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글로벌 원전 시장 선점 위한 차세대 대형 원자로 개발 본격화
한국수력원자력이 급격히 확대되는 국제 원자력발전 시장에서 수출 품목을 다변화하고 시장 내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새로운 대형 원전 모델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이는 글로벌 원전 부흥기에 발맞춰 한국의 독자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경쟁 우위를 확보하려는 전략적 움직임으로 분석됩니다.
차세대 대형 원자로 개발은 3.5세대 경수로형 원자로의 노형과 설계 방향을 정립하는 개념 개발 단계부터 시작됩니다. 본 사업의 핵심 목표 중 하나는 원자력 발전소의 핵심 기능인 '원자로 냉각재 계통(RCS)' 설계를 기존의 미국 기술 기반에서 벗어나 한국 고유의 기술로 새롭게 구축하는 것입니다.
RCS는 원자로에서 핵분열 반응으로 생성된 열 에너지를 증기 발생기로 전달하여 터빈 발전 시스템을 구동시키는 고온, 고압의 냉각수를 순환시키는 필수적인 시스템입니다. RCS 내부에는 원자로 본체, 냉각재 펌프, 가압기, 증기 발생기 등 주요 기기들이 포함되며, 이러한 기기들의 배치와 상호 연결 구조를 설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미국은 오랜 역사를 가진 원자로 설계의 원천 기술 보유국으로서 RCS 기본 설계에 대한 기술적 영향력이 큰 편입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이번 자체 개발을 통해 이러한 기술적 종속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RCS 설계를 완성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6년 만의 부활, K-원전 생태계 총결집하여 미국 의존 벗어난 독자 노형 구축 추진
한국수력원자력이 대형 원전 모델 개발에 나선 것은 약 6년 만입니다. 2016년에 시작되었던 혁신형 원전 프로젝트 '아이파워(I-Power)'가 특정 정책 기조로 인해 2019년에 중단된 바 있습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원자력 에너지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한국의 원전 산업이 국제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핵심 원천 기술을 자체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판단하에 이번 개발 사업을 재개한 것으로 보입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최신 전망에 따르면, 2050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최대 557기가와트(GW) 규모의 새로운 원자력 발전 설비가 추가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중 소형모듈원전(SMR)이 약 24%를 차지하고, 나머지 76%는 대형 원전이 차지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통상 대형 원전의 용량이 1GW 수준임을 고려할 때, 향후 약 25년간 매년 최소 16기 이상의 대형 원전 건설이 새롭게 시작될 것으로 예상되며, 이는 한국에게 큰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한국수력원자력이 주도하는 6년 만의 대형 원자력발전소 원천기술 개발 프로젝트는 국내 원자력 분야의 학계와 산업계가 총망라되어 참여하는 초대형 국책사업이 될 전망입니다. 원전 산업 관계자들은 한국이 원전 설계부터 핵연료, 시공, 주요 부품 제작에 이르기까지 원자력발전소 건설 및 운영에 필요한 모든 역량을 갖춘 유일한 국가 중 하나라는 점을 강조하며, 이러한 포괄적인 산업 생태계가 이번 프로젝트 성공의 기반이 될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주요 참여 기관별 역할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한국원자력연구원(KAERI)은 프로젝트의 초기 단계인 개념 설계 및 기본 설계 분야에서 강점을 발휘하여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할 예정입니다.
원자로 내부에서 핵분열이 일어나는 중심부인 노심의 구조와 구성 요소를 설계하는 노심 설계와, 핵연료 집합체를 최적의 위치에 배치하여 출력 효율과 수명을 극대화하는 핵연료 배치 작업은 한전원자력연료(KNF)가 담당하게 됩니다.
원자로 시스템 내 각 장치들이 어떻게 상호 연계되어 기능할지를 설계하는 계통 설계는 한국전력기술의 주요 역할입니다. 이는 냉각 계통, 제어 계통, 전원 계통 등 원전 시스템 전반의 연결 구조를 설계하는 복잡하고 중요한 과정입니다.
