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복(初伏), 비 그친 날 / 청암 배성근
삼일을 울던 장맛비가
지붕을 털고 떠난 아침
마당 끝 호박꽃 하나
묵은 구름을 털며 핀다
장독 위 물빛은
달빛처럼 고요하고
빗방울로 두들겨 맞던 처마엔
한 방울 여운만 매달렸다
오늘은 초복(初伏)
솥뚜껑 열리며 피어오른 김
삼복의 문턱을
낮달맞이 꽃 향기로 넘는다
마루 끝에 놓인 운동화 한 켤레
젖은 발등을 쉬게 하고
수박 한 통 쪼개며
숨 가쁘게 견디어온
도랑물도 숨을 고른다
기력도, 인심도
잠시 쉬어가는 날
더위야 오너라
우린 땀으로 익어가리니
<시작노트>
삼복의 시작인 초복은 우리 고유의 계절 감각이 오롯이 스며 있는 날이다. 유난했던 장맛비가 그치고 맞이한 초복 아침, 시인은 풍경 속의 작은 사물들 호박꽃, 장독, 운동화, 수박, 도랑물에 온몸을 기댄다. 그것들은 여름을 견뎌내는 서민적 삶의 상징이자, 한 고비를 넘기며 ‘쉼’을 주는 자연의 위로이다.
이 시는 전통적 계절감과 서정적 분위기를 담아낸다. 고요한 풍경 속에도 김이 피어오르고 짚신이 놓이는 마루 끝에는 살아 있는 생활의 리듬이 느껴지게 했다. 더위를 거부하거나 회피하기보다 ‘익어간다’는 표현은 순응과 수용의 태도를 함축하며, 삶의 인내와 온기를 품게 했다.
이 시를 통해 무더위 속에서도 생활전선에서 또는 시와늪의 미래를 위해 한 번도 포기하지 않고, 제자리를 지켜온 모든 분들에게 마음의 그늘 하나 드리고 싶었다. 그것이 비 그친 초복날, 땀 흘려 살아온 시와늪 가족 여러분에게 바치는 작은 헌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