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경은 교수의 요리에세이 『오늘도 핑크 한스픈』 23화. 타이틀보다 무거운 앞치마

이름 앞에 붙은 화려한 호칭보다 매일 조리대 앞에서 지켜야 할 기본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다

한식대가가 된 뒤에도 재료를 씻고 간을 보고 실패를 고치는 일은 달라지지 않았다

타이틀을 증명하려 애쓰기보다 한 끼에 책임을 다하는 요리인으로 살아가기로 한 심경은의 다짐

 

 

 

23화. 타이틀보다 무거운 앞치마
한식대가라는 이름을 얻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처음에는 새로운 호칭이 낯설었다.
누군가 내 이름 앞에 타이틀을 붙여 부르면 기분이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어색했다.


‘정말 내가 이 이름으로 불려도 될까.’
그런 마음이 있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처음의 설렘은 차분해졌다.
그리고 어느 날 평소처럼 조리복을 꺼내 입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결국 오늘도 앞치마를 묶어야 하는구나.’
타이틀을 얻기 전에도 그랬고,
얻은 뒤에도 그랬다.


재료는 여전히 씻어야 했다.
칼은 내가 잡아야 했고,
간도 내가 봐야 했다.


접시 가장자리가 지저분하면 내가 닦아야 했다.
음식이 마음처럼 되지 않으면 다시 만들어야 했다.


그 순간 조금 웃음이 났다.
사람들이 나를 부르는 이름은 달라졌지만 조리대 앞의 나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타이틀을 얻기 전에는 그 이름을 갖게 되면 뭔가 많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조금 더 자신감이 생기고,


사람들도 나를 다르게 볼 것이고,
나 역시 스스로를 전문가라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될 것이라고.


물론 달라진 것도 있었다.
책임감이 생겼고,
내 음식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기대도 느껴졌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오히려 달라지지 않는 것이었다.
매일 기본을 지키는 일.
그것은 타이틀과 상관없이 계속되어야 했다.


앞치마는 참 평범한 물건이다.
기름이 튀는 것을 막아주고,
밀가루가 옷에 묻는 것을 조금 줄여준다.


누구나 부엌에서 쉽게 두를 수 있는 물건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내게 앞치마는 조금 다른 의미가 되었다.


앞치마를 묶는 순간,
‘이제 말보다 음식으로 보여줘야 한다.’
는 마음이 들었다.


누군가 나를 한식대가라고 불러도 음식이 엉망이면 아무 소용이 없었다.
타이틀은 접시에 올라가지 않는다.


결국 먹는 사람은 내 이름이 아니라 내가 만든 음식을 먹는다.
그 사실이 참 분명했다.


음식 앞에서는 누구나 솔직해진다.
명함에 어떤 글자가 적혀 있든,
어떤 상을 받았든,
사람은 한입 먹고 바로 느낀다.


맛있는지.
간이 맞는지.
재료가 제대로 익었는지.
정성이 느껴지는지.


그 생각을 하면 오히려 마음이 단순해졌다.
‘오늘 이 음식에 최선을 다하자.’
그것이면 됐다.


한식대가라는 이름을 받은 뒤 오히려 사소한 것들이 더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채소의 시든 부분 하나.
도마의 청결 상태.


칼날의 상태.
재료를 올려놓는 순서.
한 그릇에 담기는 양.
접시 가장자리의 작은 소스 자국.


예전에는 지나쳤을지도 모르는 것들이 신경 쓰였다.
누가 지적해서가 아니었다.
내가 스스로 더 보고 싶어졌다.


타이틀을 얻었다는 것은 더 대단한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뜻보다, 작은 것을 더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처럼 느껴졌다.
어떤 날은 음식이 정말 잘됐다.


첫맛부터 마음에 들고,
플레이팅도 생각했던 대로 나왔다.
그럴 때면 기분이 좋았다.


‘오늘은 괜찮다.’
하지만 그런 날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간이 조금 강한 날도 있었고,


예상보다 수분이 많이 나오는 날도 있었다.
재료의 상태 때문에 생각한 식감이 나오지 않는 날도 있었다.


타이틀이 생겼다고 실패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실패를 대하는 자세가 달라져야 했다.


