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흥겨운 멜로디 속에 숨은 메시지
보육교사로 10여 년 넘게 아이들과 함께 지내며,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동요를 부르게 된다. 담임교사로 일하다가 지병으로 잠시 쉬고 다시 아이들과 마주하는 요즈음에도 ‘곰 세 마리’나 ‘아기상어’ 같은 동요는 빠지지 않는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가사가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다. 아빠는 뚱뚱해야 하고, 엄마는 날씬해야 한다는 노랫말, 혹은 아빠상어는 힘세고 엄마상어는 어여쁘다는 식의 표현이 아이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는 걸까?
그래서 아이들과 함께 가사를 바꿔 부르기 시작했다. “아빠 곰은 뚱뚱해” 대신 “아빠 곰은 씩씩해”, “엄마 곰은 날씬해” 대신 “엄마 곰은 멋있어”라고. 또는 가사와 반대로.
연령에 따른 아이들의 반응
현장에서 흥미로운 건 연령에 따른 반응 차이다. 대부분 영아는 주로 원곡 가사를 고집한다. 익숙한 리듬과 단어가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다. 만 2세쯤 되면 조금 다른 반응이 나타났다. 동요를 부르다가 다른 사람보다 마른 나(아빠선생님)를 가리키며 “정말 아빠가 뚱뚱해?”라고 물어보면, 어떤 아이는 “‘아니~’라고 대답하기도 한다.” 이렇게 현실과 노랫말을 구분하기 시작한 아이들에게는 함께 가사를 바꿔보기도 하고, 여전히 원래 가사를 부르기도 하면서 즐겁게 동요를 부른다. 단어 하나 바꿨을 뿐이지만 아이들도 다르게 표현할 수 있다고 느끼는 것 같다.
동요 속 성역할과 가족 이미지의 보편성
곰 세 마리와 아기상어는 모두 전형적인 가족 이미지를 보여주며 동시에 성역할을 각인시킨다. 곰 세 마리에서는 아빠는 뚱뚱해야 하고, 엄마는 날씬해야 하며, 아기는 귀여워야 한다. 이는 외모와 성별에 따른 평가를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아기상어는 한층 정교하다. 아빠는 힘세고, 엄마는 어여쁘며, 할아버지는 멋있고, 할머니는 자상해야 한다. 겉으로는 단순한 놀이 노래 같지만, 실제로는 가족 구성원의 성별과 연령에 따라 고정된 이미지와 역할을 부여한다.
이러한 구분은 한국에서 만들어진 곰 세 마리뿐 아니라 글로벌 히트곡인 아기상어에도 똑같이 담겨 있다. 한국적 정서에서 비롯된 가사이든, 전 세계적으로 소비된 유행 동요이든, 결국 두 노래 모두 “가족은 이렇게 생겨야 한다”는 사회적 규범을 반복적으로 주입한다. 아이들에게 친숙한 멜로디 속에 성역할 코드가 자연스럽게 각인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어떤 가족을 보여줄 것인가
우리 사회에는 이미 다양한 가족 구조가 존재한다. 한부모 가정, 조부모 양육 가정, 입양 가정, 공동체적 돌봄 가정까지 형태는 다양하다. 또 성역할에 대한 문제 제기와 변화 역시 활발하다. 이런 현실 속에서 어린 시절 불렀던 동요의 가사가 아이들의 무의식에 새겨지는 영향은 결코 작지 않다. 크든 작든, 동요는 아이들이 세상과 자신을 바라보는 눈을 형성하는 데 기여한다.
가사를 바꿔 부르며 아이들에게 다양한 가족상과 성역할을 보여주고자 했다. 아이들은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고, 오히려 즐겁게 노래했다. 이 경험은 동요가 단순히 전통적 가족 이미지를 답습하는 도구가 아니라, 새로운 가치와 다양성을 심어줄 수 있는 교육적 장치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중요한 건 ‘아이들에게 어떤 가족을 보여줄 것인가’다. 동요 속 가족은 더 이상 전형적 틀에 갇힐 필요가 없다. 외모나 성별이 아닌, 서로를 존중하고 돌보는 가족의 모습이어야 한다. 동심을 위한 노래가 사회의 굴레를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여는 열쇠가 되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