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자매의 식탁
세 자매가 한 식탁에 앉으면 참 재미있는 일이 벌어진다.
같은 밥을 먹고, 같은 국을 떠먹고, 같은 반찬을 앞에 두고 있는데도 좋아하는 것은 제각각이다.
언니의 젓가락이 먼저 가는 곳이 있었고, 동생이 유난히 많이 집어 먹는 반찬이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도 늘 손이 먼저 가는 음식이 있었다.
어릴 때는 그게 참 신기했다.
“이게 이렇게 맛있는데 왜 안 먹지?”
내가 좋아하는 반찬을 누군가 싫어한다고 하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반대로 언니나 동생이 맛있다고 하는데 나는 별로인 음식도 있었다.
같은 집에서 자랐는데도 입맛은 똑같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우리 집 식탁은 내가 처음 만난 작은 요리 교실이었다.
누가 가르쳐준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그곳에서 아주 중요한 것을 배웠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맛은 다르다는 것.
그리고 그 다름을 기억하는 것이 생각보다 따뜻한 일이라는 것을.
세 자매가 늘 얌전히 밥만 먹었던 것은 아니다.
자매라는 것이 원래 그렇다.
조금 전까지 사이좋게 웃다가도 별것 아닌 일로 갑자기 삐친다.
“그거 내 거야.”
“아니야, 내가 먼저 봤어.”
“언니가 가져갔잖아.”
옷 하나를 두고 싸우기도 했고,
리본 하나를 놓고도 누구 것이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과자 하나가 남으면 공평하게 나누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되기도 했다.
세 개면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두 개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누가 하나를 더 먹느냐.
그것은 어린 세 자매에게 꽤 심각한 문제였다.
나는 둘째였다.
언니 편을 들기도 하고,
막내 편을 들기도 했다.
어느 날은 둘 사이에 끼어 있다가 괜히 나까지 혼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자연스럽게 사람의 표정을 많이 보게 되었다.
언니가 삐쳤는지,
동생이 울기 직전인지,
엄마가 지금 말을 걸어도 되는지.
그런 것을 꽤 빨리 알아챘다.
둘째라는 자리가 나에게 준 작은 능력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무리 심하게 다퉈도 밥을 먹을 시간이 되면 한 식탁에 다시 앉았다.
조금 전까지 말을 안 하겠다고 해놓고도
맛있는 반찬이 나오면 슬쩍 옆을 본다.
그리고 누군가 먼저 말한다.
“이거 먹어봐.”
그 한마디면 조금 전 싸움이 이상하게 흐려졌다.
완전히 화해한 것도 아닌데 젓가락이 오가면서 다시 이야기가 시작됐다.
“맛있지?”
“응.”
그렇게 전쟁은 끝났다.
생각해보면 음식은 우리 자매 사이에서 꽤 훌륭한 평화협정이었다.
말로 먼저 미안하다고 하기는 쑥스러운데,
맛있는 것을 하나 내밀기는 어렵지 않았다.
“이거 먹을래?”
그 말 속에는 사실 여러 가지 뜻이 들어 있었다.
‘아까 일은 이제 그만하자.’
‘나 아직 너랑 이야기하고 싶어.’
‘이거 맛있으니까 너도 먹어.’
어린 우리는 그런 말을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
음식 하나를 슬쩍 내밀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나는 자매들의 먹는 모습을 보는 것도 좋아했다.
언니가 좋아하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었다.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젓가락이 몇 번이고 같은 곳으로 갔다.
막내도 마찬가지였다.
싫어하는 것은 귀신같이 피해 갔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기억했다.
‘언니는 이걸 좋아하는구나.’
‘동생은 이건 별로구나.’
그때의 나는 그것을 배려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재미있었다.

사람마다 다른 것이 재미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내가 직접 음식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그 기억들이 조금씩 중요해졌다.
누군가에게 음식을 만들어준다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맛만 만드는 일이 아니었다.
먹을 사람을 생각해야 했다.
매운 것을 못 먹는 사람에게는 고추를 줄이고,
싱겁게 먹는 사람에게는 간을 조금 덜 하고,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한 점 더 올려주고,
채소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조금 넉넉하게 담는다.
그런 작은 차이가 식탁에서는 꽤 크다.
“너 이거 좋아하잖아.”
그 말을 들으면 사람은 음식만 받는 것이 아니다.
자기를 기억해준 마음까지 함께 받는다.
어릴 때 나는 엄마가 가족들의 입맛을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는지 신기했다.
누구는 어떤 반찬을 좋아하고,
누구는 뭘 잘 먹지 않는지.
엄마는 다 알고 있었다.
그때는 그것이 당연한 줄 알았다.
밥을 차려주는 사람이라면 원래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내가 직접 요리를 하고,
가정을 꾸리고,
학생들에게 음식을 가르치게 되면서 알았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
오래 보고, 기억하고, 마음을 써야 가능한 일이었다.
요리는 칼질과 불 조절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을 기억하는 것도 요리였다.
그걸 나는 아주 오래전에 우리 집 식탁에서 배우고 있었다.
세 자매가 식탁에 앉아 있는 모습을 떠올리면 색깔도 생각난다.
김치의 빨간색.
나물의 초록색.