예전에는 음식이 잘되지 않으면 속상한 마음부터 들었다.
‘왜 이렇게 됐지?’
한숨이 나왔다.


이제는 먼저 원인을 보려고 했다.
무엇이 달랐을까.
재료인가.


불인가.
시간인가.
내 판단이 잘못된 것인가.


그리고 다음에는 어떻게 바꿀 것인지 기록했다.
한식대가라는 이름이 나를 완벽하게 만들어준 것이 아니라 실패를 그냥 넘기지 않게 해준 것인지도 모른다.


전문가라는 말은 참 묘하다.
사람들은 전문가에게 정답을 기대한다.


하지만 직접 그 자리에 가까이 가보니 오히려 모르는 것이 더 많이 보였다.
한식만 해도 그렇다.


지역마다 음식이 다르고,
집안마다 방법이 다르고,
같은 이름의 음식도 계절과 재료에 따라 전혀 다른 맛을 낸다.


내가 알고 있는 한 가지 방법이 전부라고 말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타이틀이 높아질수록 오히려


‘이건 더 알아봐야겠다.’
라는 말이 많아졌다.


예전에는 모른다는 말을 하는 것이 조금 부끄러웠다.
전문가라면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는 것이 더 위험했다.


모르면 찾아보면 된다.
다른 사람에게 물어봐도 된다.
직접 만들어 비교해봐도 된다.
배우는 것을 멈추지 않는 것이 더 중요했다.


앞치마를 두르고 조리대 앞에 서면 타이틀은 잠깐 뒤로 물러났다.
그 순간 내 앞에는 재료만 있었다.


배추.
무.
나물.
생선.
고기.
쌀.
장류.
익숙한 재료들이었다.


그것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가 중요했다.
좋은 재료를 망치지 않는 것.
재료가 가진 맛을 살리는 것.
먹는 사람에게 좋은 상태로 내는 것.


그 일이 먼저였다.
특히 한식을 만들 때는 자꾸 엄마가 생각났다.


엄마에게는 특별한 타이틀이 없었다.
그런데 엄마는 수십 년 동안 가족의 밥을 만들었다.


계절이 바뀌면 그 계절의 음식을 차렸고,
가족의 입맛을 기억했고,
재료가 아까워 버리지 않으려고 다른 음식으로 바꾸었다.


누가 상을 주지 않아도 계속했다.
그 모습을 떠올리면 타이틀을 가진 내가 오히려 더 조심스러워졌다.


음식의 가치는 호칭보다 오래 반복한 정성 속에 있다는 것을 엄마는 이미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엄마에게 ‘한식대가’라는 이름이 없었다고 해서 엄마의 음식이 덜 가치 있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내게는 엄마의 국 한 그릇이 어떤 화려한 요리보다 오래 남아 있다.
그 기억이 나를 낮춰주었다.


타이틀은 중요하지만 타이틀이 음식의 맛을 대신해주지는 않는다.
학생들을 가르치게 된 뒤에는 그 생각이 더 강해졌다.


학생들은 선생의 손을 본다.
설명하는 말도 듣지만 어떻게 칼을 잡는지,


어떻게 재료를 다루는지,
잘못됐을 때 어떻게 고치는지를 본다.


그래서 말로
“기본이 중요합니다.”


라고 하면서 내가 기본을 지키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었다.
가르치는 사람이 되면서 나는 더 자주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학생이 질문할 때 답을 바로 하지 못하는 순간도 있었다.
예전 같으면 당황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말한다.
“그건 정확히 확인하고 다시 이야기해줄게요.”


그 말이 부끄럽지 않다.
오히려 그게 더 책임 있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타이틀은 모든 것을 이미 알고 있다는 증명이 아니라 계속 정확하게 배우겠다는 약속이어야 했다.
또 한 가지 달라진 것이 있었다.


음식을 보여주는 것보다 음식을 먹는 사람을 더 보게 되었다.
화려한 플레이팅을 완성했는데 정작 먹기 불편하면 좋은 접시가 아니었다.


전통을 강조했는데 지금 먹는 사람에게 너무 낯설고 어려우면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었다.
반대로 현대적으로 표현한다고 해서 한식의 기본 맛을 잃어버려서도 안 됐다.

