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최근 국회 운영을 둘러싼 여야의 대립이 극에 달하고 있다. 법제사법위원장 등 핵심 상임위원장직을 둘러싼 힘겨루기, 총리 인준을 둘러싼 강대강 대치, 그리고 주요 법안 처리 과정에서 반복되는 일방통행식 의사결정은 '협치'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다. 여당과 야당은 각각 자신들의 논리만 내세우며 상대방을 향해 비난의 화살을 쏘아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민들은 과연 국회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의문을 갖게 된다.
하지만 지금이야말로 여야가 진정한 협치의 길을 모색해야 할 때다. 갈등과 대립만으로는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으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국회가 국민을 위한 논의의 장이 아니라 권력 투쟁의 장으로 전락한 현실을 직시하고,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협치의 본질과 국민의 요구
협치는 단순히 정치적 미사여구가 아니다. 국민이 바라는 협치는 여야가 당리당략을 넘어 국가와 국민을 위한 실질적 협력과 타협을 이루는 것이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서로 다른 정치적 견해와 이념이 존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이러한 차이를 어떻게 조율하고 국민의 이익을 위해 수렴시키느냐에 있다.
현재 우리 정치 현실을 보면, 여야 모두 자신들만이 국민의 뜻을 대변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국민의 뜻은 단일하지 않으며, 다양한 계층과 집단의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포괄한다. 따라서 진정한 협치는 이러한 다양성을 인정하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최대공약수를 찾아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여야의 극한 대립과 승자독식의 정치는 결국 국회가 국민을 위한 논의의 장이 아니라, 권력 투쟁의 장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정책 논쟁보다는 정쟁이 우선시되고, 국민의 생활과 직결된 현안들이 정치적 셈법에 밀려 뒷전으로 밀려나는 현실이 반복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들이 정치에 대한 불신을 키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왜 협치가 어려운가?
우리 정치의 협치가 어려운 이유는 구조적이고 제도적인 문제에 기인한다. 먼저 대통령 중심제의 특성상 여당은 대통령과 일체감을 갖고 행정부의 정책을 뒷받침하려 하고, 야당은 차기 정권 창출을 위해 현 정부를 견제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이러한 구조적 대립은 협치보다는 갈등을 조장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승자독식의 선거제도 역시 협치를 어렵게 만드는 주요 원인이다. 우리나라의 소선거구제는 다수당이 압도적 의석을 차지하게 하거나, 반대로 여소야대 상황을 만들어내기 쉽다. 이런 상황에서는 다수당이 독주하거나, 여야가 극한 대립하는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기 쉽다.
국회의 제도적 미성숙도 문제다. 상임위원장 배분 등 국회 운영의 기본 원칙들이 명확하게 제도화되지 않아, 매번 정치적 협상의 대상이 되고 있다. 또한 정책 개발과 입법 지원을 위한 전문성이 부족해, 감정적 대립보다는 합리적 토론을 통한 문제 해결이 어려운 상황이다.
여당은 다수 의석에 기대 일방통행을 시도하고, 야당은 다음 선거를 위한 정치적 이득에 집중하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악순환 속에서 정책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은 떨어지고, 장기적 비전에 기반한 국정운영은 어려워진다.
상임위원장 배분 등 국회 운영의 오랜 관행마저 무시된다면, 견제와 균형이라는 의회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도 무너진다. 관행이라는 것은 오랜 시간 축적된 지혜의 산물이며, 이를 무시하는 것은 민주주의 제도 자체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는 일이다.
실질적 협치를 위한 조건
진정한 협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국회 운영의 기본 원칙인 '견제와 균형'의 정신을 존중해야 한다. 상임위원장 배분 등에서 오랜 관행과 합의를 무시하는 것은 협치의 기반을 허무는 일이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지배가 아니라 다수의 통치에 소수의 권리를 보장하는 체제다. 따라서 다수당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독점할 수는 없으며, 소수당의 정당한 권리와 역할을 인정해야 한다.
둘째, 여야 모두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협치는 힘의 과시나 상대방에 대한 겁박이 아니라,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대변하는 정치적 책임에서 출발해야 한다.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고 해서 상대방을 적으로 규정하거나, 인격적 모독을 가해서는 안 된다. 건전한 비판과 견제는 민주주의의 꽃이지만, 무조건적인 반대와 인신공격은 민주주의를 병들게 한다.
셋째, 말이 아닌 행동으로 신뢰를 쌓아야 한다. 대통령의 시정연설, 여야 지도부 간 만남 등 '협치의 제스처'가 실제 입법과 국정운영에서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 카메라 앞에서는 협치를 외치면서 뒤로는 상대방을 헐뜯는 이중적 태도로는 진정한 신뢰 관계를 구축할 수 없다. 작은 약속부터 차근차근 지켜나가면서 상호 신뢰의 기반을 다져야 한다.
