을 도와주면서 ‘갑종요시찰인(要視察人)’으로 지목 당해 일상을 감시당했다.
그런 와중에 안창호 선생님의 흥사단의 노선을 이은 수양동호회에서 활동한다. 이로 인해 또다시 옥고를 치르셨다. 보석 출소 후 조선어사전 작업을 하던 중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다시 끌려가 순국하신다.
우리말과 역사를 가르치고 한민족 얼을 지키는데 평생을 보냈는데 그중 많은 시간을 감옥에서 보냈다는 게 가슴 아팠다. 그 와중에 조선어사전 작업과 관련 글을 신문이나 잡지에 기고하셨다는 것은 대단하다.
조선독립선언서 배포로 보안법 위반으로 잡혀갔을 때, 공판에서 이윤재 선생님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인류가 생존한 이상 그 개체와 종족을 보전할 의무가 있다. 조선 민족이 조선 민족의 독립을 자결하는 것은 범죄가 아니다. 조선 민족은 반만년의 역사를 이어온 당당한 독립 국가이므로 지금 타민족의 지배를 받을 이유가 없다. 그러므로 독립운동은 신과 인간에 대한 죄가 될 수 없다. 조선은 일본에게 병합된 이래 멸망에 빠져 들어갔다. 그런데 세계대전이 끝나고 민족자결의 문제가 생겼다. 이는 조선민족의 자구(自救)에 관한 실로 천재일우의 기회라고 말할 수 있다. 조선민족이 독립을 획득하는 것은 당연하다. 조선민족이 독립을 획득하는 것은 강탈당한 물건을 되돌려 받는 것과 같으므로 죄가 되지 아니한다. 독립선언서는 불온한 문서가 아니고 그것을 반포한 것도 보안법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다.
윌슨의 식민지를 가진 강대국을 위한 ‘민족자결주의’가 아닌 진짜 민족자결주의를 이야기한다. 이런 좋은 글을 어른이 되어서야 알았다는 게 안타깝다. 윌슨의 한민족에게 상처를 주었던 가짜 민족자결주의를 가르치는 교과서는 누가 만드는 것인지 묻고 싶다. 한민족의 좋은 말과 정신을 가르치는 교과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선생님은 청년들에게 늘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고 한다.
말과 글은 민족과 운명을 같이 한다. 일본이 조선의 글과 말을 없애 동화 정책을 쓰고 있으니 우리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우리글과 우리말을 아끼고 다듬어 길이 후세에 전해야 한다. 말과 글이 없어져 민족이 없어진 가까운 예로 만주족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우리의 말과 글에 대한 글을 써 두고 조선어사전을 편찬해 두면, 불행한 일이 있더라도 후에 이것을 근거하여 제 글과 말을 찾아 되살아날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민족의 말과 글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은 나라를 사랑하는 길이 되고 또 민족 운동이 되는 것이다.
엄혹한 시기에 한글을 지키고 한민족 얼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내준 한뫼 이윤재 선생님, 모진 고문 후유증으로 결국 돌아가셨다. 조금만 더 버티면 해방이었는데 안타까울 뿐이다. 이런 분이 계셨기에 지금 우리말이 살아 있다고 생각한다. 한글, 우리말을 지키는 것은 한민족이 할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