그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일이 점점 중요해졌다.
 

 

 

 

나는 예쁜 것을 좋아한다.

그 마음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핑크색.
꽃.
리본.
아름다운 그릇.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예쁨의 기준도 조금 달라졌다.
예쁜 장식을 많이 올리는 것보다 음식이 가장 맛있어 보이는 상태가 더 중요했다.


접시가 아니라 음식이 주인공이어야 했다.
꽃은 도와주는 역할이면 충분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뒤 플레이팅도 차분해졌다.
하나를 더 올리기 전에 한번 멈추었다.


‘정말 필요한가?’
필요하지 않으면 덜어냈다.


예전에는 더하는 것이 기술이라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멈출 줄 아는 것도 기술이라고 느꼈다.
어쩌면 타이틀을 대하는 마음도 비슷했다.


나를 크게 보이게 하기 위해 타이틀을 계속 앞세우기보다 필요한 자리에서 조용히 책임을 다하는 것.
그것이 더 멋있어 보였다.


어떤 자리에서는 나를 소개하며 여러 호칭을 붙여주기도 했다.
처음에는 그런 소개를 들으면 마음이 조금 들떴다.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했다.
‘소개가 끝난 뒤 내가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
그 순간부터 소개보다 그다음이 더 중요해졌다.


강의를 잘해야 하고,
음식을 제대로 만들어야 하고,
약속한 일을 책임 있게 끝내야 했다.


타이틀을 소개하는 시간은 몇 초였지만 그 이름을 증명하는 시간은 훨씬 길었다.
요리대회나 행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결과를 본다.
완성된 접시.
평가.
수상 여부.


하지만 나는 준비하는 과정이 더 크게 느껴졌다.
재료를 고르고,
연습하고,
시간을 재고,


실패한 부분을 수정하고,
다시 만들어보는 과정.


한 번의 결과보다 그런 과정이 결국 나를 만든다고 생각했다.
타이틀이 생기고 난 뒤 가장 조심하고 싶은 것은 자만이었다.


‘나는 이제 이 정도는 알아.’
그 생각이 가장 위험할 수 있었다.


재료는 매번 다르다.
사람의 입맛도 달라진다.
요리의 트렌드도 변한다.


새로운 조리기술도 계속 나온다.
그러니 어제 잘했다고 오늘도 자동으로 잘되는 것은 아니었다.


매번 다시 집중해야 했다.
그럴 때 앞치마가 좋았다.
앞치마를 두르면 이상하게 처음으로 돌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타이틀도,
상도,
경력도 잠시 내려놓고


‘오늘의 한 끼를 제대로 만들자.’

라는 단순한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래서 내게 앞치마는 점점 상징 같은 것이 되었다.

앞치마에는 얼룩이 생긴다.
기름이 튀기도 하고,
양념이 묻기도 하고,
밀가루가 날리기도 한다.


깨끗한 앞치마가 예쁘기는 하지만 나는 조금 사용감이 있는 앞치마도 좋아한다.
그 안에 일한 시간이 보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요리인의 경력도 비슷하다.
화려한 말보다 얼마나 오래 조리대 앞에 서 있었는지가 결국 남는다.


한식대가가 된 뒤에도 나는 집에서 밥을 한다.
특별하지 않은 저녁이다.


국을 끓이고,
반찬 하나를 만들고,
밥을 담는다.
어떤 날은 정말 간단하다.


그럴 때 오히려 마음이 편안하다.
전문가라는 이름과 상관없이 생활의 요리를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 좋다.


내 요리의 뿌리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가족이 맛있게 먹으면 여전히 기분이 좋다.


“이거 맛있다.”
그 말을 들으면 지금도 마음이 움직인다.


수많은 사람에게 칭찬을 듣는 것도 감사하지만 오래 함께 살아온 가족이 잘 먹는 모습을 보면 또 다른 기쁨이 있다.
내가 처음 요리를 좋아했던 이유가 그대로 남아 있다는 증거 같아서다.


