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담일보=김수정 기자] 석유와 광물 등 천연 자원에 기반해 성장해 온 카자흐스탄이 인공지능(AI)과 기술 스타트업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키우기 위한 투자에 나선다. 세계은행은 7,500만 달러 규모의 개발금융을 투입해 AI 인재 양성과 기술 인프라 구축, 스타트업 성장까지 연결하는 생태계 조성을 지원한다.
세계은행은 지난 9월 30일 카자흐스탄의 기술 스타트업 창업과 사업화, 성장을 지원하는 ‘인공지능 학습, 기업가 정신, 시장 발전(ALEM·Advancing Learning, Entrepreneurship, and Markets for Artificial Intelligence) 프로젝트’에 119억9970만 엔, 약 1050억 원 상당의 대출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은 단순히 AI 기업에 자금을 지원하는 데 있지 않다. 세계은행은 카자흐스탄 기술 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전문 디지털 인력 부족과 고성능 컴퓨팅 접근성, 로봇 시제품 제작 인프라, 성장 단계 투자자금 부족 등을 지목했다. 이에 따라 사업은 인재 양성과 기술 인프라, 스타트업 지원, 투자시장 조성을 하나의 체계로 묶었다.
먼저 AI 산업에 필요한 인력을 늘리는 데 투자가 이뤄진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이번 사업을 통해 매년 5,000명 이상이 기초 AI와 데이터과학, 머신러닝 관련 교육을 받을 예정이다. 2031년까지 고급 기술 교육을 이수하는 청년은 2만8,000명을 목표로 한다.
기업이 AI 기술을 실제 제품과 서비스로 연결할 수 있도록 인프라도 확충한다. 고성능 컴퓨팅 접근성을 높이고 로봇 기술의 시제품을 제작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해 연구나 교육 단계에 머문 기술이 사업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원한다. 세계은행 사업 문서에는 AI와 산업 4.0 관련 차세대 기술의 개발과 활용이 주요 사업 구성요소로 포함돼 있다.
스타트업 육성도 주요 축이다. 세계은행은 2031년까지 초기 창업과 시드 투자, 글로벌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 등을 통해 800개 스타트업을 지원하고, 50개 이상의 기업이 벤처투자를 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사업을 통해 약 1만 개의 일자리 창출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카자흐스탄이 기술 스타트업에 주목하는 배경에는 경제구조 다각화가 있다. 카자흐스탄은 중앙아시아 최대 경제 규모를 가진 자원 부국이지만 성장 과정에서 석유와 가스, 광물 등 천연자원의 영향이 컸다. 세계은행 역시 카자흐스탄을 자원 중심 경제로 평가하면서 생산성과 산업 다각화를 높이는 것이 향후 성장의 주요 과제라고 보고 있다.
기술산업은 이러한 경제구조를 보완할 수 있는 분야로 부상하고 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카자흐스탄의 정보통신기술(ICT) 수출액은 2019년 1억3,200만 달러에서 2025년 11억 달러로 증가했다. 카자흐스탄은 이를 2030년까지 50억 달러 수준으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두고 있다. 기술 스타트업이 초기 창업 단계를 넘어 규모를 키우기 위해서는 자금 공급이 필요하다. 세계은행은 카자흐스탄에서 성장 단계의 위험자본이 연간 약 2,000만~2,500만 달러 부족한 것으로 추산했다. 초기 창업 기업이 어느 정도 성장한 뒤 추가 투자를 받아야 하는 시점에서 자금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이번 사업에는 2,000만 달러 규모의 ‘펀드오브펀드(Fund-of-Funds)’가 포함됐다. 하나의 공공기관이 개별 스타트업을 직접 선정해 자금을 지급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여러 투자펀드에 자금을 공급해 민간 벤처캐피털과 함께 기업에 투자하는 구조다.
세계은행은 이번 프로젝트를 민간자본 활성화 사업으로 분류하고 있다. 개발금융을 민간투자의 대체재로 사용하는 것이 아닌 시장에 먼저 자금을 공급해 민간투자자의 참여를 끌어내는 방식이다. 세계은행은 ALEM 프로젝트를 통해 2031년까지 최소 6,000만 달러의 민간자본을 추가로 유치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러한 구조는 카자흐스탄 정부가 직접 AI 기업을 육성하는 방식과도 차이가 있다. 정부와 세계은행이 인재·인프라·초기 자금을 제공하되, 기업의 성장 과정에서는 민간 벤처투자와 해외 네트워크가 참여하도록 해 기술기업이 시장 안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이번 사업은 카자흐스탄의 ‘국가개발계획 2029’와 ‘AI 개발 개념 2024~2029’에도 연계된다. 사업 시행은 카자흐스탄 인공지능·디지털개발부가 맡고, Astana Hub와 Alem Capital Management가 참여한다. 대출은 세계은행그룹의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을 통해 제공된다. 세계은행은 앞선 ‘생산적 혁신 촉진 프로젝트’를 통해 카자흐스탄 스타트업과 연구팀 162곳을 지원했으며, 이들이 거둔 초기 매출과 유치한 민간투자가 합계 2,300만 달러를 넘고 약 2,000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졌다고 밝혔다. ALEM 프로젝트는 이런 기존 지원을 AI와 첨단기술 분야로 확대하는 후속 성격을 갖는다.
다만 대출 승인 자체가 카자흐스탄의 산업 다각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향후 관건은 AI 교육과 컴퓨팅 인프라 투자가 실제 기술기업의 성장으로 연결되는지, 지원받은 스타트업이 국내외 시장에서 사업을 확대할 수 있는지, 그리고 목표로 한 민간자본이 실제 유입되는지다. 카자흐스탄의 이번 프로젝트는 자원 부국이 개발금융을 활용해 새로운 산업을 육성하는 방식의 한 사례다. 석유와 광물에 더해 AI와 기술 스타트업을 새로운 성장축으로 만들려는 시도가 실제 경제구조 변화로 이어질지는 2031년까지 스타트업 성장과 민간투자, 일자리 창출 성과를 통해 확인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