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 깨달음의 길
한완규 목사
순종은 흔히 “시키는 대로 따르는 것”쯤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순종은 그저 억눌려서 따르는 행동이 아닙니다. 순종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태도이며, 동시에 우리 존재 전체를 새롭게 세우는 영적 원리입니다.
사울과 다윗의 이야기를 보면, 그 차이가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사울은 하나님께 묻기는 했지만, 기다리지 못했습니다. 응답이 없자, 결국 무당을 찾는 불법의 길을 걸었습니다. 겉으로는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라고 말했지만, 그의 마음은 이미 하나님을 떠나 있었습니다. 입술과 삶이 따로 노는 이 모순이 결국 사울을 무너뜨렸습니다. 불순종은 이렇게 사람을 무너뜨립니다. 기도의 형식은 남아 있어도 응답은 사라지고, 신앙의 언어는 있지만 영혼은 텅 비어 있습니다. 이것이 불순종이 낳는 절망입니다.
반면 다윗은 억울함 속에서도 끝까지 순종했습니다. 사람들에게는 배척당하고, 이유 없는 오해를 받았지만, 다윗은 억울함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보았습니다. 인간의 눈에는 수치처럼 보였던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다윗을 보호하시고 구별하셨습니다. 결국 그 배척은 비극이 아니라 섭리적 보호였고, 그 기다림은 결국 구원으로 이어졌습니다. 순종은 이처럼 억울함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순종은 단순히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더 잘 아신다는 사실을 믿는 행위입니다. 내 계산과 판단은 불안하지만, 하나님의 길은 언제나 선하고 온전하다는 것을 신뢰하기 때문에 걸어가는 길입니다. 그래서 순종은 우리를 무겁게 하는 짐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은혜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삶에서 가장 힘들어하는 순간은, 일이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을 때,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을 때, 억울할 때입니다. 그때 우리는 흔히 “내가 뭘 잘못했을까?” “왜 이렇게 안 풀리지?” 하며 답답해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 자리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새로운 길을 여시는 자리일 수 있습니다. 억울함 속에서도 믿고 기다리는 것, 이것이 순종의 본질입니다.
순종은 결코 크고 화려한 결단에서만 시작되지 않습니다. 작은 일상에서 드러납니다. 말씀 앞에 오늘 한 발 멈추고, 내 욕심을 조금 내려놓고, 사람의 눈보다 하나님의 눈을 바라보는 순간순간이 모여서, 순종의 길이 됩니다.
사울은 불순종으로 절망에 무너졌고, 다윗은 순종으로 구원의 길에 섰습니다. 오늘 우리는 두 길 앞에 서 있습니다. 내가 사울처럼 보이지만 껍데기만 남은 신앙의 길을 갈 것인지, 아니면 다윗처럼 억울해도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며 걸을 것인지 선택해야 합니다.
순종은 결국 깨달음의 길입니다. “내 길보다 하나님의 길이 더 선하다.” 이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우리는 억울함 속에서도 보호를, 기다림 속에서도 구원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순종은 억지가 아니라, 가장 안전하고 포근한 하나님의 품 안으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