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눈에는 무엇이 보이는가?

토마토, 독초에서 슈퍼푸드로의 변신

오해와 편견을 딛고 문화적 상징이 된 토마토


한때 독이 있는 식물로 오해받았던 토마토가 오늘날 전 세계인의 식탁에서 사랑받는 슈퍼푸드(Super food)로 자리 잡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토마토는 기피 식품에서 어떻게 건강식품의 상징으로 거듭났을까?

 

토마토의 기원은 남아메리카 안데스산맥 지역이라고 한다. 원주민들은 수천 년 전부터 토마토를 재배하고 식용으로 사용해왔다. 하지만 유럽에서의 초기 반응은 전혀 달랐다. 16세기 때, 스페인 정복자들이 신대륙을 탐험하는 과정에서 토마토를 발견하고 유럽으로 가져갔지만, 유럽인들은 이를 식용이 아닌 관상용 식물로 취급했다. 특히, 붉은색을 띠는 토마토의 모양이 당시 맨드레이크(Mandrake: 가지과 식물) 같은 독초와 닮았다 하여 악마의 열매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다.

 

토마토가 이렇게 독초로 오해받은 가장 큰 이유는 당시 유럽에서 널리 사용되던 식기(食器) 때문이었다. 16~17세기 때의 유럽 귀족들은 주로 납이 함유된 주석 접시를 사용했는데, 토마토의 산성이 접시에 함유되어 있는 납 성분을 녹여내어 식중독을 유발하곤 했다. 그런 사고가 반복되자 토마토는 자연스럽게 유해한 식품으로 낙인 찍히게 되었고, 그 결과, 유럽에서는 오랫동안 토마토를 기피하는 문화가 형성되었다.

 

<사진; AI image. antnews 제공>

그런 토마토에 대한 오해를 풀고 식품으로 자리 잡게 된 계기는 19세기 때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서기 1820년대 초, 미국의 로버트 기븐 존슨(Robert Gibbons-Johnson) 대령은 토마토가 독이 없음을 증명하기 위해 뉴저지의 법원 앞에서 공개적으로 토마토를 먹는 시식회를 열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예상했지만, 존슨 대령은 아무런 이상 없이 멀쩡했다. 그 시식회를 계기로 미국에서 토마토에 대한 오해가 점차 풀리기 시작했고, 이후 토마토는 요리에 빠질 수 없는 재료로 자리 잡았다.

 

한국에서도 처음에는 반찬보다는 과일처럼 후식으로 먹는 문화가 형성되었다. 지금도 일부 지역에서는 토마토를 설탕에 찍어 먹는 식문화가 남아 있다. 그러나 서구식 요리가 대중화되면서 토마토는 샐러드, 요리 소스 등으로 점점 활용 범위를 넓혀갔다. 그 결과 오늘날 토마토는 단순한 식재료를 넘어 건강에 좋은 슈퍼푸드(Super food)로 각광을 받고 있다.

 

토마토에 풍부하게 함유된 라이코펜(lycopene) 성분은 강력한 항산화 작용을 하여 심혈관 질환 예방과 항암 효과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토마토를 가열하면 리코펜(Lycopene)의 흡수율이 더욱 높아져 토마토 소스나 수프의 형태로 섭취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다.

 

한때 독이 있는 위험한 식물로 여겨졌던 토마토는 이제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식품이 되었다. 토마토가 가진 영양학적 가치뿐만 아니라, 스페인의 발렌시아 주에서 매년 8월의 마지막 수요일에 열리는 라토마티나(La Tomatina, 토마토 축제)”처럼 문화적으로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나긴 오해와 편견을 극복하고 현대인의 건강한 식재료가 된 토마토의 이런 변신은 흥미로운 역사적 사례로 남아 있다.

 

독초에서 약초로 변한 위와 같은 토마토의 역사에서 보듯 독초와 약초는 보는 자, 혹은 먹는 자의 입장에 따라 달라진다. 아편(阿片)이나 모르핀(Morphine) 같은 진통제는 수술환자에게는 꼭 필요한 약초이지만 아편전쟁에서 보듯 중독자들에게는 독초 중이 독초가 된다. 이는 마치 칼 자체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도구이지만 조리용으로 쓰면 이기(利器)가 되고 살인용으로 쓰면 흉기(凶器)가 되는 것과도 같다.

 

법도 제도도 심지어 윤리 도덕도 어떨 때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또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하늘과 땅만큼 달라진다. 예를 들면 죄와 벌은 일치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똑같은 부정부패를 놓고 우향적인 판사와 좌향적인 판사가 판결하는 결과가 흑백처럼 다른 경우를 여러번 경험해 왔다. 특히 청지적 사범인 경우는 똑같은 행위를 두고도 한 사람은 역적이 되고 한 사람은 충신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의 근대사만 보아도 조광조(趙光祖)는 기묘사회에 얽혀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조광조를 선구적 개혁자로 평가하는 사람도 많다.

 

조광조 같은 억울한 죽음은 법이 법이 아니라 사람잡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뚜렷이 증명하고 있다. 오죽하면 사법 살인, 이현령 비현령(耳懸鈴 鼻懸鈴)”이라는 말이 생겼겠는가? 실제로 일제 때는 사법살인된 우국지사들이 많았다. 우리의 현대사만 보아도 조봉암을 비롯하여 사법살인을 당한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다. 심지어 예수도 공권력에 의해 사법살인을 당한 자라고 한다.

 

우리는 흔히들 옳은 것은 옳은 것이고 틀린 것은 틀린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독초와 약초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듯 현실 세계에서는 A국의 충신이 B국의 역적이 되고, 반대로 A국의 역적이 B국의 충신이 되는 경우가 수없이 많다. 심지어 A국의 위대한 신()B국의 저주받을 신()이 되는 경우도 있고, 그 반대인 경우도 있다. “제 눈에 안경이라는 말이 있듯이 개 눈에는 똥만 보이고, 새 눈에는 알곡만 보인다.

 

그대 눈에는 무엇이 보이는가? 부디 정(), (), ()이 보이시길---.

 

 

-손 영일 컬럼 



작성 2025.07.29 08:29 수정 2025.07.29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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