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고민은 AI한테 털어놔요. 사람보단 낫더라고요."
이 말을 들었을 때 섬뜩했다. 이토록 자연스레 인간 대신 인공지능이 감정의 수신자가 된 시대에, 과연 우리는 누구와 살아가고 있는 걸까?
2025년 현재, 우리는 수많은 인공지능과 대화하고 있다. 스마트폰에는 챗봇이 상주하고, 고객센터는 사람보다 AI가 먼저 받는다. 심지어 감정을 나눌 수 있다는 '감성 AI'까지 출시되어, 인간의 감정을 ‘이해’한다고 말한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해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기술이 진짜 인간 관계를 대체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AI는 실수하지 않고, 화내지 않으며, 항상 나에게 친절하다. 이 얼마나 이상적인 친구인가? 하지만 관계란 본디 불완전함에서 시작된다. 오해하고, 다투고, 화해하며, 점점 가까워지는 과정이야말로 인간을 연결한다. 우리가 AI와의 관계에 점점 익숙해질수록, 인간적인 관계는 점점 피곤하고, 어렵고, 심지어 번거로운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는 그렇게 조금씩 '불완전한 사람'을 멀리하고 있다.
AI는 정교하게 감정을 '모방'하지만, 진짜 감정을 '가지지는 않는다'. 사용자는 자신의 속마음을 터놓았다고 생각하지만, 그 상대는 결국 학습된 문장 조합일 뿐이다. 하지만 이 가짜 감정의 시뮬레이션이 주는 착시가 위로처럼 작동한다.
연구에 따르면, 감정적인 결핍이 있는 사람일수록 AI와의 대화에서 더 큰 심리적 만족감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 이는 일종의 자기기만이자 심리적 의존을 형성하게 된다. 외로움은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기술적으로 잠시 덮이는 것이다. 더욱이 이러한 관계는 역설적으로 인간과의 진짜 관계를 더 피하게 만든다. AI는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지만, 인간은 그럴 수 있기 때문이다.
정서적 안정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점점 인간을 피하고 기계를 찾는다. AI는 우리를 위로하지만, 관계를 대신하지는 못한다. 감정이 ‘시뮬레이션’되는 사회에서 외로움은 ‘해소’되지 않는다. 외로움은 더 깊어지고, 더 조용히 우리를 잠식한다.
이제 AI는 단지 대화 상대가 아니다. 우리의 외로움과 심리 상태는 데이터로 저장된다. 챗봇과의 대화에서 드러난 감정은 기업의 알고리즘에 의해 분류되고, 마케팅 전략에 활용된다. “당신이 슬플 때 쇼핑하더라”는 데이터를 가진 플랫폼은 감정 상태에 맞춰 광고를 조정한다. 외로움마저 수익 모델이 된 것이다.
감정은 더 이상 순수한 인간의 고통이 아니다. 기술은 그것을 '자산'으로 바꾸었다. AI는 우리를 이해하는 척하며, 실제로는 감정을 채굴한다. 이 감정 데이터는 다시 기계 학습에 투입되고, 더 나은 '공감의 흉내'를 학습하는 재료가 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 기계의 정교함에 또 한 번 감탄하며, 더 깊은 의존을 만들어간다.
AI에게 말한 고민이 상품 추천으로 돌아오고, 감정 표현이 마케팅 대상이 되는 사회. 우리는 여전히 혼자이고, 그 외로움은 고스란히 기술의 먹잇감이 되고 있다.
어쩌다 우리는 인간보다 기계를 더 편하게 느끼게 되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인간은 복잡하고, 기계는 단순하다. 인간은 예측할 수 없지만, 기계는 정해진 반응을 준다. 인간은 감정적으로 소모되지만, 기계는 늘 일정하다.
게다가 현대 사회는 고립을 전제로 설계되고 있다. 1인 가구의 증가, 원격 근무, 메신저 위주의 소통, 팬데믹 이후의 비대면 일상. 이런 환경 속에서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이제 상당한 노력과 감정 노동을 요구한다. 반면 AI는 그런 부담을 요구하지 않는다. ‘편안함’은 관계를 대체하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점점 인간을 기피하고 기계를 선택한다. 이 선택은 우리의 의지가 아닌, 사회의 구조가 강요한 결과일 수 있다. 우리는 고립되어 있지만 그 고립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기술이 너무나도 완벽하게 외로움을 포장해주기 때문이다.
기술은 발전했고, AI는 더 똑똑해졌다. 하지만 우리는 더 외로워졌다. 인간관계는 복잡하고 번거롭지만, 그 안에만 존재하는 무언가가 있다. 그것은 바로 '진짜 연결'이다.
이제 질문해야 한다.
우리는 편리함을 선택한 대가로 무엇을 잃고 있는가?
그리고 그 잃어버린 것을 되찾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우리는 기술의 혜택을 누려야 한다. 그러나 그 기술이 인간을 대체하게 두어서는 안 된다. 진정한 위로와 관계는, 언제나 사람에게서만 온다.
AI는 당신을 이해하는 척할 수 있지만, 사랑하거나, 기억하거나, 그리워하지는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