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마음은 지금 몇 %쯤 차 있습니까?"
이 질문을 받았을 때 대부분은 '그게 무슨 말이지?' 하고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그러나 하루에도 몇 번씩, 우리는 ‘짜증이 폭발했다’, ‘참다가 터졌다’, ‘더는 못하겠다’는 표현을 무심코 쏟아낸다. 마치 컵에 물을 계속 부으면 넘쳐흐르듯, 사람의 감정도 어느 순간 용량을 넘긴다. 하지만 문제는 이 감정이라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 관리도 못 하고, 관리하지 못하니 터진다.
현대사회는 감정을 쏟아낼 시간도, 공간도 충분히 허용하지 않는다.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숨기는 기술’이 오히려 직장에서의 덕목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러다 보니 많은 이들이 자신도 모르게 감정이라는 데이터를 계속해서 ‘백그라운드’에 쌓아두고 있는 셈이다. 이 감정의 누적이 바로 정서적 탈진이다.

정서적 탈진은 단순한 스트레스와 다르다. 스트레스는 일시적인 불쾌감이지만, 정서적 탈진은 무기력과 허무, 때론 냉소로 이어진다. 직장인 10명 중 7명 이상이 ‘정서적 소진’을 경험한다고 말할 만큼,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의 현상이다.
문제는 정서적 피로가 눈에 띄지 않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눈에 띄지 않기에 더욱 치명적이다. '그냥 피곤한 것 같아', '기분이 가라앉네' 하는 감정이 일주일, 한 달, 석 달 누적되면 이젠 '내가 왜 사는지 모르겠어'라는 식의 무력감으로 이어진다.
특히 SNS의 과잉 소통은 사람의 감정 그릇을 더욱 빠르게 채운다. 타인의 성공, 타인의 감정, 타인의 분노를 무방비로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쉴 틈 없이 압박한다. 정보 과잉 시대는 곧 감정 과잉의 시대다.
정서적 탈진을 막는 핵심은 ‘비움’이다. ‘채움’에만 집중하는 사회에서는 쉽게 간과되지만, 감정 관리의 시작은 자신을 비워내는 데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조건 감정을 없애는 게 아니라, 건강하게 처리하고 배출하는 법을 익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기를 쓰는 것도 한 방법이다. 글로 감정을 ‘가시화’하면, 흐릿했던 내면의 소리를 구체화할 수 있다. 또 의식적인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고요한 산책, 혼자 먹는 저녁, 핸드폰을 꺼둔 채 보내는 30분이 마음의 저장공간을 정리해 준다.
그 외에도 감정의 메모리 정리를 위한 방법은 다양하다.
감정노트 작성 : 하루 중 기억에 남는 감정 3가지를 적고 원인을 분석
‘No’라고 말하기 훈련 : 감정 그릇이 가득 찼을 땐 외부 입력을 막는 게 중요하다
디지털 디톡스 : SNS 단식은 마음을 비우는 강력한 도구다
진정한 감정 회복은 ‘여백’에서 시작한다. 그림에서 하얀 여백이 있어야 색이 돋보이듯, 인간도 정신적 여백이 있어야 감정이 살아난다. 감정의 여백이란 곧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다. 한계에 닿았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
이 여백은 단순히 시간을 비워둔다고 생기지 않는다. 의도적이고 반복적인 자기돌봄 습관이 필요하다. 하루 10분의 명상, 주말의 산책, 소소한 취미 생활은 ‘정서적 내구성’을 키운다. 뇌과학적으로도 명상과 같은 활동은 전두엽을 자극해 감정 조절 능력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음의 그릇은 크기보다도 ‘관리’가 중요하다. 아무리 큰 그릇이라도 비우지 않으면 썩고, 아무리 작은 그릇이라도 자주 씻고 비우면 늘 새롭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자기 감정에 얼마나 민감하고 정직하게 반응하느냐다.
“정서적 탈진”은 더 이상 특정 직군의 문제가 아니다. 누구나 살면서 마음의 용량이 한계에 도달할 수 있다. 우리는 스마트폰의 저장공간은 관리하면서, 마음의 저장공간은 왜 관리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