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삶
몇 년 전에 있었던 일을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당시 고등학교 입학 후 첫 학부모 상담일, 아내는 퇴근 후 부리나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1학년 0반 학부모로 아이 학교에 도착했다.
사전 안내에 상담 시간이 오후 6시30분 ~ 오후 8시30분으로 기재되어 있었다. 아내는 퇴근 후 부리나케 달려간것이다. 오후 6시30분 즈음에 도착하는 아내는 도착 후 3시간이 지난, 오후 9시30분이나 되어서야 담임선생님과 상담할 수 있었다. 그나마 10분 남짓한 시간이었다.
이런 방식이었으면 최초 시간대별로 신청을 받거나, 신청 인원보다 많이 왔으면 진행 방식을 바꾸거나 어떠한 설명도 없이 그냥 마냥 기다리게 했다.
마냥 학교 교실, 학급 반 아이의 자리에서 기다리게 하는 학교 측의 운영에 아내의 마음속에는 불친절과 무례함이 생겨났다. 속상함이 스며들었으나, 학부모라는 이름으로 3시간을 기다렸다. 그런데 상담 내용은 더 당황스러웠다. 아이의 학교생활에 대하여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이 있을 터인데 지적만 하였다. "지각이 많다. 교복을 잘 안 입고 온다. 쉬는 시간에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그래서 반 분위기를 해친다는 등“.
오랜 기다림 후의 상담인데 이게 웬일인가 말이다. 선생님이 우리 아이에 대하여 맺힌 게 많나 싶을 정도이다. 문제아로 호출된 것도 아닌데 이리 일방적인 상담을 하다니...이건 상담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다.
상담이라는 이름의 불친절 언어의 향연 후 밤 10시 넘어 집에 돌아온 아내는 몸도 마음도 녹초가 되었다.
오늘은 여기서 끝내야 했는데, 아내가 가만히 있지 않았다. 기어코 공부를 마치고 밤늦게 집에 온 아들에게 아내는 선생님과의 상담 내용을 '아내의 상한 감정과 그간의 집에서의 아들의 태도를 패키지로 묶어서 훈계라는 이름으로 지적"하게 되었다. 상황은 예상대로이다.
아내의 지친 몸과 마음은 아들을 만남과 동시에 다시 전투태세, 공세적 태도로 전환하였다. 아들의 변명과 억울해함이 아내의 피드백과 결합이 되어 아주 아름다운(?)밤의 풍경을 보냈던 기억이 있다.
상담 과정을 이렇게 진행한 학교 측과 선생님도, 그 내용을 소화하지 못하고 당연한 부모의 반응을 한 부모도, 그 과정에서 (당연하지만) 피드백을 받아들일 수 없는 아들의 반응도 이날 밤의 모두는 타인에게, 자신에게 친절하지 못했다. 서로에게 친절하지 못했고, 그 과정에서 자신에게도 친절하지 못했다.
수학계의 노벨상인 필즈상을 수상한 미국 프린스턴대 수학과 교수 겸 한국고등과학원 석좌교수인 허준이 교수는 제76회 서울대학교 후기 학위수여식(22.8월)에서 축사를 위해 단상에 올라 졸업생들에게 당부한 건 도전도 꿈도 아닌 친절이었다.
"서로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친절하시길, 그리고 그 친절을 먼 미래의 우리에게 잘 전달해 주시길.” 당부했다. 그는 “(앞으로) 여러 변덕스러운 우연이, 지쳐버린 타인이, 그리고 누구보다 자신이 자신에게 모질게 굴 수 있다” 면서 “마음을 단단히 먹길 바란다. 무례와 혐오, 경쟁과 분열, 비교와 나태, 허무의 달콤함에 길들지 말길 바란다”는 졸업 축사를 하였다.
친절(親切)은 어학사전에서는 "~~대하는 태도가 매우 친근하고 다정함"으로 정의되어 있다. 무엇무엇에 대하는 태도는 상대방에 대한 태도인데, 졸업 축사에서 ‘자기 스스로에게도 친절해달라, 그것이 먼 훗날의 우리에게 전달해달라’ 한다.
우리는 일상에서 친절하지 않은 나, 지쳐버린 타인을 자주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날 밤 학부모 상담에서 만난 선생님이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친절하지 못했던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아내도, 아들도 서로에게, 자신에게 친절하지 못했다. 무례와 혐오, 경쟁과 분열, 비교와 나태, 허무의 달콤함에 순간 젖어들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친절을 위해 노력하는 삶은 이제 역류같은 삶이다. 치열하게 버티어야 한다.
아. 그 이후 놀라운 일도 있었다. 그 동일한 학교에서 또 다른 선생님이 보여준 친절함을 경험했다.
수시와 수능시험에서 원하는 기대치 달성하지 못해 낙심하여 어깨가 축 쳐져 있을 때, 이번에는 예상치 못한 친절함을 경험하게 되었다.
자신의 일의 범위가 종료가 되었음에도 아이의 진로에 대하여 마음 깊이 애씀으로 끝까지 제자가 자신의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 ‘친절한 이’를 만났다.
우리는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유사한 일들을 무수히 경험한다.
일상의 상황들 속에서 무수한 무례와 혐오, 경쟁과 분열, 비교와 나태, 허무의 달콤함과 애씀이 소용없다는 목소리를 경험하게 된다.
여기에 길들여지지 않으려 치열하게 버티어야 한다.
무엇으로?
그것은 친절함이다. 타인에게도, 자신에게도 말이다.
노년의 그럴듯한 1인실을 위해 현재를 저당잡히지 않는 삶을 위해서 말이다.
#친절 #노년의 그럴듯한 1인실#버텨야 한다.
■ 저자 소개
▷ 대표 이력 : 25년간 사회복지사로 민간, 공공, 행정기관에서 일함.
진심 담은 삶의 이야기 글쓰기 작가
▷ 대표작 : 대한민국에서 사회복지사로 산다는 것 저자
▷ 이메일 등 :
bibleprey@hanmail.net, https://www.facebook.com/biblepr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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