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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건 영어가 아니라 ‘영문’입니다.”

원주에서 ‘노는영어 Playinglish’를 운영 중인 노관평(Jake K. Noh) 원장은 이야기한다. 그는 영어를 단순한 학문 과목이 아닌, 하나의 ‘언어’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모국어처럼 듣고 말하며 익숙해지는 방식이야말로 진짜 영어 학습이라는 것이다.

‘영어’가 아닌 ‘영문’을 배운 세대에게

노 원장은 영어와 영문의 차이부터 짚는다. “우리는 시험을 위한 문법과 단어, 해석 중심의 ‘영문’을 배웠을 뿐, 실제로 영어를 듣고 말하는 법은 배우지 못했어요.”

그는 한국어와 한글의 관계를 예로 든다. 한국어가 언어 전체라면 한글은 그중 하나의 요소다. 마찬가지로, 영어라는 큰 틀 안에 문자인 영문이 있을 뿐, 영문만 익힌다고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아이들이 말을 배우듯, 언어는 듣기에서 시작해야 한다”며 영어 교육도 이 같은 본질적 방식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노는영어’는 듣기를 최우선으로 두고, 말하기, 읽기, 쓰기를 복합적으로 익히는 커리큘럼을 운영한다.

▲ 노관평 원장 유아시절     ©노는영어

‘노는영어’라는 브랜드명에는 그의 철학이 담겨 있다. 영어를 도구로, 영어와 함께, 영어로 ‘논다’는 개념이다. 개인의 관심사에 맞춘 콘텐츠를 활용해 자연스럽게 영어에 노출되도록 설계했다. 그는 “영어로 놀다 보면 자연스럽게 영어와 친해지게 된다”며 “익숙해지는 게 먼저”라고 말한다.

그의 인생 이야기도 독특하다. 경기도 이천에서 자란 그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었지만, 고등학교에 들어가며 학업에 회의를 느꼈다. 학업 대신 온라인 시계 장사를 시작했고, 이를 계기로 사업가의 감각을 키웠다.

▲ 사진 = 노관평 원장 고등학생 시절 시계사업

대학 진학 이후엔 학점을 만점에 가깝게 유지하며 편입을 준비했고, 패션 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를 모았다. 그러나 결국 다시 ‘사업’으로 마음이 기울었고, 영어가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25세에 미국 유학을 결심한다.

▲ 사진 = 미국에서 강도사건 당한날 저녁 파티  © 노는영어

비자 발급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미국에 입국한 그는, 우연히 겪은 강도 사건으로 미국 내 장기 체류 비자(U비자)를 얻게 된다. “한밤중 버스를 기다리는데 누군가 총구를 눈앞에 들이댔고, 반사적으로 핸드폰을 지키려고 싸웠습니다.” 극적인 사건이 인생의 흐름을 바꿨고, 그는 이후 6년간 미국에서 어학연수와 컬리지, 그리고 정규대학까지 다니며 영어를 ‘몸으로’ 익혔다.

▲ 사진 = 미국에서 신발사업 당시 모습

노 원장은 “25살 성인이 되어서야 영어를 처음 시작했다”며, 자신이 직접 겪은 실패와 시행착오에서 가장 효과적인 학습법을 정립했다고 말한다. “한국에서 10년 넘게 영어를 배웠는데도 한 마디 못 했지만, 미국에서 듣고 말하고 읽고 쓰기를 반복하니 영어가 터졌어요.”

귀국 후에는 서울의 대형 영어회화 전문 학원에서 근무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직접 교육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의 영어 학습 과정을 토대로 책까지 집필했다. “‘노는영어’는 저의 실험과 경험이 쌓여 완성된 영어 습득 시스템입니다.”

▲ 사진 = 미국에서 친구들과 찍은 사진

‘노는영어’의 수업은 다르다. 학생들은 오자마자 본인의 하루를 영어로 말한다. 실수를 해도 괜찮다. 중요한 건 반복과 실전이다. “내가 뭘 먹었고, 뭘 했고, 몇 시에 일어났는지 말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과거형 문장 구조를 익히게 됩니다.”

그는 발음 교정, 문장 만들기, 영상 기반 리스닝 활동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수업을 진행한다. 단순히 정답을 주는 대신, 먼저 추측하게 하고, 그 과정에서 깨달음을 얻게 한다. “틀렸을 때 느끼는 아쉬움, 그리고 고민 후에 깨닫는 이해의 순간은 머릿속에 오래 남습니다.”

그는 영어를 해석의 언어로 받아들이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영어 단어를 들었을 때 한국어가 떠오르면, 그 사람은 아직 영어를 모국어처럼 익히지 못한 상태입니다. 단어를 이미지로 떠올릴 수 있어야 진짜 영어가 시작됩니다.”

예를 들어 ‘chair’를 들었을 때 머릿속에 의자의 이미지가 그려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어로 ‘사과’의 정의를 외우지 않았듯, 영어를 한국어 정의로 외우면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영어를 한국어로 해석해서 이해하고,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해서 말하는 과정을 없에야 합니다. 영어를 듣고 이미지로 바로 이해할 수 있어야 바로 말할 수 있습니다.”

노 원장은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영어는 놀면서 배워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 책과 블로그, 콘텐츠 제작은 물론, 영어 습득의 본질을 알리는 강연도 계획 중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영어를 공부하지만, 말하지 못하고 듣지 못해요. 저는 그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궁극적으로는 한국의 영어 교육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 사진 = 학생들과 말하기 대회 수상 모습

지금도 수많은 이들이 영어 앞에서 좌절하고 있다. 하지만 노관평 원장은 말한다. “영어는 외우는 것이 아니라 익숙해지는 것”이라고. 그의 수업에서는 틀릴 수 있고, 질문할 수 있고, 말이 막혀도 괜찮다. 마치 우리 모두가 한국어를 배웠듯, 자연스럽고도 인간적인 방식으로 영어와 다시 만나는 셈이다.

노관평 원장의 철학이 그대로 반영된 이 교실은 지금까지의 영어 교육과는 다른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진짜 영어, 진짜 배움이 시작되는 이곳에서 앞으로 어떤 변화와 성장의 이야기들이 이어질지, 기대해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