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아가 몰려드는 그림책 시간
영아와 함께 있으면 늘 놀이가 이어지지만, 그중에서도 그림책을 읽어달라는 요청은 빠지지 않는다. 한 영아가 책을 들고 와서 같이 읽다보면 다른 친구들도 자연스레 몰려들어 귀를 기울인다. 그림책은 단순히 글자를 읽어주는 시간이 아니라, 영아가 세상을 배우는 특별한 창구다.
최근 영아와 함께 읽은 책 중에는 동물과 함께 살고 싶다는 주제를 다룬 그림책이 있었다. 영아의 눈은 반짝였고, 이야기를 따라가며 마치 자신도 동물 친구와 살고싶은 듯 즐거워했다. 그런데 한 대목에서 멈칫했다. 바로 동물을 “사 달라”는 표현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사달라’는 말이 던지는 질문
그림책 속 한 문장은 쉽게 지나칠 수도 있지만 교사로서 영아와 함께 읽을 때는 언어 하나하나가 마음에 남는다. 과연 동물을 ‘사는’ 게 맞을까? 동물은 장난감이나 물건이 아니다. 그런데도 어린 시절부터 무심코 “사 달라”는 말을 소비의 대상으로 익히게 된다면, 영아가 생명을 바라보는 시선에 어떤 영향을 줄까.
그래서 영아에게 물어봤다. “동물 대신 친구를 ‘사 달라’고 할 수 있을까?” 눈치 빠른 영아는 금세 “아니요”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해맑게 “저 돈 많아요~”라며 웃는 영아도 있었다.
흥미로운 건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친구’ 대신 실제 이름을 넣어보면 대부분은 조용해진다. 누군가의 이름이 들어가는 순간, ‘사 달라’는 말은 설 자리를 잃는다. 언어는 그렇게 관계를 바꾸고, 영아의 사고를 움직인다.
생명은 소비의 대상이 아니다
영아는 아직 세상의 질서를 배우는 과정에 있다. 책 속 언어는 그 질서를 이해하는 하나의 안내문이 된다. 동물을 ‘산다’는 말은 무심코 소비적 관계를 가르치고, 더 나아가 생명보다 소유가 앞설 수 있다는 관점을 심어줄 수 있다.
물론 모든 그림책이 이런 식은 아니다. 많은 책은 동물을 친구로, 자연의 일부로,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묘사한다. 하지만 영아가 세상을 바라보는 첫 언어이기 때문에 그림책 속 사소한 단어 하나가 영아에게 남기는 메시지는 결코 작지 않다.
함께 살아가는 길을 가르쳐야 한다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영아와 책을 읽으며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정말 동물을 살 수 있을까?” “동물은 물건일까, 친구일까?” 영아는 이런 질문에 스스로 대답하며 생각을 키워간다.
그림책은 그대로 둘 수도 있지만, 그 의미를 다르게 해석해주는 것이 교육의 힘 아닐까? 단어 하나가 영아에게 생명 존중의 시선으로 바뀌어 스며들 수 있다면, 그것은 작은 표현을 넘어서는 큰 울림이 된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단순히 동물이 동물원에 있거나 반려동물로 존재하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서로를 소유하지 않고, 각자의 자리에서 존중하며 더불어 존재하는 삶을 배우는 것이다.
영아에게 필요한 건 동물을 소유하는 기쁨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는 마음이다. 그림책 한 권이 그 마음을 열어줄 수 있다면, 그것은 사소한 단어 하나가 만들어낸 가장 값진 선물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