넷째, 제도적 개선도 병행되어야 한다. 상임위원장 배분의 명확한 기준 마련, 국회 내 정책지원 역량 강화, 선거제도 개혁 등 구조적 보완이 필요하다. 개인의 선의나 정치적 리더십에만 의존하는 협치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제도적 장치를 통해 협치가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다섯째, 정책 중심의 토론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현재 국회 논의를 보면 정책의 장단점보다는 정치적 공방에 치중하는 경우가 많다. 국민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누가 이기고 지는지가 아니라, 어떤 정책이 국민의 삶에 더 도움이 되는지다. 따라서 데이터와 근거에 기반한 정책 토론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협치 실현을 위한 구체적 방안
이론적 조건들을 넘어 실제로 협치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들을 제시해보면 다음과 같다.
국회 운영 방식의 개선이 우선되어야 한다. 상임위별로 여야 간 정기적 간담회를 제도화하고, 주요 법안에 대해서는 충분한 토론 시간을 보장해야 한다. 또한 법안 심사 과정에서 전문가 의견 청취와 공청회 개최를 의무화하여, 보다 신중하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정당 간 소통 채널의 다양화도 필요하다. 현재처럼 대표급 회담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실무진 간 정기적 협의체를 운영하고, 주제별 초당적 연구모임을 활성화해야 한다. 특히 장기적 국가전략이 필요한 분야에서는 여야가 공동으로 정책연구를 수행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만하다.
국민 참여를 통한 협치 동력 확보도 중요하다. 주요 정책 결정 과정에서 국민 의견수렴을 제도화하고, 시민사회와의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 국민들이 정치권의 협치 노력을 직접 체감할 수 있을 때, 정치권도 협치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해외 사례에서 배우는 협치의 지혜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의 협치 사례를 살펴보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독일의 연정(연립정부) 시스템은 서로 다른 정당 간에도 정책 협의를 통해 안정적 국정운영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이는 우리와 같은 다당제 상황에서 특히 참고할 만하다.
네덜란드의 경우, 주요 정책 결정 시 사회적 대화를 중시하는 '폴더 모델'을 통해 노사정 간 협의를 제도화했다. 이러한 접근법은 정치권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협치 문화 형성에 기여하고 있다.
북유럽 국가들의 합의제 민주주의 모델도 주목할 만하다. 이들 국가에서는 소수당의 의견도 충분히 반영되는 의사결정 과정을 통해 사회 통합과 정치 안정을 동시에 달성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해외 사례들을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겠지만, 협치에 대한 철학과 접근 방식에서는 배울 점이 많다. 특히 제도적 장치를 통해 협치를 뒷받침하는 방식은 우리도 적극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국민을 위한 '정치 복원'의 길로
정치는 갈등과 대립의 예술이지만, 그 목표는 국민의 삶을 개선하는 데 있다. 여야 모두 '국민을 위한 협치'라는 대명제를 잊지 말아야 한다. 정치인들의 일차적 책무는 자신을 선출해준 국민에 대한 것이며, 당리당략은 그 다음 문제다.
협치의 핵심은 상호 존중과 신뢰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 협치도 대화와 타협, 상호 존중이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양보하는 것도, 무조건적으로 반대하는 것도 협치가 아니다. 서로 다른 입장을 인정하면서도 공통분모를 찾아가는 과정이 바로 협치의 본질이다.
현재 우리 정치는 위기에 있다. 국민들의 정치 불신은 날로 커지고 있고, 정치권에 대한 실망감은 깊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여야가 계속 대립만 한다면,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마저 흔들릴 수 있다.
하지만 위기는 동시에 기회이기도 하다. 지금 이 순간 여야가 진정한 변화를 보여준다면,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하고 새로운 정치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다. 협치는 어려운 일이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정치인들이 조금만 더 넓은 마음과 긴 안목을 갖는다면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
이제는 여야 모두가 변화해야 할 때다. 협치의 시작은 상대를 인정하고, 국민의 뜻을 두려워하는 데서 출발한다. 여야가 협치를 통해 대한민국의 새로운 도약을 이끌어내길 간절히 기대한다. 국민들도 정치권의 변화를 지켜보면서, 건설적 비판과 격려를 아끼지 않기를 바란다.
협치는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작은 신뢰부터 차근차근 쌓아가면서, 점진적으로 협력의 폭을 넓혀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도 있을 것이고, 좌절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진정한 협치의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정치의 새로운 장을 여는 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부터 시작된다. 여야 정치인들의 결단과 국민들의 지지가 함께할 때, 우리는 더 나은 민주주의를 만들어갈 수 있다.
박동명 / 법학박사
· (사)한국공공정책학회 부회장
· 대한케어복지학회 회장
· 전)국민대학교 행정대학원 외래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