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정의 90%는 장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다. 과장처럼 들릴 수 있지만, 최근 연구는 이를 뒷받침하는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특히 미국 MIT와 캘리포니아공대의 공동연구팀은 일부 장내 세균이 전기신호를 통해 뇌 신경세포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내용을 발표하며 큰 주목을 받았다.
즉, 장내 미생물이 단순히 음식물 소화를 돕는 것을 넘어, 뇌파에 영향을 주고 불안·우울·스트레스 조절에도 작용한다는 것이다. 뇌와 장을 잇는 새로운 통신 경로의 발견은 ‘마이크로바이옴 정신의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열고 있다.
장과 뇌는 연결되어 있다
장과 뇌는 ‘장뇌축(Gut-brain axis)’이라는 신경망으로 연결돼 있다. 이는 자율신경계, 면역계, 호르몬을 통해 뇌와 장이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구조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미생물(Microbiome)**이다. 우리 장 안에는 100조 개 이상의 세균이 살며, 이들은 대사산물, 염증조절물질, 신경전달물질까지 생성한다.
최근에는 일부 박테리아가 ‘전기신호’를 만들어내며 뇌파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MIT의 2024년 논문은 이 박테리아가 ‘외부 자극 없이도 전위 차를 통해 뇌의 감정 중추를 자극한다’고 밝혔다.
전기 발생하는 박테리아, 어떻게 감정을 바꾸나
전기를 발생시키는 박테리아는 일명 전도성 마이크로바이옴(conductive microbiome)이라고도 불린다. 이들은 세포막에서 산화-환원 반응을 통해 전류를 발생시키고, 이 전류가 장 점막을 통해 **미주신경(Vagus nerve)**을 자극한다.
미주신경은 장과 뇌를 직접 연결하는 신경망으로, 이 신호는 편도체, 해마, 전전두엽 등 감정 조절과 관련된 뇌 부위로 전달된다.
대표적인 전기생성 박테리아:
Lactobacillus reuteri: 뇌의 옥시토신 분비를 유도해 불안을 줄임
Bifidobacterium longum: 스트레스 상황에서 코르티솔 수치 감소
Escherichia coli Nissle 1917: 세로토닌 대사와 관련된 뇌파 패턴 변화 유도
불안·우울·스트레스도 장에서 조절된다
최근 유럽 신경정신의학회(ECNP)는 장내 미생물군이 불안장애 치료에 효과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공식 발표했다.
장내 박테리아 불균형은 세로토닌, 도파민, GABA 같은 주요 신경전달물질의 생성 저하를 초래해, 우울·불안 증상을 유발할 수 있다.
장내 미생물 다양성이 낮은 사람일수록 불안 민감도가 높음
프로바이오틱스 섭취군에서 우울 점수(PHQ-9)가 평균 30% 감소
미주신경 절단 실험에서 미생물 효과가 뇌에 전달되지 않음 → 경로 확인됨
이는 단순한 상관관계가 아닌, **원인 경로(causal pathway)**로 작용함을 시사한다.
감정을 조율하는 ‘정신 유익균’ 활용법
이제는 장내 세균 구성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감정 조절을 기대할 수 있다.
해외에서는 ‘사이코바이오틱스(Psychobiotics)’라는 이름으로 감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유익균 개발이 활발하다.
주요 유익균과 효과:
L. helveticus + B. longum 조합: 수면 질 개선, 불안 점수 감소
L. rhamnosus GG: 스트레스 상황에서 GABA 수용체 발현 증가
B. breve A1: 기억력 저하 개선 및 뇌 염증 억제
현재 미국과 일본에서는 사이코바이오틱스 기반 건강기능식품이 정서장애 환자의 보조치료로 사용 중이다.
장 건강이 감정 건강이다 – 일상 속 실천법
장내 전기신호 미생물 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려면 다음 습관이 중요하다:
식이섬유 섭취 증가 – 미생물 먹이가 되는 프리바이오틱스
발효식품 자주 섭취 – 김치, 요구르트, 된장 등에 유익균 풍부
가공식품과 항생제 남용 줄이기 – 장내 세균 다양성 저하 유발
규칙적인 수면과 운동 – 장내 박테리아 생체리듬 형성에 기여
장-뇌 연결 인식하기 – 감정 변화와 장 상태의 연관성 관찰하기
결론: 뇌보다 먼저, 장이 반응한다
감정은 더 이상 뇌에서만 시작되지 않는다.
우울감, 불안, 집중력 저하의 배경에는 장내 미생물의 불균형이 자리하고 있을 수 있다.
전기신호를 만드는 장내 세균의 존재는, 우리가 지금까지 감정 조절을 얼마나 편협하게 이해해왔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앞으로 정신과 진료실에는 항우울제 대신 ‘맞춤형 유익균 처방’이 놓일지도 모른다.
오늘 아침, 당신의 기분은 장이 보내는 전기신호였을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