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요리의 유래] 왕비를 위해 태어났을까… 피자 마르게리타에 숨겨진 두 개의 탄생 이야기

나폴리 서민의 거리 음식,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세계인의 요리가 되다

토마토·모차렐라·바질에 담긴 빨강·하양·초록의 상징

1889년 왕비의 피자보다 먼저 존재했던 마르게리타의 흔적

[전 세계 요리의 유래] 왕비를 위해 태어났을까… 피자 마르게리타 사진 미식 1947

 

 

둥글게 편 반죽 위에 붉은 토마토와 하얀 모차렐라치즈, 초록빛 바질을 올린 피자 마르게리타. 단순한 재료로 완성되지만 오늘날 이탈리아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음식으로 사랑받고 있다.

 

마르게리타 피자의 탄생지로 알려진 곳은 이탈리아 남부의 항구도시 나폴리다. 18세기 나폴리에서는 화덕에 구운 둥근 빵에 토마토와 기름, 마늘 등을 얹은 피자가 거리에서 판매됐다. 값이 저렴하고 손으로 접어 먹기 편했기 때문에 노동자와 서민들의 든든한 한 끼가 됐다. 나폴리에서는 피자를 반으로 접고 다시 접어 지갑처럼 들고 먹는 ‘피자 아 포르타폴리오’ 문화도 이어지고 있다.

 

왕비가 선택한 세 가지 색의 피자

가장 널리 알려진 마르게리타 피자의 탄생 이야기는 188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탈리아 국왕 움베르토 1세와 마르게리타 디 사보이아 왕비가 나폴리를 방문했다. 왕비가 나폴리 사람들이 즐겨 먹던 피자에 관심을 보이자 유명한 피자 장인 라파엘레 에스포지토가 왕실의 요청을 받아 여러 종류의 피자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그 가운데 왕비가 가장 마음에 들어 한 피자는 붉은 토마토, 하얀 모차렐라치즈, 초록 바질을 올린 피자였다. 세 가지 재료의 색이 이탈리아 국기의 빨강·하양·초록과 닮았다는 점도 특별한 의미를 더했다.

 

에스포지토는 왕비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이 피자에 왕비의 이름인 ‘마르게리타’를 붙였다고 한다. 이후 피자 마르게리타는 왕실과 서민의 음식문화를 연결한 상징적인 요리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는 나폴리의 문화유산 기관과 정통 나폴리피자협회에서도 전통적인 탄생 설화로 소개되고 있다.

 

그런데 왕비보다 피자가 먼저였다?

흥미로운 사실은 토마토와 모차렐라, 바질을 올린 피자가 1889년 이전에도 나폴리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정통 나폴리피자협회는 나폴리의 풍습을 기록한 프란체스코 데 부르카르의 1866년 문헌에 모차렐라와 바질, 토마토를 피자에 사용하는 내용이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나폴리 문화유산 당국의 자료에서도 19세기 중반에 이미 토마토와 모차렐라를 사용한 여러 종류의 피자가 판매됐다는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기록을 바탕으로 일부 음식사 연구자들은 라파엘레 에스포지토가 세 가지 재료의 조합을 완전히 새롭게 발명했다기보다, 기존에 나폴리 사람들이 먹던 피자를 왕비의 이름과 이탈리아 국기의 상징으로 새롭게 부각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마르게리타 피자의 탄생 설화를 ‘역사와 전설이 결합된 이야기’로 바라보는 학술 연구도 있다.

 

따라서 피자 마르게리타는 1889년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음식이라기보다, 오랜 시간 나폴리 서민들이 즐겨 먹던 피자가 왕실 방문을 계기로 이름과 상징성을 얻게 된 음식으로 보는 것이 더욱 자연스럽다.

 

가난한 사람들의 빵에서 세계인의 음식으로

한때 피자는 나폴리 골목에서 값싸게 팔리던 서민 음식이었다. 그러나 마르게리타 왕비와 관련된 이야기가 퍼지면서 피자는 왕실도 즐기는 음식이라는 새로운 이미지를 얻게 됐다.

 

이후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유럽과 미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피자 문화도 함께 전파됐다. 지역마다 고기와 해산물, 채소와 치즈를 다양하게 올린 새로운 피자가 탄생했지만, 토마토와 모차렐라, 바질로 완성하는 마르게리타는 여전히 피자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로 남아 있다.

 

2017년에는 피자라는 음식 자체가 아니라 반죽을 만들고 손으로 펼쳐 화덕에서 굽는 ‘나폴리 피자 장인의 기술과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 피자 만들기가 단순한 조리법을 넘어 스승과 제자, 가족과 지역사회를 통해 전승되는 하나의 문화로 인정받은 것이다.

 

피자 마르게리타 한 판에는 나폴리 서민들의 생활과 이탈리아 통일의 상징, 왕비를 둘러싼 전설과 피자 장인들의 기술이 함께 담겨 있다.

 

왕비를 위해 새롭게 탄생한 피자인지, 이미 존재했던 피자에 왕비의 이름을 붙인 것인지는 단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나폴리의 평범한 거리 음식이었던 피자는 마르게리타라는 이름을 만나 세계인의 식탁으로 향하는 특별한 이야기를 갖게 됐다는 사실이다.

 

 

 

작성 2026.08.15 10:54 수정 2026.08.15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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