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거창하지 않아도 돼’ 남원 마실여행이 남긴 깊은 울림

어르신들의 ‘옆집 나들이’가 특별해진 날, 마을 간 연결과 공감의 여정

장은순 대표가 기획한 미순상회의 ‘마실여행’, 시니어의 일상을 바꾸다

사진, 이야기, 노래로 엮은 마지막 회차… 다시 오기를 바라는 마음만 가득

 

일상의 반경 안에서 울림을 만든 마실여행, 어르신들의 마음을 흔들다

여행은 반드시 먼 곳을 향해야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익숙한 공간을 낯설게 바라보고, 같은 지역에 살아도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던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경험은 때때로 장거리 여행보다 더 깊은 울림을 남긴다. 2025년 5월을 시작으로 8월 마지막 회차를 맞이한 ‘시니어 마실여행’이 바로 그러한 사례였다. ‘옆집에 놀러 가듯’ 시작된 이 마을 간 소규모 여행은 정서적으로 고립되기 쉬운 노년층에게 작지만 확실한 기쁨을 전했다. 나이와 건강, 경제적 제약 등으로 여행을 멀리 밀어두었던 어르신들은 그날, 낯선 듯 가까운 마을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었다. 거창하지 않아서 더 따뜻했고, 멀지 않아서 더 가까웠던 마실여행은 결국 ‘여행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다시 던지게 만들었다.


‘마실여행’이란 무엇인가, 시니어를 위한 지역형 정서 여행의 정의

‘마실’은 원래 이웃이나 가까운 곳에 잠시 다녀오는 일상적인 외출을 뜻한다. 그런 ‘마실’에 ‘여행’이라는 단어를 더한 ‘마실여행’은 시니어에게 있어 현실적이면서도 감정적으로 깊이 닿는 여행 형태로 자리 잡을 가능성을 품고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어렵거나 장시간 이동이 부담스러운 고령자들에게, 먼 관광지가 아닌 같은 지역 내의 또 다른 마을은 적절한 여행지가 될 수 있다. 이번 ‘남원 시니어 마실여행’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정서적 교류, 마을 간 탐색, 일상의 확장을 목적으로 기획됐다. 낯선 사람과 새로운 장소보다는, 낯익은 풍경 속 다른 삶의 이야기를 마주하며 정서적 공감을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시니어에게 맞춤화된 의미 있는 여행 방식으로 주목된다.

 

‘마실여행’ 프로그램 참여 소회 나누는 모습(사진제공=미순상회)


2025년 8월 남원에서 열린 시니어 마실여행, 그날의 현장 기록

2025년 8월 19일 화요일 오후 13시, 남원시 대강 방동마을과 주천 호경마을의 어르신 30여 명이 가든히카페에 모였다. 이번 일정은 온남원공동체공모사업의 일환으로, 남원시와 남원시공동체지원센터가 주관하고 미순상회가 주최한 시니어 대상 마실여행 프로그램이었다. 이날은 총 3회차로 진행된 프로젝트의 마지막 회차였으며, 어르신들 간의 교류와 감정을 공유하는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펼쳐졌다. 마을별 소개 시간에는 ‘우리 동네 자랑’을 통해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이어지는 ‘다른 마을 탐색’ 활동으로 서로의 문화를 이해했다. 현장에 전시된 1·2차 촬영 사진들은 참여자들에게 지난 만남의 기억을 되살렸고, 마지막 노래자랑 시간에는 웃음과 박수가 가득했다. 정해진 프로그램은 오후 4시에 종료됐지만, “이런 마실은 자주 가고 싶다”는 진심 어린 말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1차 마실여행 중 한복 입은 모습(사진제공=미순상회)

 


미순상회가 마을과 사람을 잇다 – 장은순 대표의 기획 의도와 실행 배경

남원에 살면서도 서로의 마을을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어르신들이 있다는 사실은, 지역 내 단절이 물리적 거리보다 심리적 거리에서 비롯됨을 보여준다. 미순상회 장은순 대표는 이러한 현실에 주목했다. 어르신들이 멀리 떠나지 않고도 가볍게, 그러나 의미 있게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자 '마실여행'을 구상했다. “나이들어 여행을 가고 싶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어르신들의 목소리는 이 프로그램의 출발점이었다. 여행이 아니라 ‘마실’이라 이름 붙인 이유도, 부담 없이 이웃 마을을 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2차 마실여행 중 교복입은 모습(사진제공=미순상회)

 

또한 육체는 노쇠해가지만 마음은 여전히 꽃다운 소녀인 어르신들에게, 잊고 지냈던 아름다움을 되찾을 수 있는 특별한 선물도 마련되었다. 곱고 예쁜 한복을 입고, 여고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교복을 다시 입어보는 시간은 단순한 체험을 넘어 정서적 회복의 순간이었다. 어떤 이는 "내 자식이 입었던 교복을 내가 입어볼 수 있어서 꿈만 같다"고 말하며, 이 하루를 평생 기억하고 싶다고 전했다. 장 대표는 이처럼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여행을 통해, 고립감과 소외감을 덜고 사람과 사람이 다시 이어지기를 바랐다. 그 진심은 참여자들의 웃음과 눈빛 속에서 고스란히 전해졌다.


