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지설명]=하이난 보아오 르청에는 ‘중국 의료개방의 실험실’을 합법적으로 경유해 데이터를 쌓고, 생산 비용을 절감하고, 현지 보험과 병원 네트워크를 통해 안정적으로 확장하는 일이 필요한 시점에서 한국 기업에게는 중국 시장을 향해 문을 열고, 동시에 리스크를 낮출 수 있는 현실적이고 전략적인 안전지대가 바로 하이난 보아오 르청 의료특구이다. 이미지제공=한류TV서울
[중소기업연합뉴스] 윤교원 기자 = 한국 기업에게 중국은 여전히 가장 크고 매력적인 시장이지만, 동시에 가장 복잡하고 진입 장벽이 높은 곳이다. 특히 바이오·의료기기 산업은 기술과 규제가 얽혀 있어 단순히 제품만 좋다고 바로 들어갈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몇 년간 나는 하이난을 자주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다. 하이난(海南) 은 이제 더 이상 단순한 휴양지가 아니다. 중앙정부가 직접 지정한 중국 유일의 전면적 자유무역항(自贸港) 이자, 보아오 르청 국제의료관광선행구(博鳌乐城国际医疗旅游先行区) 라는 이름으로 ‘중국 의료개방의 실험실’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아오 르청은 하나의 도시가 아니라 ‘시스템’이다. 중국 정부가 해외 미승인 의약품·의료기기를 국내에서 가장 빠르게 들여오고, 실제 치료 데이터(Real-World Data)를 근거로 신속한 승인과 보험 급여까지 연계해주는 유일한 지역이다. 이를 중국어로는 “쩐스스제옌쥐(真实世界研究)” 라고 부른다. 덕분에 르청에선 해외에서 임상 데이터가 확보된 혁신 치료제를 15일 만에 특별 허가해 실제 환자에게 적용하고, 짧게는 6개월 만에 조건부 상용화까지 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화시병원(华西医院) 과 같은 국내 Top 10 병원이 르청에 분원을 열고 RWD 임상에 직접 참여하면서 혁신적인 신약들이 하루라도 빨리 중국 전역에 뿌리내릴 수 있는 토대를 만든다.
이런 구조는 단순한 규제 특례로 그치지 않는다. 르청은 “5대 요소(五要素) + 6대 플랫폼(六平台)” 전략으로 설계됐다. 5대 요소는 정책 혁신, 글로벌 기업 유치, 첨단기술, 의료자원, 데이터 플랫폼이다. 가령 정책 혁신으로는 중국 최초로 의약품 ‘이원화 감독기구(二合一监管机构)’를 만들어 식약처와 보건부의 심사를 통합했고, 글로벌 기업 유치에선 화이자, 메드트로닉 같은 다국적 제약사들이 르청에 아시아태평양 자회사를 설립했다. 줄기세포·CAR-T 치료제 같은 첨단 기술 분야는 화시연구원(华西研究院) 과 같은 R&D 센터가 클러스터로 모여 산업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특히 눈여겨볼 것은 6대 플랫폼이다. 르청이 가진 특허 의약품 도입(特许药械引进) 기능은 해외 미승인 제품을 15일 내 도입할 수 있게 하고, 실제 치료 데이터 적용(真实世界数据应用) 은 임상시험을 대체해 효능을 입증한다.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공적보험과 상업보험을 연계해 고가 항암제도 연간 최대 100만 위안(약 1.9억 원)을 보상받을 수 있도록 설계됐다. 실제로 르청 특허 의약품 보험(特药险)은 연간 29위안(약 5,500원)의 저렴한 보험료로 이미 가입자 수가 6,100만 명을 넘어섰다. 이 덕분에 고가의 글로벌 항암제도 중국 시장에 진입한 후 안정적으로 판매될 수 있다.
