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복 인생 10년, 31세 청년의 특별한 철학
서울 상도동 한 골목에 자리한 '진짜 전복'. 언뜻 평범해 보이는 이 식당에는 특별한 사장이 있다. 올해 31세인 김솔 운하푸드 대표는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전복 양식을 배우기 시작해 벌써 10년 넘게 전복 한 길만 걸어온 청년 사업가다.
“전복 도매업부터 시작해서 제조업, 그리고 지금 이 식당까지 하게 됐어요. 저희 3남매가 직접 개발한 메뉴들로만 운영하고 있습니다.” 완도에서 부모님이 운영하는 양식장에서 시작된 그의 사업은 이제 시흥의 제조공장과 상도동 식당을 아우르는 규모로 성장했다.
하지만 그를 특별하게 만드는 건 사업의 규모가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그만의 철학이었다.
배달기사님들은 저에게 정말 소중한 분이에요
인터뷰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배달기사에 대한 그의 생각이었다. “저는 그분들이 정말 고마운 분들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아무리 여기서 뭘 한다고 해도 그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배달을 보낼 수 있고, 고객님들도 쉽게 받아볼 수 있거든요.”
그는 도매업을 하며 겪었던 무시와 차별의 경험을 담담히 털어놓았다. “장화 신고 일하는 모습만 보고 저를 무시하는 경험이 있었어요. 그래서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생각했죠.” 김 대표는 자신의 가게로 음식을 픽업하러 오는 기사님들을 유독 따뜻하게 대한다.
감사의 마음을 담은 한마디를 건네는 것을 잊지 않는다. 더운 여름날에는 배달기사들에게 음료를 건네며 "날씨 더우시죠?"라고 말을 건넨다. 단순한 친절이 아니라, 진심 어린 감사의 표현이다. "말이 가장 쉽지만 상대에게 그만큼 잘 전달되는 수단도 없어요.“
7년간 쌓아온 '맞춤형 배려'
“7년 동안 하다 보니까 감이 생기더라고요. 딱 들어오시면 '아, 이분은 대화를 즐기시겠다' 또는 '조용히 식사하시길 원하신다' 이런 게 느껴져요.” 그의 고객 응대는 세심하다.
대화를 원하지 않는 손님에게는 조용히 지켜보다가 "실례합니다, 이거 더 드릴까요?" 정도로만 자연스럽게 접근한다. “말을 걸지 않기를 바라는 것과 신경 쓰지 말라는 건 완전히 달라요. 방치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김 대표는 고객마다 성향이 다를 뿐, 그 누구도 소홀히 대해서는 안 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다.
힘든 순간도 배움의 시간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고객은 암 투병 중인 며느리를 둔 할머니였다. “그 며느리분이 저희 죽만 드실 수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매주 죽을 포장해 가져가시며 고맙다고 하셨는데...” 그의 목소리가 잠시 무거워졌다.
“마음이 무거워질 때도 있어요. 하지만 음식에 대한 책임감을 더 크게 느끼게 되죠. 몸이 아프신 분들이 저희 음식을 찾는 경우가 많아서, 절대 음식으로 장난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까칠한 고객도 있었다. "여기는 무슨 기본이 안 돼 있네"라며 벽지 색깔까지 트집을 잡던 손님.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대화를 시도했다. 결국 그 손님은 암 환자로서 세상이 비관적으로 보인다고 털어놓았다.
“저희는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에요. 하지만 여기 오셨을 때만이라도 기분이 좋으셨으면 좋겠어요.” 그 후에도 그는 그 고객에게 변함없이 정성을 다했다. 배려가 상처로 돌아오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고 해서 김 대표는 고객을 원망하지 않는다.
“한쪽만의 잘못은 없다고 생각해요. 기회를 봐서 물어보죠. 제가 받은 불편한 감정도 건강하게 표현하면서요.” 상대의 입장을 듣고 이해하려는 시간을 갖는다는 그는 "고객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듣게 되면 이해가 안 되는 분은 아직까지 없었다"고 말했다.
웃음이 만든 긍정의 선순환
“항상 웃으려고 노력하니까 제 인생이 바뀌더라고요. 정말 긍정적이 되고, 옛날에는 앞에 차가 갑자기 끼어들면 짜증이 났는데, 지금은 '그럴 수 있지, 바쁜가 보다' 이렇게 생각하게 돼요.” 그의 따뜻함은 고객들로부터 고스란히 돌아온다.
