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우리 인간은 미완성의 아름다운 걸작품이라 한다. 빈 항아리와 같은 존재로 태어나 죽음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자신의 욕구와 가치를 담으며 살아간다. 분석심리학자 칼 융은 인간의 ‘페르소나’(persona) 와 ‘그림자’(Shadow) 이론을 제시했다. 우리가 살아가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켜 준다.
‘페르소나’는 고대 그리스에서 배우들이 연극을 할 때 쓰고 벗던 가면을 뜻하는 말이다. 사회적 직위나 타인의 기대에 맞추어 보여주려는 외부 인격을 의미한다. ‘공적인 자아 얼굴’이라고도 한다.
이에 반해 ‘그림자’는 페르소나에 가리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감추려는 허약함이나 부도덕, 부끄럽고 어두운 면을 말한다. 우리는 이러한 페르소나 역할과 내면에 자리한 ‘그림자’ 사이의 간격을 좁혀가며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저마다 다양한 페르소나의 시회적 역할을 하며 살아간다. 내 주위에 누군가는 교사, 신앙인, 사업가, 장군으로 주어진 소임을 다하며 열심히 살아온 것을 본다.
나도 다를 바 없이 인생의 무대에 올라 공군 장교, 공직 관료, 공기업 임원으로 페르소나를 바꿔 쓰며 오늘에 이르렀다. 나아가 100세 시대가 다가오며 사회복지사 1급 국가자격증을 취득, 또 다른 페르소나 가면을 예비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타적인 명분으로 포장된 삶은 부질없다는 생각에 그만 내려놓았다.
눈 깜짝할 새 지나는 세월이 무섭기만 하다. 이제 지난날 외부 시선이나 기대를 의식한 모든 페르소나 가면을 벗어 던져 버린다. 잠시 누렸던 화려함이나 위세는 간데없이 사라졌다. 그 자리에 빗물이 장독대 틈새로 빠져나간 텅 빈 그릇 같이, 인생의 빈 항아리가 되어 허무와 공허감이 쌓여간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 그냥 이대로 허송세월하며 보낼 것이 아니라, 페르소나가 피어온 인생의 꽃을 내면의 자아가 열매를 맺어 향기를 드러내야 한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영혼 깊은 곳 본질의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야 한다.
불교는 무아 사상과 내면의 번뇌를 극복하며 해탈의 깨달음으로 자아를 찾는다. 기독교 성경에는 가나 혼인 잔치에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표적이 나온다. 단순한 물리적인 변화를 넘어 인간은 겉으로만 그럴듯한 페르소나가 아닌, 내면의 진정한 변화와 거듭난 풍요로운 삶을 추구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준다.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인간은 본질 없이 던져진 존재로 사회적 페르소나 역할에 갇히지 않고, 자신만의 선택과 방식으로 삶의 의미를 창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이 외부의 페르소나를 벗고 내면의 성찰을 통해 진정한 자신과 존재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은 더 큰 자유와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을 일깨워 주고 있다
요즘 들어 인간의 평균수명은 120세를 예측하는 전망이 나온다. 이러한 세상이 오면 우리 인간의 삶은 축복일까? 아니면 재앙이 될까? 고민은 깊어진다. 그 정답은 바로 자신이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인생 빈 항아리에 무엇을 채워 가는가에 달려 있다고 본다.
지금 우리의 항아리에 무엇을 담고 있는지.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지 잠시 돌아보자. 아직도 사라질 재물이나 권력, 명예의 소유욕에 매여있다면 그 사슬을 끊어야 한다. 나는 가족, 친구. 사회공동체는 삶을 이루는 뿌리라 생각한다. 이들과 함께 어우러져 사랑이 깃든 웃음의 일상. 물 한 모금에 나물 한 접시의 편안한 소통, 값없이 거저 주는 배품과 배려는 행복한 삶의 마중물이라는 생각을 갖는다. 나아가 드넓은 세상을 좀 더 경험하며 인생 2막 텃밭을 가꾸어가는 마음의 여유를 곁들인다면 더 바랄 나위가 있겠는가? 우리 개개인 각자는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방향에 따라 새 가치를 인생의 항아리에 담아가며, 참 평화와 기쁨 충만한 삶을 누려가야 한다.
양홍석
전)문화체육관광부 일반직고위공무원
전)2014인천아시안게임 행사본부장
전)강원랜드 카지노본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