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Column 시리즈 [5편] ‘강한 남자’는 어떻게 감정을 버티다 무너지는가

“울지 마, 남자는 참는 거야”가 만든 정서적 감옥

남성성이라는 갑옷, 그 안에서 감정은 질식한다

감정 억압의 끝은 침묵이 아니라 붕괴다

 

Healing Column 시리즈 [5편]‘강한 남자’는 어떻게 감정을 버티다 무너지는가?

 

그는 책임감 있었다.
묵묵히 일했다.


가족을 먹여 살렸다.


불평하지 않았다.


강했다.

 

그래서 더 아무도 몰랐다.
그가 그렇게까지 흔들리고 있었다는 것을.

지금 우리 사회는 너무 늦게 깨닫는다.


‘강한 남자’라는 이름 아래 얼마나 많은 감정이 억눌려왔는지, 

그리고 그 억눌림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남자다움’이 감정을 금지했다

 

어릴 때부터 들었다.
“남자는 울면 안 돼.”
“남자는 원래 무뚝뚝해.”
“남자가 감정이 왜 그렇게 많아?”

이 말들은 단순한 조언이 아니라 정서적 검열이었다.


남자다움이라는 사회적 신화가 감정을 금지했고,
감정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건 고립과 자기 소외였다.

 

그렇게 성장한 남성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감정을 느끼되 표현하지 못하고,
사랑을 원하지만 표현할 줄 몰랐으며,
슬픔을 느끼면서도 말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내면의 감정붕괴로 이어졌다.

 


감정을 참는 것이 능력이 아니었다

그동안 우리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을 ‘성숙’이라 배웠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건 성숙이 아니라 결핍이었음을.


자기 감정을 돌보지 못한 사람은 타인의 감정도 받아들이지 못한다.


#정서적무감각 은 결국 관계의 단절, 분노의 폭발, 자기 혐오로 이어진다.

 

‘강한 남자’가 참아온 시간은, 사실 자기파괴를 향한 길이었다.

 


무너짐은 느닷없이 오지 않는다

 

우리는 자주 놀란다.
“그 사람이 왜 갑자기 그렇게…”
하지만 감정은 ‘갑자기’ 무너지지 않는다.


오랫동안 눌러왔던 감정들이,
한순간에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참는 게 습관이었다.”
“속마음을 말해본 적이 없다.”
“울고 싶은데 울 수 없었다.”

이 말들 뒤에는 공통의 붕괴 시점이 있다.


그건 바로,
감정을 버티기만 하다가 끝내 견디지 못했을 때다.


 

 

‘강한 남자’는 더 이상 이상향이 아니다.
그것은 정서적 죽음의 시작일 수 있다.

 

감정을 말하는 남자,
울 줄 아는 남자,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려는 남자야말로
진짜 강한 사람이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남자다움’이라는 허울 속에 감정을 가두지 말고,
정서적 회복력이 진짜 힘이라는 것을 말해줘야 한다.

 

남자도, 감정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더 이상 무너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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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5.08.05 21:17 수정 2025.08.07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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