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한국의 지방소멸 위기는 단순한 인구 감소를 넘어 지역 경제, 사회 구조, 문화적 정체성의 붕괴로 이어지는 복합적 문제이다. 2025년 현재 전국 228개 시군구 중 121곳(53.1%)이 소멸 위험 지역으로 분류되며, 전남·경북·강원 등 6개 광역자치단체는 ‘소멸 위험 진입’ 단계에 직면해 있다. 이는 수도권 집중화, 저출산·고령화, 지역 경제 기반 약화가 맞물린 결과로, 종합적 정책 대응이 시급한 실정이다.
지방소멸의 핵심 문제점
첫째, 인구 구조의 악순환이다. 20~39세 여성 인구 대비 65세 이상 인구 비율, 즉 소멸 위험지수가 상주시(0.18%) 등 전국 52개 지역에서 ‘고위험’ 수준을 보이고 있다. 청년층의 지속적 유출은 지역 노동력 부족과 산업 경쟁력 약화를 초래하며, 이는 다시 일자리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불러온다.
둘째, 사회·의료 인프라의 붕괴이다. 인구 감소 지역에서는 의료와 교육 등 필수 서비스의 접근성이 급격히 저하되고 있다. 경북 영양군의 치료가능 사망률은 서울 강남구의 3.6배에 달하며, 충남 예산군의 자살률은 경기 용인시의 4.4배에 이른다. 이는 지역 간 삶의 질 격차를 더욱 벌어지게 하는 구조적 요인이다.
셋째, 경제적 불균형의 심화이다. 지방 소비 시장의 축소는 기업 매출 감소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투자 위축과 고용 위축을 불러오며 지역 경제의 활력을 잃게 한다.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의 양면성
이재명 정부의 핵심 공약 중 하나인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지역 균형 발전을 표방하며 기대와 우려가 교차되고 있다. 지역 거점 국립대(부산대, 경북대 등)를 연구중심대학으로 육성함으로써 인재 유출을 방지하고, 지역 산업과의 연계를 강화하려는 시도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또한 대학 서열 완화와 입시 경쟁 완화라는 부수적 효과도 기대된다.
그러나 이 정책은 몇 가지 중요한 비판을 동반한다. 첫째, 예산 효율성의 문제이다. 현재 서울대가 연간 정부출연금으로 받는 6,588억 원 수준을 감안할 때, 10개 대학에 동일한 수준의 지원이 이루어질 경우 연간 6조 원 이상이 소요되며, 이에 대한 재원 마련 방안은 미흡한 상태이다.
둘째, 지역 대학 간 격차의 심화이다. 거점 국립대에 자원이 집중될 경우, 비수도권의 일반 지방대학이나 사립대학은 오히려 자금 부족과 인재 유출로 더욱 도태될 수 있다.
셋째, 명칭 변경의 한계이다. 대학 경쟁력은 간판이 아니라 연구 인프라와 학문적 전통에 기반하므로, 단순히 ‘서울대 ○○캠퍼스’로 이름을 바꾸는 방식은 글로벌 경쟁력 확보에 한계가 있다.
지방소멸 대응을 위한 3대 정책 제안
첫째, 지역 맞춤형 산업 전략이 필요하다. 구미·영주 등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지역 주력 산업의 디지털 전환과 특화된 산업 클러스터 조성이 효과적이다. 예컨대 경상대는 우주항공 산업, 부산대는 해양산업과의 연계를 강화해야 한다. 중앙정부의 일방적 지원보다는 지자체 주도의 사업 기획을 중심으로 한 ‘보텀업 방식(Bottom-up Approach)’이 요구된다.
둘째, 규제 특례 확대 및 생활 인프라 혁신이 절실하다. 인구감소지역(현재 89개 지정)에 대한 규제 완화—예를 들어 폐교 재활용, 건폐율·용적률 상향 등—을 통해 지역 활성화를 유도할 수 있다. 아울러 ‘1인 2주소제’ 도입 등 이중 거주 방식을 제도화하여 지역 내 생활 인구 확대 및 세수 기반 다변화를 도모해야 한다.
셋째, 교육과 일자리 연계의 강화가 필요하다. ‘서울대 10개 만들기’와 같은 거점 중심 전략에 더해, 지역 사립대학과의 협업 체계를 구축하여 교육의 포용성을 확대해야 한다. 일본의 ‘지방창생 인턴십’ 사례를 참고하여, 지역 청년이 실제로 정착하고 일할 수 있는 구조를 제도화해야 한다.
통합 정책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지방소멸 위기는 단순한 인구 문제가 아닌 경제, 사회, 교육 시스템 전반의 총체적 위기이다.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은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한 노력으로 볼 수 있으나, 예산 효율성과 지역 간 포용성 확보 없이는 오히려 또 다른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
규제 완화, 산업 재편, 교육 연계 등을 종합한 통합적 접근만이 지방 소멸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 정부는 중앙 주도의 획일적 개발에서 벗어나, 지자체의 자율성과 책임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할 시점이다.
박동명 / 법학박사
· (사)한국공공정책학회 부회장
· 대한케어복지학회 회장
· 전)국민대학교 행정대학원 외래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