계란의 노란색.
하얀 쌀밥.
그리고 반찬이 담긴 작은 그릇들.
나는 어릴 때부터 밥상의 색을 보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다.
반찬이 여러 가지 놓이면 그중에서도 예쁜 그릇에 담긴 음식이 괜히 더 맛있어 보였다.
특히 꽃무늬가 있는 그릇은 자꾸 눈이 갔다.
분홍색 꽃이 그려진 그릇이면 더 좋았다.
그때는 그 이유를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그냥 예뻤다.
예쁘면 좋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 마음은 꽤 오래 살아남았다.
나는 여전히 핑크색을 좋아하고,
예쁜 그릇을 좋아하고,
음식을 담을 때 색의 조화를 생각한다.
사람들은 가끔 묻는다.
“왜 그렇게 핑크를 좋아하세요?”
나는 대단한 이유를 찾지 않는다.
그냥 웃으며 대답한다.
“예쁘잖아요.”
좋아하는 것에는 꼭 거창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마음을 조금 환하게 해준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우리 세 자매의 식탁도 그랬다.
대단한 음식이 매일 올라온 것은 아니었다.
평범한 밥과 국,
익숙한 반찬,
가끔은 서로 좋아하는 것을 먼저 먹겠다고 실랑이를 벌이는 평범한 식탁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런 평범한 장면이 오히려 더 오래 남는다.
언니 옆에 앉았던 나.
내 옆에 앉았던 동생.
밥그릇을 앞에 두고 깔깔거리던 얼굴들.
엄마가
“밥 먹을 때 장난치지 마.”
하던 목소리.
누군가 반찬을 집어주던 손.
그 모든 것이 한 장의 그림처럼 남아 있다.
그때는 몰랐다.
평범한 날들이 나중에는 가장 그리운 장면이 된다는 것을.
음식에는 이상한 힘이 있다.
어떤 음식을 먹는 순간 잊고 있던 사람이 떠오르기도 한다.
냄새 하나만으로 오래전 집이 생각나기도 한다.
어릴 때 먹었던 반찬을 다시 만나면 그 시절의 식탁까지 함께 돌아온다.
그래서 음식은 배만 채우는 것이 아닌가 보다.
기억도 함께 먹는다.
사람도 함께 먹는다.
시간까지 함께 먹는다.
나는 요리를 오래 하면 할수록 그 사실을 더 많이 느낀다.
학생들에게 레시피를 알려줄 때도
‘이 음식이 이 아이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완벽한 칼질도 중요하고,
정확한 온도도 중요하고,
맛의 균형도 중요하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오래 기억되는 음식에는 기술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누구와 먹었는지.
어떤 날 먹었는지.
누가 만들어줬는지.
그것이 맛과 함께 기억된다.
나에게 자매의 식탁은 그런 곳이었다.
언니와 다투기도 했고,
동생에게 양보하기 싫어 삐치기도 했고,
맛있는 것을 보면 서로 먼저 먹겠다고 손을 뻗기도 했다.
그런데 결국 우리는 한 식탁으로 돌아왔다.
밥을 먹고,
반찬을 나누고,
다시 이야기했다.
어쩌면 가족이라는 것도 그런 것이 아닐까.
매일 완벽하게 사이좋지는 않아도
결국 다시 같은 식탁에 앉는 사람들.
오늘 조금 서운해도
내일이면
“밥 먹어.”
하고 불러주는 사람들.
그 짧은 말에는 참 많은 것이 들어 있다.
지금도 나는 사람들과 식사를 하는 시간을 좋아한다.
음식도 보지만 사람도 본다.
무엇을 잘 먹는지,
어떤 음식에서 웃는지,
어떤 반찬을 한 번 더 집는지.
나도 모르게 눈이 간다.
어릴 때 세 자매의 식탁에서 하던 일을 여전히 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참 많이 변하면서도 어떤 부분은 그대로 남는다.
나는 아직도 맛있는 것이 있으면 옆 사람에게 말한다.
“이거 한번 먹어봐.”
그리고 상대가 맛있게 먹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아주 오래전 식탁 한가운데 앉아 있던 둘째딸 경은이가 떠오른다.
언니와 동생 사이에서 눈치를 보고,
반찬을 나누고,
예쁜 그릇을 바라보던 아이.
그 아이는 몰랐을 것이다.
그 평범한 식탁에서 배운 것들이 언젠가 자신의 요리가 될 것이라는 것을.
사람을 관찰하는 마음.
다른 입맛을 존중하는 마음.
예쁜 것을 좋아하는 마음.
그리고 맛있는 것을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
내 요리의 시작은 어쩌면 부엌보다 먼저,
세 자매가 둘러앉았던 그 식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경은의 한마디
“같은 밥상에 앉아도 좋아하는 맛은 다르다. 그 다름을 기억해주는 것이 사랑이다.”
오늘의 핑크 한스픈
오늘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한다면 누가 어떤 반찬을 가장 많이 먹는지 한번 살펴보세요.
그리고 기억해두었다가 다음 식탁에 그 음식을 살짝 더 올려주세요.
“네가 좋아하잖아.”
그 한마디가 평범한 밥상을 오래 기억되는 식탁으로 만들어줄지도 모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