‘처음 가본 방동’, ‘몰랐던 호경’… 같은 남원에 살아도 낯설었던 이웃들

남원이라는 같은 지역에 살아도, 방동마을과 호경마을은 서로에게 낯선 곳이었다. 어르신들 대부분은 “남원에 살면서도 그 마을엔 처음 가봤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행정구역상 가까운 이웃일 뿐 아니라, 삶의 형태도 유사한 농촌 마을임에도 불구하고, 마을 간 교류는 거의 전무했던 것이 현실이다. 이번 마실여행은 그러한 거리감을 허물고, 마음의 다리를 놓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동네 소개하기’ 코너에서는 각 마을의 역사와 자랑거리를 풀어내며 서로를 이해했고, 단순한 소개를 넘어 어르신들의 기억과 삶의 조각이 공유되었다. “이제는 방동과 주천에 친구가 생겼다”는 말처럼, 서로에 대한 인식과 감정의 거리가 확연히 좁혀졌다. 여행의 본질은 어쩌면 타인을 이해하는 일이라는 사실이, 이날 또렷하게 확인되었다.


정서적 공감, 사회적 유대감, 참여자의 변화로 본 프로그램의 기대효과

이번 마실여행이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어르신들의 표정에서 드러났다. 처음 만남의 어색함과 조심스러움은 이내 웃음과 다정한 손길로 바뀌었고, 함께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어깨를 맞댔다. 특히 서로의 사진을 함께 감상하고 지난 회차를 추억하는 순간에는 “우리가 참 많은 걸 했구나”라는 뿌듯함이 피어올랐다. 여행이 단순한 여흥이 아닌 정서적 안정과 소속감의 회복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 사례였다. 혼자 있던 시간이 길어질수록 사회적 고립을 느끼던 어르신들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삶에 활기를 얻는 변화는 무엇보다 값진 결과였다. 그날 이후, 일상 속에서 이 마실의 기억을 되새기며 마을 간 연락을 주고받는 모습은 공동체의 진짜 힘이 어디서 오는지를 보여주었다.


마실여행이 남긴 질문 “이런 프로그램, 또 언제 하나요?”

하루의 일정이 모두 끝나고, 어르신들이 가든히카페를 떠날 준비를 하던 순간, 가장 많이 들려온 말은 “이런 건 또 언제 하나요?”였다. 그것은 단순한 아쉬움이 아닌, 진심 어린 요청이자 다음을 기다리는 기대감이었다. 이번 마실여행은 단발성 이벤트가 아니라 지역 공동체 내에서 지속 가능한 정서적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서로의 마을을 직접 경험하고,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사이가 된 어르신들의 관계는 앞으로도 더 이어질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실행한 미순상회 장은순 대표는 “작은 시작이지만 이 경험이 어르신들의 일상에 지속적인 활력소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남원시와 공동체지원센터의 지원 아래 진행된 이번 사업은 시니어 삶의 질 향상과 지역 사회의 통합이라는 측면에서, 마을 단위에서 추진할 수 있는 모범적인 모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여행은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이번 남원 시니어 마실여행을 통해 더욱 깊은 의미로 다가왔다. 낯선 곳이 아닌, 같은 지역 안의 또 다른 마을을 찾는 여정은 어르신들에게 신체적 부담은 줄이고 정서적 만족은 더했다. 참여자들은 처음엔 낯설었지만, 이내 서로에게 친구가 되었고, 다시 만나기를 고대하게 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단순한 교류가 아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히고, 지역사회 내 숨겨진 따뜻함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다.


무대는 작았지만, 그 무대 위에서 어르신들은 주인공이 되었고, 삶을 다시 이야기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 작은 여행은, 나이가 들수록 ‘사람이 그리운 삶’이라는 본질적인 질문에 진심으로 답하는 시도였다.

 

이번 마실여행을 기획·운영한 장은순 대표는 미순상회를 통해 지역 어르신들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기획하며, 삶에 온기를 더하는 소소한 기획을 이어가고 있다. “누구든 마음만 있으면, 누구든 함께할 수 있는 작은 마실을 앞으로도 계속 이어갈 것”이라는 그의 다짐은 마치 여행의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말처럼 들렸다.

 

 

 

작성 2025.08.19 23:51 수정 2025.08.19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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