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최근 전국적으로 내린 집중호우로 많은 지역에서 인명 및 재산피해가 발생하면서 물관리 시스템에 경고를 보내고 있다. 기존의 콘크리트 중심, 공학적 통제방식의 물관리로는 더 이상 자연의 흐름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물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새로운 방식의 ‘자연형’ 물관리 패러다임으로의 대전환이다.
자연형 물관리는 하천을 직선화하거나 댐을 통해 물을 가두는 방식이 아니라 자연의 순환과 생태를 최대한 복원하면서 물의 흐름을 조절하는 방식이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접근을 넘어 사람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는 생태적 사회 기반을 구축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새정부는 4대강 보를 단계적으로 해체하거나 상시적으로 개방해 강의 흐름을 복원하고 이를 통해 수질개선과 생태계 회복,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자연형 물관리정책, 즉 ‘재자연화’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4대강 사업 이후, 방향은 바뀌었는가
2009년부터 추진된 4대강 정비사업은 당시 국가적 차원의 대규모 물관리 프로젝트였다. 수십 조 원의 예산이 투입된 국책사업이었지만, 결과는 여전히 논쟁적이다. 4대강은 일시적으로 정비됐지만, 오히려 생태계 훼손과 수질악화, 유속 감소 등의 부작용이 발생했다.
이후 정부는 '자연형 하천 정비사업'과 '생태하천 복원사업' 등을 추진하며 방향전환을 시도하였다. 청계천 복원사례는 도시 생태계 회복의 모범으로 평가받았고, 일부 지자체는 저영향개발(LID) 기법을 통해 빗물 순환과 도시 열섬 저감에 나섰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아직 전체 물관리 체계의 일부에 머물러 있다. 전국적인 물관리체계 전환으로 확장되기엔 인식과 제도적 기반이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자연형 물관리는 도심지에도 시급히 적용되어야 한다. 특히 폭우로 인한 도시 침수, 열섬현상, 지하수 고갈 문제는 표면적인 상하수도 확충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투수성 포장, 우수 저류지 조성, 옥상 녹화와 같은 저영향개발 시설이 확대되어야 하며, 도시계획 단계에서부터 이를 반영하는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 또한, 농촌이나 외곽 지역에서는 지하수가 중요한 식수원이지만, 무분별한 취수와 오염으로 수위 저하와 수질 악화가 심화되고 있다.
기후위기 시대, 자연형 물관리가 해답이다
지구온난화와 이상기후는 물의 양뿐 아니라 흐름과 시기도 바꾸고 있다. 평균 강수량이 아닌 극한 강우와 가뭄을 전제로 한 물관리 시스템이 필요하다. 자연 기반 해법(Nature-Based Solutions, NBS)은 이러한 위기에 대한 효과적인 해결책으로 부상하고 있다. 자연 기반 해법은 2008년부터 국제적으로 주목받아 왔으며, 최근에는 기후변화 대응과 생물다양성 보전, 물 안보의 핵심수단으로써 인식되고 있다. 습지복원, 하천 범람원 조성, 자연 제방 확대 등은 단지 환경보존을 넘어 홍수조절과 생태회복, 주민 삶의 질 향상에 이르기까지 다차원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새정부의 ‘재자연화’ 정책이 성공하려면
지속가능한 물관리를 위해서는 통합물관리 체계와 거버넌스 구축이 시급하다. 현재와 같은 기관별, 행정구역별 물관리체계로는 통합물관리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 유역물관리청과 같은 통합적 기관의 설치와 함께 유역중심의 거버넌스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또한 주민참여와 사회적 합의가 관건이다. 과거 정부의 4대강 정책이 충분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이유는 실행을 뒷받침할 주민수용성과 사회적 공감대 부족에 있었다. 이런 측면에서 새정부의 ‘재자연화’ 정책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주민과 지역사회가 정책의 수혜자에 머무르지 않고 정책결정과정에 참여하는 맞춤형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통해 정책갈등을 최소화하고 지역균형발전과 연계된 물관리 혁신으로 나아가야 한다.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SDG) 6.5.1에 대한 우리나라의 평가에서도 제도적 기반은 높게 평가됐지만, 지방정부의 실행 역량과 시민사회 참여 부족은 큰 약점으로 지적되었다.
기후위기 시대의 물관리정책은 단순한 환경보호 차원을 넘어 국가 미래를 정립하는 핵심전략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현재 물 관련 인프라, 기술, 법제도 측면에서 빠른 성장을 이뤘지만, 이제는 '양적 성장'이 아닌 '질적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자연형 물관리는 자연에 대한 존중과 신뢰를 전제로 한 개념이며, 물이 스스로 순환하고 회복할 수 있도록 인간이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은 스스로 길을 내며 흘러간다. 물은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빌려 쓰는 자연의 자산이다. 물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의 근원이기에 강과 하천은 자연과 인간을 잇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인간이 잘못 건드려 놓으면 물은 재앙으로 되돌아 오기도 한다. 그러므로 댐과 하천공사는 물에게 가장 좋은 방법으로 택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물을 대하는 ‘관점’의 변화다.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물관리, 그 전환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이다.
사득환 / 행정학박사
경동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한국공공ESG학회 회장
물정책경제포럼 위원장
서울특별시 지속가능발전위원회 부위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