인터뷰 중 그가 입고 있던 티셔츠와 양말도 단골 고객이 선물한 것이라고 했다. 늘 웃으며 인사를 건네니 발렛파킹 기사는 그를 알아보고 물을 건네고, 아파트 경비 아저씨는 볼 때마다 사탕을 준다고. “내가 먼저 배려했을 때 상대방이 따뜻하게 반응해주시고... 그런 게 정말 사람 사는 맛 같아요.”
요식업의 황금 삼각형: 청결, 맛, 배려
“이 세 가지는 우선순위가 아니라 동시에 가야 해요.” 청결을 위해서는 매일 주방 대청소를 한다. 처음에는 손님들이 주방을 잘 보지 않는다고 안일하게 생각했지만, 단골들이 하나하나 다 보더라는 걸 깨달았다.
“그분들이 '이건 이렇게 하면 좋을 것 같아요'라고 조언해 주시니까, 오히려 고마웠어요.” 맛을 위해서는 원물 관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싱싱한 전복, 좋은 쌀, 좋은 참기름으로 정성스럽게 조리하는 게 전부예요. 별다른 첨가물은 넣지 않아요.”
일터는 나의 또 다른 학교
일에 대한 그의 철학을 묻자,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학교 다니면서 참 많은 걸 배웠거든요. 선생님들에게 인품이나 가치관도 배우고, 좋은 분들 만나서 살아가는 방식도 배우고. 여기서 일하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배우고 싶은 것들을 계속 배울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그에게 고객은 단순히 돈을 지불하는 사람이 아니라 '일할 기회를 주는 분들'이자 '함께 성장하는 동반자'다. “고객분들이 와서 여러 이야기를 해주시잖아요. 그런 것들을 통해서 제가 계속 배우고 성장하는 거니까요.”
더 따뜻한 세상을 꿈꾸며
“요즘 너무 각박해요. 옆에 사람이 쓰러져 있으면 사진 찍어서 SNS에 올리는 세상이 돼버렸잖아요. 예전에는 부축해드리고 물 갖다 드리는 게 당연했는데...” 그가 최근 본 유튜브 영상이 큰 울림을 줬다.
배달 중인 오토바이 기사가 쓰러진 사람을 돕자, 댓글에는 "배달 음식은 어떻게 하냐"는 반응들이 달렸다. 그 기사가 남긴 답글이 인상적이었다. “그거 내가 물어주면 되지. 나는 그런 세상에서 살기 싫다.” "서로가 서로에게 조금 더 배려했으면 좋겠어요. 배려가 부담이 되는 세상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세상이요.“
100개 매장의 꿈, 그 너머의 진짜 꿈
“저만의 브랜드를 키우고 싶어요. 지금은 식당이 여기 하나뿐이지만, 백 개까지는 늘려보고 싶어요.” 하지만 그의 진짜 꿈은 매장 확장 그 자체가 아닐 것이다. 인터뷰 내내 그가 보여준 것은 사업가로서의 야망보다는, 사람에 대한 진심과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들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이었다.
에필로그: 보통 사람이 만드는 특별한 변화
31세 김솔 대표의 하루는 새벽 6시에 시작해 밤늦게 끝난다. 시흥 공장과 상도동 식당을 오가며 전복 밀키트를 만들고, 주문을 처리하고, 고객 문의에 답한다. 겉보기에는 수많은 자영업자 중 한 명일 뿐이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보통'이라는 단어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한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최선을 다하고, 작은 배려를 실천하며, 끊임없이 배우려 하는 자세. 그것이야말로 이 세상을 움직이는 진짜 힘이 아닐까. "여기 오면 기분이 좋아요"라고 말하는 고객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환하게 웃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진정한 성공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배려가 선택이 아닌 삶의 철학이 된 한 청년. 그가 일상에서 실천하는 작은 변화들이 모여, 언젠가는 우리 모두가 꿈꾸는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갈 것이라 믿는다.
“내가 먼저 배려하고 나서 그것만으로도 보람을 느낀다면, 그거면 된 것 같아요.
계속할 이유가 충분하다고 저는 생각해요.”
✍ ‘보통사람들’ 인터뷰는 친절이 보통이 되는 세상을 만들고 있는 사람들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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