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한식 디렉터 장윤정]이 전하는 세계 요리의 유래 아르헨티나 엠파나다, 광활한 팜파스를 건너 국민 간식이 된 ‘주머니 속 한 끼’

스페인에서 건너온 반달 모양 파이가 남미의 맛을 입다

냉장고도 도시락통도 필요 없었던 목동들의 든든한 휴대식

지역마다 고기와 향신료가 달라지는 아르헨티나의 ‘먹는 지도’

 

사진 미식 1947 엠파나다 

 

 

이번 세계 요리 여행은 남아메리카의 Argentina로 향한다. 오늘의 주인공은 반달 모양의 얇은 반죽 속에 고기와 채소를 가득 채워 굽거나 튀기는 엠파나다(Empanada)다.


엠파나다를 한입 베어 물면 바삭하거나 부드러운 반죽이 먼저 갈라지고 그 안에서 쇠고기와 양파, 향신료가 모습을 드러낸다. 손바닥만 한 크기라 간식처럼 보이지만, 이 작은 음식에는 유럽과 아랍권, 남미를 오간 오랜 음식문화의 흔적이 숨어 있다.


'엠파나다'라는 이름은 스페인어 동사 empanar, 즉 '빵이나 반죽으로 감싸다'라는 의미와 연결된다. 이름 그대로 속재료를 반죽으로 감싸 익히는 음식이다.


그렇다면 엠파나다는 아르헨티나에서 처음 만들어졌을까?
그 뿌리는 훨씬 멀리까지 이어진다.


고기나 채소를 반죽에 싸서 익히는 음식은 중동과 지중해 여러 지역에서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중세 이베리아반도에서도 이슬람 문화권과 유럽의 음식문화가 교류하면서 다양한 고기 파이가 만들어졌다.


이후 Spain에서 엠파나다 문화가 발전했고, 16세기 이후 스페인 사람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동하면서 이 음식도 함께 대서양을 건넜다.


하지만 남미 사람들은 스페인의 엠파나다를 그대로 복제하지 않았다.
지역에서 생산되는 고기와 채소, 고추와 향신료를 넣으며 자신들만의 음식으로 바꿔나갔다. 특히 광대한 목축지대를 가진 아르헨티나에서는 쇠고기가 중요한 속재료가 됐다.


아르헨티나의 광활한 초원팜파스(Pampas)에는 소를 돌보며 살아가던 목동가우초(Gaucho)들이 있었다.
넓은 초원을 이동하며 일해야 했던 이들에게 손으로 들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은 매우 실용적이었다. 반죽 안에 고기와 채소를 넣어 익히면 별도의 접시나 식기가 없어도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엠파나다는 여행자와 노동자, 목동들이 먹기 좋은 휴대식으로 널리 자리 잡았다.
그런데 아르헨티나 엠파나다의 진짜 재미는 지금부터다.
지역마다 속재료와 조리법이 다르다.

 

 

사진 미식 1947 엠파나다 요리하는 이미지


북서부 Salta의 엠파나다는 비교적 작고 육즙이 풍부한 것으로 유명하다. 잘게 썬 쇠고기와 양파, 감자 등을 넣고 커민이나 파프리카 계열 향신료로 맛을 낸다.


투쿠만 지역 역시 엠파나다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쇠고기를 중심으로 단순하면서도 육즙이 살아 있는 속을 중요하게 여기며, 엠파나다 축제까지 열릴 정도로 지역 음식문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다른 지역에서는 삶은 달걀과 올리브, 건포도를 넣기도 한다.
특히 고기 속에 건포도를 넣는 조합은 처음 접하면 낯설 수 있다. 하지만 짭조름한 쇠고기 사이에서 은근한 단맛이 나오면서 예상외의 조화를 만든다.


엠파나다에는 재미있는 '표시법'도 있다.
여러 종류를 한꺼번에 구우면 겉모습만 보고 속재료를 구별하기 어렵다. 그래서 반죽 가장자리를 접는 방식인레풀게(Repulgue)를 달리해 어떤 속이 들어 있는지 표시하기도 한다.


마치 반죽 가장자리의 모양이 음식의 이름표 역할을 하는 셈이다.
조리법 역시 하나가 아니다.


오븐에 구우면 담백하면서 반죽의 고소한 맛이 살아나고, 기름에 튀기면 표면이 더욱 바삭해진다. 지역과 가정에 따라 어느 방식이 더 '정통'인지에 대한 애정 어린 논쟁도 이어진다.


오늘날 아르헨티나에서 엠파나다는 특정 계층만 먹는 음식이 아니다.
길거리와 시장에서 간단히 사 먹을 수도 있고, 가족 모임이나 축구 경기를 보는 날 여러 개를 주문해 나눠 먹기도 한다. 전문점에서는 쇠고기뿐 아니라 닭고기와 햄·치즈, 옥수수, 채소 등 수많은 종류를 판매한다.


한때 대서양을 건너온 음식은 이제 완전히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음식이 됐다.
그리고 그 변화는 엠파나다 한 개를 갈라보는 것만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살타의 엠파나다와 투쿠만의 엠파나다가 다르고, 다시 각 가정의 조리법이 다르다. 그래서 여러 지역의 엠파나다를 차례로 맛보는 것은 아르헨티나의 지도를 음식으로 여행하는 것과도 같다.


스페인에서 바다를 건너온 반죽은 남미의 쇠고기와 향신료를 품었고, 광활한 초원을 오가던 사람들의 손에 들려 아르헨티나의 일상이 됐다. 작은 반달 모양 엠파나다 하나는 음식이 국경을 넘은 뒤 그 땅의 삶을 만나 어떻게 새로운 전통으로 다시 태어나는지를 보여주는 맛있는 역사다.

 

 

 

 

작성 2026.09.30 23:56 수정 2026.10.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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