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있는데 보호는 없다? 감정노동자 보호법의 허와 실

“웃어야만 했던 그날들” — 감정노동자의 현실

법은 존재하지만, 현장은 여전히 무방비

해외 사례는 어떻게 다를까: 일본·프랑스의 차별화된 접근

 

1. “웃어야만 했던 그날들” — 감정노동자의 현실

“감정노동자라서 행복해요.” 이 말을 믿는 사람은 없다. 우리가 커피 한 잔을 주문하고, 편의점에서 음료를 고르며, 백화점에서 환불을 요구할 때 맞닥뜨리는 ‘친절한 미소’는 자발적 감정의 표현이 아니다. 많은 경우, 그 웃음은 업무 지시에 포함된 ‘표정 관리’이며, 이면에는 억눌린 분노와 피로, 심지어는 정신적 외상까지 숨겨져 있다.

감정노동은 단순히 힘든 노동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며 타인의 감정까지 케어해야 하는 이중의 고통을 수반한다. 2016년 서울 메트로에서 일하던 한 여성이 고객의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 사건은 그 상처의 깊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후 ‘감정노동자 보호’라는 목소리가 커졌고, 드디어 2018년 10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으로 관련 법이 시행되었다.

하지만 6년이 지난 지금, 그 법은 여전히 ‘종이 방패’에 불과하다. 법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감정노동자들은 여전히 무례와 폭언, 괴롭힘에 노출돼 있다. 여전히 그들은 웃어야 한다. 고객이 “너 같은 애가 무슨 자격이 있어”라며 소리를 질러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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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법은 존재하지만, 현장은 여전히 무방비

2018년 제정된 이른바 ‘감정노동자 보호법’의 핵심은 고용주에게 ‘정신건강 보호 조치 의무’를 부여하고, 폭언·폭행에 대한 대처 매뉴얼을 마련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현장은 법의 의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첫째, 해당 법은 ‘권고 수준’의 조치에 머물고 있으며, 이행 여부에 대한 강제성이 미비하다. 감정노동이 집중되는 민간업종(예: 콜센터, 편의점, 외식, 유통) 대부분은 법 적용 대상에서 벗어나 있거나, 사업장이 소규모여 법적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둘째, 사업주는 대체로 예방교육을 ‘형식적으로’ 실시하거나, 피해자가 오히려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구조를 방치하고 있다. 법적으로는 고객의 폭언에 대응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지만, 현실에서는 “고객 컴플레인으로 인한 손해”를 직원에게 전가하는 경우가 많다.

셋째, 고용노동부의 감독과 처벌은 지극히 소극적이다. 2022년 한 해 동안 감정노동 관련 진정은 약 2,300건에 달했지만, 실제 사업장 시정 조치는 5% 미만에 그쳤다. 법은 있지만, 실질적인 보호는 없다.

 

3. 해외 사례는 어떻게 다를까: 일본·프랑스의 차별화된 접근

한국의 감정노동 보호법이 선언적 수준에 머무른 것과 달리, 해외는 좀 더 현실 밀착형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 일본: ‘고객은 신이 아니다’ 캠페인

일본은 2019년부터 대형 유통업체 중심으로 **‘고객 갑질 근절 운동(Customer Harassment)’**을 펼치고 있다. JR동일본, 로손 등의 기업은 “고객은 왕이 아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갑질 고객에게는 서비스 거부 및 출입 금지 조치까지 시행하고 있다. 또한 노동청 차원의 법 개정 논의도 본격화되고 있다.

 

?? 프랑스: ‘공공 감정’에 대한 국가의 책임 인식

프랑스는 감정노동을 **정신적 위험 노동(psychosocial risk)**으로 간주하고, 관련 산업에 대해 정기적인 스트레스 조사와 예방 조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심리상담사 배치, 근로시간 조정, 업무 전환 권고 등이 법적 제도 하에 운영된다.

이처럼 법적 강제력과 사회 인식이 함께 움직이는 구조가 보호의 실효성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4. 형식 아닌 실질적 보호를 위한 3가지 대안

감정노동자 보호를 위한 실질적인 변화는, 단순한 법 제정이 아닌 제도적 실행력과 사회적 공감대에서 출발해야 한다. 다음은 반드시 이행되어야 할 세 가지 대안이다.

① 감정노동 고위험 업종에 대한 특별법 제정

콜센터, 배달, 유통, 병원 접수창구처럼 감정소진 위험이 높은 직군을 중심으로 별도 관리체계 마련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감정노동 강도에 따라 위험수당, 휴식시간 확대, 근무시간 제한 등의 구체적인 방안을 명문화해야 한다.

② 감정노동 신고자 보호 및 익명 제보 시스템 구축

피해를 입은 노동자가 보복이나 불이익 없이 신고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공공기관 중심의 익명 제보 플랫폼과 직장 내 심리적 상담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

③ 사회 전반의 ‘고객 절대주의’ 인식 전환 캠페인

한국 사회에 뿌리깊게 박힌 “고객은 왕”이라는 구호를 벗어나, “상호 존중”을 기반으로 하는 서비스 문화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교육기관, 언론, 기업이 협력하여 시민 인식 개선 캠페인을 벌여야 한다.

 

5. 결론: 법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가 감정노동자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이다

감정노동자는 늘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화가 난 고객의 욕설을 감내하면서도, 다음 고객에게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웃어야 한다. 법은 선언적일 수 있지만, 그들이 느끼는 고통은 현실이다.

법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는 그들을 보호할 수 없다. 우리는 감정노동자를 보호하는 것이 결국 사회 전체의 정서적 건강을 지키는 일임을 인식해야 한다. 감정은 '일'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감정을 업무의 일부로 강요하고 있다.

지금 당장, 우리가 고객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일은 존중이다. 미소가 의무가 아닌 선택이 될 수 있도록, 사회 전체가 변화해야 한다. 법도, 제도도, 시민의식도 함께 움직여야 한다.

 

 

 

작성 2025.08.02 07:18 수정 2025.08.02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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