원자로의 핵심 기능인 '두뇌' 역할을 하는 계측 제어 시스템과 주요 대형 기기의 제작은 두산에너빌리티가 주도할 예정입니다. 계측 제어 시스템은 원자로의 온도, 압력, 중성자량 등을 실시간으로 감지하고 이를 바탕으로 원전을 자동 및 수동으로 정밀하게 제어하는 시스템입니다.
한국은 2012년 '뉴테크 프로젝트'를 통해 이 계측 제어 시스템과 냉각재 펌프, 안전 해석 코드 등 3대 핵심 기술을 성공적으로 국산화한 바 있으며, 특히 계측 제어 시스템과 냉각재 펌프는 두산에너빌리티가 기술 이전을 받아 자체적으로 생산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부품 단위에서는 두산에너빌리티가 최근 활발히 개발 중인 원자로 압력 용기 제조 신기술을 적용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원자로 압력 용기는 핵연료가 담긴 노심과 냉각재를 안전하게 감싸는 두꺼운 강철 구조물로, 기존에는 제작에 5~6년이 소요되었습니다. 이는 대형 단조 주물을 제조하고 반으로 접합한 뒤 용접, 가공, 검사 과정을 여러 차례 반복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최근 소형모듈원자로(SMR) 개발이 가속화되면서 원전 부품 제작 속도를 획기적으로 단축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습니다.
업계 관계자들은 건설 기간이 짧은 SMR의 특성상, 원자력안전법상 인허가 완료 전에 부품을 미리 주문하기 어려운 제약이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고자 두산에너빌리티는 전자빔 용접, HIP(열간 등방압) 기술 등 첨단 제조 기법을 활용하여 원자로 압력 용기 제작 기간을 2~3년 내로 단축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러한 기술은 향후 대형 원자로 부품 제작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폭증하는 세계 원전 수요 대응, 한국수력원자력 3.5세대 대형 원자로 개념 개발 착수
한편, 미국, 프랑스, 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도 신규 대형 원전 시장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 아래 자국의 원전 모델을 꾸준히 개량하고 있습니다.
2023년 11월 국제원자력기구(IAEA) 자료에 따르면, 당시 전 세계에서 건설 중인 원전 63기 중 러시아 모델(VVER)이 26기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이어서 중국의 HPR, CAP 모델이 24기로 2위를 기록했으며, 한국의 APR(4기), 프랑스의 EPR(3기) 등이 그 뒤를 잇고 있습니다.
미국의 웨스팅하우스는 2005년에 3.5세대 경수로형인 AP1000을 개발했습니다. 이후 중국 싼먼 원전 등에 이 모델을 수출하고 미국 내 조지아주 보글 원전 건설에 참여했지만, 그 이후 새로운 착공 소식은 드문 상황입니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2050년까지 미국의 원자력 발전 용량을 현재의 100GW에서 400GW로 대폭 늘리는 행정 명령을 발동하겠다고 밝힌 것은, 러시아와 중국 모델에 비해 시장 점유율이 낮은 AP1000 모델의 확대를 통해 국제 경쟁력을 되찾으려는 의도로 해석됩니다.
행정 명령 초안에는 2017년 이후 전 세계에 건설된 원자로의 대부분이 러시아와 중국 기술에 기반하고 있으며, 이러한 추세를 막고 미국의 원전 부흥을 위해 신속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프랑스 역시 프랑스전력공사(EDF)와 프라마톰 등이 기존 유럽형 가압수형 원자로(EPR)를 개선한 EPR2를 개발했습니다. EPR2는 기존 EPR 모델의 복잡성과 건설 지연 문제를 해결하고자 설계된 차세대 모델입니다. 다만 EPR2는 아직 준공된 사례가 없으며, 2027년경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에 첫 번째 EPR2 원전이 건설될 예정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 미쓰비시중공업이 3.5세대 경수로형 원자로인 SRZ 1200의 기본 설계를 지난해 완료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각국이 차세대 대형 원자로 개발 경쟁에 뛰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수력원자력의 새로운 노형 개발 착수는 글로벌 원전 시장에서의 입지를 더욱 확고히 하고 미래 수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중요한 발판이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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