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직도 인공지능을 ‘질문하면 답하는 도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순서가 바뀌었다.
이제 AI는 우리가 묻기도 전에 사람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몇 줄의 문장에서 감정을 추론하고, 대화를 읽어 성격을 짐작한다. 병원에 가기 전 증상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채용 과정에서는 지원자의 특성을 평가한다. 학생의 행동에서 학습 상태를 추정하고, 고객과 직원의 말투에서는 만족도와 정서를 읽어내려 한다.

사람이 AI를 분석하던 시대에서 AI가 사람을 분석하는 시대로 넘어가고 있는 셈이다.
이 변화가 중요한 이유는 AI가 틀릴 수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더 어려운 문제는 AI의 판단이 꽤 그럴듯할 때 시작된다.
“우울 가능성이 높습니다.”
“불안 수준이 상당합니다.”
“이 지원자는 외향성이 낮습니다.”
“이 사용자는 정서적으로 취약한 상태입니다.”
이런 문장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다. 사람이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방식에 개입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을 대하는 방식도 바꿀 수 있다. 기업이나 병원, 학교가 이를 기록하고 의사결정에 활용한다면 개인에 대한 하나의 해석은 곧 제도적 판단이 된다.
학계도 이 문제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2026년 Nature Reviews Psychology는 인간-AI 상호작용 연구가 빠르게 바뀌는 특정 모델의 성능 비교를 넘어 심리학 이론 안에서 다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EU AI Act는 직장과 교육기관에서 생체정보를 이용해 감정을 추론하는 일부 AI 사용을 금지하고 있으며, 고위험 AI에는 인간 감독과 결과 해석·개입 가능성을 요구한다. 한국 인공지능기본법도 보건의료를 고영향 AI 영역에 포함하고 위험관리, 설명, 이용자 보호, 사람의 관리·감독을 규정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현재 논의에는 여전히 한 단계가 빠져 있다.
우리는 AI가 정확한지를 묻는다. 편향됐는지도 묻는다. 설명할 수 있는지도 확인한다.
그 다음 질문은 상대적으로 덜 다뤄졌다.
AI가 사람에 대해 만들어낸 추론이 언제 단순한 추측을 넘어 ‘그 사람에 대한 유효한 해석’이 되는가.
그리고 누가 그 해석을 사용할 권한을 갖는가.
나는 이 문제를 감정주권(Affective Sovereignty)과 해석 권한(interpretive authority)의 관점에서 연구해 왔다. 2026년 Discover Artificial Intelligence에 발표한 연구에서도 감정 AI의 문제를 사생활 보호나 정확도만으로 다루기 어렵다고 보고, 개인이 AI가 부여한 감정적 의미에 이의를 제기하고 수정하며 최종적인 해석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구조를 제안했다.
AI가 인간을 읽는 것 자체를 막을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의료에서는 사람이 놓친 신호를 발견할 수 있고, 조직에서는 더 나은 의사결정을 도울 수 있다. 정신건강이나 교육에서도 적절한 활용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알아낼 수 있다’와 ‘결정해도 된다’는 같은 문장이 아니다.
앞으로 기업과 정부가 AI를 도입할 때 성능표 옆에 하나의 질문을 더 놓아야 한다.
이 시스템이 사람에 대해 무엇을 추론하는가. 그리고 그 추론에는 어디까지 권한을 줄 것인가.
AI 시대의 인간 중심성은 결국 여기서 시험받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