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동대문구 도자기 & 레이스돌 공방 '피어나리' 박규분 작가 © 피어나리 |
동대문구의 한적한 골목에 들어서면 따뜻한 기운을 머금은 작은 공간이 눈에 띈다. 바로 도자기와 레이스가 어우러져 탄생하는 공방 ‘피어나리’다. 이곳에서는 천을 도자기에 입혀 구워내는 특별한 기법으로 만들어진 ‘레이스돌(Lace Doll)’ 작품들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섬세한 주름 하나하나까지 살아 있는 인형들은 단순한 장식품을 넘어 작가의 삶과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는 예술 작품이다.
박규분 작가는 “피어나리는 제 삶과 시간이 피어난 꽃”이라며, 공방의 이름처럼 이곳에서 피어난 작품들이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작은 꽃처럼 남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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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스돌은 18세기 유럽에서 시작된 도자기 기법이다. 실제 레이스 천을 도자기 표면에 입혀 고온에서 구워내는 방식으로, 독일 드레스덴 도자기에서 특히 많이 사용되었다. 그 섬세한 질감과 고풍스러운 기품은 오랜 시간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 사진 = 피어나리 도자기 |
박 작가는 스페인 도자기 브랜드 야드로(Lladro) 인형을 수집하면서 처음 레이스돌을 접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취미로 수집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건 어떻게 만드는 걸까’라는 호기심이 생기더군요. 도자기에 레이스를 입힌다는 발상이 너무 매혹적으로 다가와, 결국 직접 배우고 시도하게 됐습니다.”
 ▲ 사진 = 피어나리 레이스돌 |
그녀는 유튜브와 서적을 통한 독학, 그리고 국내외 작가들에게 배운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적 미감이 살아 있는 자신만의 레이스돌 작업을 발전시켜왔다.
박 작가는 20년 넘게 도자기를 다뤄왔다. 작품 하나를 완성하기까지는 네다섯 번 이상의 소성과 세밀한 채색 과정을 거쳐야 한다.
- 흙을 물처럼 개어 석고 틀에 붓고 성형
- 초벌 소성 후, 본격적인 고온 소성(1,200도)
- 저온 소성으로 얼굴 채색과 세밀한 디테일 완성
- 금박 작업 등 장식 공정
 ▲ 사진 = 피어나리 레이스돌 |
‘피어나리’라는 이름은 꽃이 피어나는 모습을 닮았다. 박 작가는 자신의 삶과 시간이 고스란히 녹아든 작품이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꽃처럼 피어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 사진 = 피어나리 레이스돌 |
공방은 단순히 작품을 전시하거나 판매하는 곳이 아니다. 수강생들과 함께 작품을 만들고, 그 과정을 통해 삶의 기록을 나누는 장소다. “학생들이 작품을 완성한 뒤 눈을 반짝이며 기뻐하는 모습을 볼 때, 저 역시 다시금 처음의 설렘을 느낍니다.”
▲ 사진 = 피어나리 레이스돌 |
그녀의 작품을 본 한 관람객은 “마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박 작가는 그 말을 잊지 못한다. “작품이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누군가의 기억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작가로서 큰 의미와 보람을 느낍니다.”
 ▲ 사진 = 피어나리 |
박 작가는 지난봄, ‘경인미술관 아뜰리에’에서 ‘도자기로 그린 세계, 피어나리 작품전’(2025.3.26~4.1)을 열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18세기 유럽에서 시작된 레이스돌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들과 꽃 도자기 시리즈가 함께 소개되었다. 관람객들은 섬세한 주름과 따뜻한 색감을 머금은 작품들을 보며, “도자기가 이렇게 부드럽고 생명력 있을 수 있구나”라는 반응을 보였다. 박 작가는 “작품이 누군가의 삶 속에서 작은 꽃처럼 피어났기를 바란다”며 전시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 사진 = 피어나리 작품전 |
또한 최근 공예전에서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기도 했다. 그녀는 앞으로 체험 프로그램을 마련해 더 많은 이들이 직접 레이스돌 제작 과정을 경험하도록 하고 싶다고 한다. “손끝에서 천이 도자기로 변해가는 순간의 설렘을 많은 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 사진 = 피어나리 |
장기적으로는 한국적 정서를 담은 작품을 세계 무대에 선보이는 것이 꿈이다. “한국 도자기의 섬세함과 수공예의 아름다움을 세계인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작은 공방이지만, 제 작품이 세계 곳곳에서 꽃처럼 피어나기를 바랍니다.”
 ▲ 사진 = 피어나리 |
박 작가는 “작품을 보러 와주시는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잠시라도 제 작품을 통해 따뜻함과 여유를 느끼셨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고 전했다.
 ▲ 사진 = 피어나리 도자기 |
도자기에 레이스를 입히는 독창적인 기법,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박규분 작가의 삶과 시간. ‘피어나리’의 작품들은 화려하지 않지만 깊은 울림을 전한다. 작은 인형 하나에도 손끝의 정성과 따뜻한 마음이 켜켜이 담겨 있다. 동대문구의 이 작은 공방에서, 예술은 삶과 맞닿아 꽃처럼 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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