나는 이런 시스템을 보면 ‘르청은 의료계의 실리콘밸리이자 홍콩 같은 관문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는 말을 실감한다. 해외 기술이 르청을 통해 중국에 들어오고, 중국의 서비스가 다시 글로벌로 나간다. 르청은 단일한 병원단지가 아니다. 총 30개 고등급 의료기관이 들어와 있고, 이 중에는 루이진병원(瑞金医院), 치루제약 부속병원(齐鲁医院) 같이 암 치료 명문 병원도 자리한다. 의료관광과 연결되면 더 강력하다. VIP 항공편, 5성급 호텔, 치료 패키지까지 결합해 러시아, 동남아 고객이 항암 치료와 휴양을 동시에 누리는 시스템은 이미 연간 수만 명 수준까지 올라왔다.
한국 기업에게 르청은 단순한 해외 시장이 아니다. 르청에서 RWD를 기반으로 빠르게 승인을 받고, 하이커우 고신구(海口国家高新技术产业开发区)나 저장성 같은 외부 산업단지에서 대량 생산하는 “플라잉 게이트(飞地)” 모델을 활용하면 생산비는 줄이고 기술은 지킬 수 있다. 실제로 선셩제약(先声药业)이 르청에서 항암제 승인을 받은 뒤 장쑤성 공장에서 GMP 생산을 하고 전국으로 판매망을 확대한 사례는 벤치마킹할 만하다.
한국 기업이 진출할 때 가장 큰 걱정은 비용과 리스크다. 르청은 이에 대한 해답을 갖고 있다. 르청은 제3류 의료기기 개발 시 최대 56억 원, 고급 제조시설 구축 시 최대 126억 원까지 보조금을 지원하며, 1류 신약을 개발할 경우 성과에 따라 최대 110억 원 규모의 지원금 수혜도 가능하다. 물론 모든 보조금은 선지급이 아니라 실적 달성 후 단계별로 나눠 받는 구조다. 따라서 현지 파트너와 IP 관리, 네트워크 구축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지원금 혜택을 온전히 받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한국 기업에 늘 이렇게 말한다. 활용 전략은 단순하다. 르청을 중국 시장의 테스트베드로 삼아 RWD 기반으로 빠르게 승인받고, 하이커우나 중국 본토 외지 생산기지를 연결해 생산비를 낮춘 뒤 전국으로 확장하라. 특히 한국-르청-서울 직항 항공로가 주 7회까지 운영되고 있어 한국 환자를 대상으로 한 의료관광 패키지까지 연계하면 시너지는 배가된다. 실제로 르청에서는 한국 기업이 화시연구원과 공동개발한 CAR-T 치료제 같은 첨단 기술을 동남아·러시아 환자까지 겨냥해 글로벌 브랜드로 키울 수 있다.
무엇보다 르청은 단순한 정책 실험이 아니다. 2025년까지 해외 신약 도입 기간을 기존 5년에서 1.5년으로 70% 이상 단축하고, 연간 50만 명의 해외 환자를 유치해 200억 위안(약 3.8조 원) 규모의 의료관광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30년에는 아시아·중동·러시아를 아우르는 의료 허브로 성장해 500억 위안(약 9.5조 원)까지 시장을 키운다는 청사진도 이미 공개됐다. 나는 이 모든 로드맵이 공허한 구호로 끝나지 않을 거라 본다. 실제로 다국적 제약사 MSD(默沙东)는 르청에 아시아태평양 자회사를 설립했고, 그 파급력은 이미 한국 기업에게도 벤치마크가 되고 있다.
이제 한국 기업이 할 일은 무턱대고 본토 시장으로 직진하는 것이 아니라, 르청이라는 ‘중국 의료개방의 실험실’을 합법적으로 경유해 데이터를 쌓고, 생산 비용을 절감하고, 현지 보험과 병원 네트워크를 통해 안정적으로 확장하는 일이다. 르청은 이제 선택지가 아니다. 한국 기업에게는 중국 시장을 향해 문을 열고, 동시에 리스크를 낮출 수 있는 현실적이고 전략적인 안전지대다.
이 기회를 놓친다면 중국 시장에서 한국 바이오·의료기업이 만들어낼 수 있는 실질적 성공의 확률은 그만큼 낮아질 것이다. 지금은 르청을 통해 세계적 의료를 누리고(享世界医疗), 건강한 꿈을 함께 실현할 때다(就健康梦想).
윤교원 대표 / The K Media&Commerce / kyoweon@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