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시인 한정찬의 "시월에 쓰는 시"
시월에 쓰는 시
1.
바람의
노래입니다.
이제 상수常數가
시월이랍니다.
배꼽이 떨어질
시월,
어디 가겠습니까.
시월 큰 달은
농부의
굳은살입니다.
햇빛의
소식입니다.
이제 실수實數가
시월이랍니다.
이별의 다가올
시월,
어디 가겠습니까.
시월 큰 달은
농부의
보람입니다.
2.
해어지기 위해
초목은
가볍게
몸 말리고 있다.
몰라보게 얼굴이
수척해졌다.
해어지기 위해
산천은
겸손하게
목소리 낮춘다.
몰라보게 얼굴
바꿨다.
해어지기 위해
사람들은
감사하며
머리를 숙인다.
놀랍게 행동이
변했다.
3.
친구로 찾아온
맑은 하늘 아래
코스모스가
즐겁다는 듯
하늘거리고 있다.
친구로 부르는
바람 부는 언덕에
장미가
기다렸다는 듯
활짝 펴있다.
친구로 착각한
별 스친 거리에
낙엽이
반갑다는 듯
향기로 휘날린다.
4.
시월은
수채화다.
야무지게 안고 온
들깨를
한곳에 모아
도리깨로
툭툭 내리치고
검불 걷어내고
키로 켜
쭉정이 날리고
알곡을 선별한다.
시월은
민속화다.
얼기설기 엮인
고구마 줄기
잘라 낸 후
호미로
캐 내다보면
더러는 상처
모양은 들쭉날쭉
크기 견주며
상한 걸 골라낸다.
시월은
풍경화다.
짧아진 날씨
기운 햇살의
정오 무렵
하늘을 보면
가장 짧아진
그림자가
검은 밀도로
얼굴 응시하며
명암을 구분한다.
5.
훌쩍 떠나고 싶은
그런 날에는
날아오른 새도
포물선을 그으며
허공을 날아갔다.
사는 것은
포물선.
일곱 빛 곱고 고운
무지개 닮는 일.
훌쩍 떠나고 싶은
그런 날에는
투명한 누에도
하얀 실토해
고치를 지었다.
사는 것은
비우는 일.
스스로 작아지는
누에 닮는 일.
6.
시월에 친구 와
이야기한
삶 이야기가
아직도 유효하다.
풋감 떨어지고
익은 감이 대롱댄다.
풋대추 떨어지고
익은 대추가 출렁댄다.
작은 별 잠들고
큰 별이 눈 떴다.
오동잎 지고
보름달이 걸렸다.
시월에 친구 와
이야기한
삶 이야기가
아직도 유효하다.
7.
시월은
단추 풀고 산다.
몽골 유목민처럼
게르 천장에
하늘 문 열듯이
단추 풀고 산다.
시월은
큰 별로 산다.
의산 홍대용처럼
삶에 의문의
꼬리표 달듯
큰 별로 산다.
시월은
몸부림에 산다.
새처럼
창공에 오르며
포물선 그리듯
몸부림에 산다.
시월은
색깔로 산다.
수채화처럼
목화 다래에
무지개 뜨는 날
색깔로 산다.
8.
시월입니다.
복 받은 달이다.
시월 상달이다.
잘 익은 결실에서
좋은 향기가 납니다.
지난 계절이
한 결로 머물다간
자리마다 믿음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구름이 많아도
구름산일 수 없고
별이 많으면
별 무리일 뿐이지만
그래도
바위가 많으면
바위산이다.
시월입니다.
복 받은 달이다.
시월 상달이다.
9.
시월에
옷깃을 세워본다.
시월에
외로움처럼
가을비가
내리고 있다.
커피숍에서는
커피가 식어가고
그토록 굳게 믿은
사랑도 식어가는
시월에
옷깃 세운다.
10.
시월에는
허들이 참 많다.
떠도는 구름
스치는 바람
마음 둘 곳 없는
처량한 신세다.
모두
먼 길을 돌아와
쉼터에 머물고 있다.
시월 산장에서
자연의 오묘함을
노래한다.
11.
이별하는 것들에는
멈춤이 없다.
낙엽이 그렇고
알맹이가 그렇고
시간이 그렇다.
눈물이 그렇고
이별이 그렇고
발성發聲이 그렇다.
약속이 그렇고
설렘이 그렇고
기대가 그렇다.
추억이 그렇고
여정이 그렇고
웃음이 그렇다.
이별하는 것들에는
멈춤이 없다.
12.
시월은
이 지상에서
가장 고고한 성찰로
비워서 성숙한다.
시월이면
가득 차 빛나는
그 화려함도
떠나갈 채비를 한다.
시월에도
여전하게
원형의 달은 뜨고
큰 무리의 별은
모서리를 세워
밤이 적막한
그리움이 서성인다.
시월의
과일 향기는
낙엽 향기는
풀잎 향기는
간절한 기도로
따뜻한 가슴이다.
시월은
이 지상에서
가장 고고한 성찰로
비워서 성숙한다.
한정찬
□ 한국공무원문학협회원, 한국문인협회원, 국제펜한국본부회원, 한국시조시인협회원 외
□ 시집 ‘한 줄기 바람(1988)’외 29권, 시전집 2권, 시선집 1권, 소방안전칼럼집 1권 외
□ 농촌문학상, 옥로문학상, 충남펜문학상, 충남문학대상, 충청남도문화상 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