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디지털 대전환의 소용돌이 속에서 인공지능(AI)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정책의 수립에서 집행까지, 공공부문의 의사결정에 AI가 관여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처럼 기술이 정책을 움직이는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도입’이 아니라, 공공성과 민주성의 재정립이다.
공공성의 재정립 ― 효율 너머의 가치
AI는 행정의 정확성과 신속성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킨다. 민원 응대 자동화, 교통 최적화, 재난 예측, 복지 수급자 탐색 등 다양한 영역에서 그 유용성이 입증되고 있다. 그러나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렇듯 국가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해야 하며, 이는 공공이 지켜야 할 최우선 가치이다.
공공부문은 효율만을 좇아서는 안 된다. 인공지능 기술이 디지털 소외계층이나 사회적 약자의 권익을 침해하지 않도록, 그 활용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책임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있다. 특히 설명의무와 알권리는 헌법과 행정절차법에 근거한 정당한 권리이며, 이를 저해하지 않는 기술 활용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법제도적 기반과 윤리적 통제
AI 활용은 법과 제도의 테두리 안에서만 가능하다. 특히 다음의 세 가지 법률은 핵심적인 기준을 제시한다.
「개인정보 보호법」은 AI 활용의 출발점이다. 제15조(개인정보의 수집ㆍ이용)는 명확한 목적과 최소한의 수집 원칙을 명시하고 있으며, 정보주체의 동의 없이는 데이터 활용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전자정부법」, 「국가정보화 기본법」 등은 국민 누구나 정보화의 혜택을 평등하게 누려야 함을 규정하고 있다. 기술이 사회적 불균형을 조장해서는 안 된다.
「행정절차법」 제21조는 모든 행정행위가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이는 AI가 내린 판단이라도 예외일 수 없다.
이 외에도, 정부와 지자체는 ‘책임 있는 AI’를 지향하며 공공 부문의 AI 윤리 가이드라인을 자율적으로 마련하고 있으며, 이는 공정성, 투명성, 설명가능성, 책임성을 핵심 원칙으로 삼는다.
사례 분석 ― 서울시 복지사각지대 발굴 시스템
서울특별시는 AI와 빅데이터를 활용하여 위기가구를 조기에 탐지하는 복지사각지대 발굴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장기체납, 고립, 질병 등의 데이터를 결합하여, 기존의 행정망으로는 포착하지 못하는 취약계층을 식별하고 선제적 지원을 실행한다.
이 정책은 기술이 어떻게 공공의 약자 보호에 기여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동시에, 정보의 투명성 확보, 동의 기반의 데이터 수집, 개인정보의 보호 등 법적·윤리적 논의가 병행되어야만 한다. 기술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며, 인권과 신뢰를 침해해서는 안 되는 것이 공공정책의 기본 원칙이다.
시민 참여의 진화 ― 디지털 거버넌스 시대
AI는 시민 참여 방식도 변화시키고 있다. 과거의 오프라인 청원, 공청회 중심의 참여가 오늘날에는 온라인 공론장, 정책 리빙랩, 시민참여 공모 플랫폼, AI 기반 의사결정 도구 등으로 확장되고 있다.
「전자정부법」 제3조는 “국민의 의견이 정책에 반영될 수 있는 전자정부”를 지향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공공기관은 다양한 디지털 채널을 통해 참여의 문턱을 낮추고 있다. 특히 공공알고리즘이 정책결정에 개입하는 경우, 그 기준과 결과, 검증 방식은 시민에게 공개되어야 한다. 이는 『공공데이터 제공 및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이 보장하는 시민의 권리이기도 하다.
시민은 이제 ‘수용자’가 아닌, 디지털 환경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참여자’로 전환되어야 하며, 그 전환을 위한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과 정보접근성 보장이 선결 과제이다.
사람 중심의 기술, 신뢰 기반의 거버넌스
우리는 지금 기술이 공공정책을 주도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기술이 진정한 공공성을 담보하려면, 그 기반은 사람, 법, 윤리, 그리고 시민의 참여이어야 한다.
공공부문은 효율과 혁신을 지향하되, 사회적 약자 보호와 공동체의 신뢰 형성을 위한 역할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인공지능은 민주적 거버넌스를 구현하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지만, 그 방향과 한계를 설정하는 것은 결국 사람과 공동체의 가치 판단이다.
인공지능 시대의 공공정책은 기술과 사람, 법과 윤리가 어우러지는 균형의 예술이다. 이 균형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우리 시대 공공의 책무이자 시민사회의 성숙한 자세이다.
박동명
▷법학박사, 선진사회정책연구원 원장.
▷한국공공정책학회 부회장. 한국공공정책평가원 원장
▷전 서울특별시의회 보건복지전문위원, 국민대학교 외래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