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문 앞에서의 갈등
지난 주, 친한 동생의 어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셨다. 오랫동안 지병으로 고생하신 끝이라 소식을 듣는 순간 마음이 무거웠다. 그동안 동생이 감내해 온 고통과 피로를 지켜보았기에, 그의 슬픔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곧장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마주한 동생의 얼굴은 핼쑥하게 야위어 있었다. 힘겹게 버텨온 시간이 그대로 묻어났다. 그의 모습을 바라보니 가슴이 저릿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마음 하나로 고인을 향한 애도의 시간을 가졌다. 나는 기독교인이다. 그래서 보통 조문 시에는 국화를 헌화하고, 고인을 위해 조용히 기도한 뒤, 상주에게는 목례로 인사를 전한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나도 모르게 향초를 붙이고, 고인에게 절을 올렸다. 이어 동생에게도 절하며 마음을 전했다.
형식보다 중요한 마음
그 순간 동생은 조심스레 물었다. “형, 크리스천이 절해도 돼?” 나는 대답했다. “그게 뭐가 중요하니. 형이 지금 하고 싶은 건 네 마음을 위로하는 거야. 네가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그 마음을 담은 거야.” 짧은 대화였지만, 그 안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종교적 형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픔 속에 있는 이를 향한 공감과 위로였다. 형식은 다를 수 있지만, 고통 앞에서 필요한 것은 마음을 나누는 일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조문을 마친 뒤 잠시 바람을 쐬며 동생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어머니를 보내드리는 시간이 버겁지만 곁에 있어 주는 이들 덕분에 조금은 위로가 된다고 했다. 나 또한 그 곁에 있을 수 있음에 감사했다.
신앙과 현실 사이에서
그러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음 한켠에 혼란이 일었다. “교회를 다니는 내가 이런 행위를 해도 괜찮은 걸까.” 신앙인으로서의 원칙과 현실 속 행위가 충돌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곧 마음속에서 확신이 찾아왔다. “하나님은 아실 것이다. 내가 그분을 떠난 것이 아니라, 친구의 아픔에 공감하고 고인을 존중하려는 마음이었음을. 하나님께서도 그 중심을 보실 것이라 믿는다.” 나는 차 안에서 기도를 드리며 스스로를 정리했다. 신앙인으로서 지켜야 할 경계는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동시에 사랑과 위로를 전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그날의 내 마음은 혼란 가운데 있었지만, 분명 누군가의 아픔을 함께 짊어지고자 한 진심이 있었다.
우리가 함께 고민해야 할 지점
이 경험을 통해 나는 배웠다. 위로는 형식보다 마음이 앞서야 한다는 것을. 그러나 동시에 내 행위가 누군가에게 혼란을 주지 않도록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신앙과 현실 사이의 갈등은 누구에게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갈등 속에서도 사랑의 중심을 지켜내는 일이다. 독자들에게 묻고 싶다. 우리는 때때로 신념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게 된다. 그때 무엇을 우선해야 할까. 형식인가, 아니면 마음인가. 위로는 정해진 방식이 아니라, 상대의 슬픔을 함께 나누려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삶 속에서 우리는 종종 신앙과 현실의 갈림길에 선다. 그러나 그 갈등 속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본질은 늘 ‘사랑의 중심’이다. 상대의 아픔에 공감하고, 마음을 다해 위로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신앙인의 모습이며,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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