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 사라진 날: 지역 공동체의 해체와 회복의 실마리

집은 있는데 이웃은 없다: 고립된 도시와 잃어버린 마을

돌봄은 혼자 할 수 없다: 공동체 붕괴의 사회적 비용

작은 연결의 힘: 마을을 다시 잇는 사람들

사진: 볕뉘뉴스

집은 있는데 이웃은 없다: 아파트 사회의 고립 구조

 

“옆집에 누가 사는지 아세요?” 이 질문에 당당히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특히 도시의 아파트 단지에 사는 이들 사이에서는 더 그렇다. 높은 층수, 완벽한 방음, 전자 보안으로 완성된 삶은 안락하지만, 동시에 철저히 단절되어 있어서 가족 외의 타인과 대화를 나눌 기회조차 없는 생활은, 개인을 고립시키는 데 익숙하고 능숙하다.

아파트가 한국의 대표적 주거 형태가 된 이후, ‘마을’은 서서히 사라지고 있기에 골목을 사이에 두고 정을 나누던 이웃 관계는 사라졌고, 대문을 열고 마실을 다니던 문화는 아예 사어(死語)가 됐다. 그 결과,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혼자 놀게 되었고, 노인들은 외로움에 사무치다 어느 날 홀로 생을 마감하는 일이 빈번해져서 더 이상 사람들은 함께 사는 존재가 아닌, 같은 건물에 거주하는 ‘타인’일 뿐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은 공동체란 단순히 같은 공간에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서로를 알아보고 돌보는 관계의 네트워크라는 사실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웃이 쓰러졌는지, 아이가 방치됐는지 우리는 잘 알지 못하는데, 물리적 거리는 가까워졌지만, 심리적 거리는 끝없이 멀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라진 마을, 잊혀진 돌봄: 공동체의 실종과 그 여파

 

공동체의 해체는 곧 돌봄의 실종으로 이어진다. 마을이 있었을 땐 누군가의 부재를 눈치채는 사람이 있어서 노인이 며칠 밖에 나오지 않으면 동네 사람들이 문을 두드렸고, 어린아이가 방치되어 울고 있으면 누군가 대신 안아주었으나, 지금은 그 모든 것이 ‘개인 문제’로 치환되었다. 한 아이가 방치되어도, 한 노인이 조용히 죽음을 맞아도, 그 누구도 알지 못하고 묻지 않는다.

이 단절은 도시뿐 아니라 농촌에서도 점점 심해지고 있다.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텅 빈 마을이 늘고, 마을 단위의 생활 인프라는 사라진 지 오래되어 이장 제도, 부녀회, 마을회관 등 공동체의 기능을 수행하던 시스템은 무용지물이 됐고, 마을 사람들은 서로 얼굴도 모른 채 각자의 삶을 유지하기 바쁘다.

공동체가 사라지면, 사회 전체가 감당해야 할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여 방치된 아이는 사회 문제로 자라나고, 고립된 노인은 돌봄 비용으로 환산된다. 외로움과 단절이 만들어낸 사회적 비용은 숫자로 환산될 수 없는 고통의 총합이다. 결국 마을이 사라졌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외면한 돌봄의 흔적이 지워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연결된 사람들: 실험적 공동체의 작은 성공들

 

하지만 전국 곳곳에서 사라진 공동체를 되살리려는 움직임이 조용히 이어지고 있다. 서울 성북구의 '마을 만들기 사업', 대전의 ‘동네 돌봄 플랫폼’, 부산의 ‘마을학교’ 등 기존의 행정 중심 복지에서 벗어나,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서로를 돌보는 시스템을 구축한 사례들이다.

이들 모델의 공통점은 ‘공동체 회복’을 위해 제도보다 관계를 먼저 복원했다는 점으로 ‘성북마을살이’는 동 주민센터가 이웃의 위기 상황을 감지하고, 마을 주민이 직접 돌봄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필요한 것은 전문 인력이 아니라 ‘관계의 복원’이었다. 이웃끼리 안부를 묻고, 함께 마을잔치를 열고, 어려운 상황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도움을 요청하는 구조다.

또한 제주도의 '한동리 공동육아협동조합'은 부모들이 자발적으로 공동 육아 시스템을 만들어 운영 중으로 아이들은 여러 가족의 품에서 자라고, 부모는 혼자 육아의 부담을 지지 않는다. 이런 실험은 완벽하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사람들은 여전히 연결되기를 원하며, 단지 연결 방법을 잊었을 뿐이다.

 


회복 가능한 공동체: 마을 만들기에서 민주주의까지

 

공동체의 회복은 단순한 ‘이웃 관계 복원’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재정립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우리가 직면한 수많은 사회 문제—돌봄, 고립, 빈곤, 소외—는 결국 개인의 문제로 축소되어선 해결되지 않는다. 더불어 사는 삶을 구체적으로 설계하는 것이 지금 필요한 변화의 출발점이다.

‘마을 만들기’는 이제 행정의 사업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과제가 되어야 한다. 지역 사회의 자율성과 책임성을 높이고, 거버넌스를 민주적으로 설계하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 주민자치회가 실질적인 권한을 갖고, 돌봄·교육·문화·복지를 마을 단위에서 해결할 수 있다면, 거대 정부도, 시장도 채울 수 없는 돌봄의 빈틈을 메울 수 있다.

 

물론 이런 시스템을 작동하게 하기 위해선 제도적 지원과 시민의식, 그리고 꾸준한 신뢰 형성이 병행돼야 한다. 공동체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수많은 작은 대화, 함께한 시간, 쌓인 경험의 결과로 서서히 형성된다. 지금 우리가 마을을 다시 꿈꾸는 이유는 단지 정이 그리워서가 아니다. 그것이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방식이기 때문이다.

 


마을은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가 외면했을 뿐이다

 

마을은 시스템이 아니라 기억이고, 관계이며, 돌봄의 언어이다. 마을이 사라졌다고 느껴진다면,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그 마을을 더 이상 기억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도 누군가는 이웃의 안부를 묻고 있고, 누군가는 마을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순히 관심을 갖고, 질문하고, 문을 다시 여는 것이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이 짧은 인사가, 다시 마을을 만드는 첫 번째 문장이 될 수 있다. 당신이 있는 그곳이 마을의 시작이다.

 

 

 

작성 2025.07.17 22:11 수정 2025.07.17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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