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茶) 문화 칼럼

제1회) 불황의 터널을 지나며

-예술과 차의 숨결 내 마음의 차(吾心之茶) -

 

[SF뉴스 객원 논설위원/박금희]



 

박금희 

#문학박사(문화재학 미술사전공)

#학술연구소 온고지신/운향차문화원 대표

#사)한국민화센터 이사장



예술과 차의 숨결 내 마음의 차(吾心之茶)


 코로나 19의 긴 그림자가 세계를 덮은 지도 이미 몇 해가 지났다. 산업 전반은 물론, 인간의 일상까지도 그 흔들림 속에서 재구성되었다. 그 여파는 여전히 깊고 길게 이어지고 있으며, 특히 문화예술계는 오랜 시간 동안 침묵을 강요받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진정한 예술은 언제나 침묵의 틈에서 태어난다. 인간의 내면이 외부의 소란을 밀어내고 깊은 고요 속으로 가라앉을 때, 그곳에서 오히려 가장 진실한 표현이 움텄다. 르네상스가 흑사병 이후 도래했듯, 우리는 또 한 번의 정신적 르네상스를 준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경기는 침체하고 소비는 줄었지만, 그 공백 속에서 예술은 다시 '본질'로 회귀하고 있다. 거창한 무대가 아니어도, 수많은 창작자들이 디지털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예술을 실험하고, 거리의 벽화 한 조각이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며, 다정한 한 문장이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인다. 오히려 작은 예술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회귀와 성찰은 차 문화에도 예외 없이 닿아 있다.

한때 사치로 오해받거나, 전통의 껍질 속에만 갇혀 있던 다도의 세계는, 지금 다시 그 존재 이유를 되묻는 자리로 돌아왔다. 팬데믹은 함께 마시는 차의 기회를 줄였지만, 역설적으로 홀로 마시는 차의 의미를 되살려주었다. 다신전(茶神傳)』<음다(飮茶)>에서의 객은 적어야 좋은 것이다. 객이 많으면 수선스러워 아취(雅趣)를 잃게 한다”(飮茶以客小爲貴 客衆則喧 喧則雅趣乏矣)는 것에서 몸과 마음, 나와 자연, 시간과 존재가 함께 맺는 조용한 깨달음을 알려 주었다.

 

혼자 차를 우리는 시간은 단지 고독이 아닌, 스스로를 마주하는 내면의 의식이었다.

침체된 다도 문화는 오히려 그 본래의 정신을 다시 세우는 계기를 맞고 있다. 형식보다 마음, 격식보다 본연을 돌아보는 시간, 번잡한 일상에 자리를 마련하고, 온전한 한 잔의 차에 나를 담는 행위는, 단절된 인간관계 속에서도 나 자신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작은 의례가 되어준다.

 

우리는 지금, 물리적 거리와 경제적 어려움이 인간의 온기를 막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차는 말없이 삶에 온기를 채우는 존재이다. 뜨거운 물의 증기와 다관을 가만히 쥔 손끝, 조용히 마주 앉은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우리는 다시 인간이 되고, 삶을 느끼며, 나를 정돈한다.

 

전화위복(轉禍爲福)이란 고사는 단순한 낙관이 아니다. 그것은 복을 만드는 능력을 의미한다. 무너진 일상 속에서 다시 인간의 온기를 모으고, 다친 사회의 틈을 예술과 차로 꿰매려는 노력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예술활동은 잠시 멈출 수 있어도, 상상은 멈추지 않는다. 경기 침체로 다소 차는 멀어졌어도, 그 향기는 여전히 우리 삶 가까이에 있다.

가장 깊은 밤이 가장 별이 가까운 시간이듯, 지금은 예술과 차가 다시 피어날 귀중한 시간이다.

     글/사진 [SF뉴스 객원 논설위원/박금희]

작성 2025.07.17 20:06 수정 2025.07.18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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