나는 타이틀보다 사람의 기억에 남는 요리를 만들고 싶다.
“그분 한식대가였어.”
라는 말도 감사하지만


“그분 음식 따뜻했어.”
“그때 먹었던 음식이 참 편안했어.”
“정성이 느껴졌어.”
그런 말을 듣는다면 더 좋을 것 같다.


타이틀은 시간이 지나면 다른 호칭으로 바뀔 수도 있지만 음식의 기억은 사람 안에 오래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으로 학생들에게도 이야기한다.


“자격이나 타이틀을 목표로 하는 것도 좋지만 거기서 끝내지 마세요.”
자격을 얻은 다음 날에도 칼은 똑같이 잡아야 한다.


타이틀을 얻은 뒤에도 재료를 제대로 씻어야 한다.
누가 보고 있지 않아도 위생을 지켜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만든 음식을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
결국 실력은 그런 평범한 날에 만들어진다.


나 역시 아직 계속 배우고 있다.
한식의 지역별 음식도 더 알고 싶고,
옛 조리법도 공부하고 싶다.


지금의 식생활에 맞게 전통을 어떻게 표현할지도 계속 고민한다.
맛과 아름다움을 함께 담는 방법도 더 찾아가고 싶다.


한식대가라는 타이틀이 있기 때문에 배우는 것이 아니라 요리를 좋아하기 때문에 배우는 것이다.
그 마음만큼은 처음과 같다.


어느 날 조리를 마치고 앞치마를 풀다가 문득 매듭을 바라봤다.
아침에 단단히 묶었던 매듭이었다.


하루 종일 움직였는데도 그대로였다.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이 매듭처럼 오래 버텨야겠구나.’
크게 드러나지 않아도,
매일 제자리에서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그게 결국 사람을 만든다.
앞치마 끈을 풀고 조리대를 정리했다.


칼을 씻고,
도마를 닦고,
남은 재료를 정리했다.


마지막까지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타이틀을 얻는 순간보다 이런 평범한 마무리가 더 자주 반복된다.


그리고 나는 이제 그 평범함이 좋다.
그 안에 진짜 요리인의 삶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타이틀보다 무거운 앞치마.
예전의 나라면 조금 이상한 표현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정확히 이해한다.
타이틀은 사람에게서 받지만 앞치마는 내가 매일 직접 묶어야 한다.


타이틀은 한번 얻을 수 있지만 실력은 매일 다시 증명해야 한다.
앞치마를 묶는다는 것은 그 책임을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나는 앞으로도 여러 이름으로 불릴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한식대가라고 부르고,


누군가는 교수라고 부르고,
또 누군가는 그냥 경은이라고 부를 것이다.


하지만 조리대 앞에서는 그 모든 이름이 조금씩 작아진다.
그곳에서는 한 사람의 요리인으로 남는다.


재료를 살피고,
맛을 확인하고,
사람을 생각하는 사람.
나는 그 모습이 가장 좋다.


그리고 오늘도 다시 앞치마를 묶는다.
매듭을 한번 당겨 단단히 한다.


거울을 보지 않는다.
타이틀도 생각하지 않는다.


오늘 만들 음식부터 본다.
좋은 재료인지.
간은 어떻게 할지.
누가 먹을지.
그것이면 충분하다.


나는 타이틀을 가진 사람이기 전에 오늘 한 끼를 책임지는 요리인이고 싶다.


경은의 한마디
“타이틀은 이름 앞에 붙지만, 실력과 책임은 매일 묶는 앞치마 안에 남는다.”


오늘의 핑크 한스푼
오늘은 내가 가지고 있는 직함이나 성과보다 매일 반복하고 있는 작은 책임 하나를 떠올려보세요.
누군가를 위해 식사를 준비하는 일도 좋고,


매일 공부하는 일,
약속을 지키는 일,
내 일을 끝까지 마무리하는 일도 좋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계속 해온 그 일이 나를 만들고 있을지 모릅니다.
오늘은 그 평범한 반복을 가볍게 여기지 마세요.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도 기본을 지키는 마음을 한스푼 더하는 것.
그 마음이 어떤 타이틀보다 오래 나를 지켜줄지도 모릅니다.

 

 

작성 2026.10.01 00:23 수정 2026.10.01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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