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렘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대개는 너무 많은 계산과 예측 속에 들어오지 못할 뿐이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좋아지기 전에 지칠 일을 떠올리고, 시작하기 전에 감당해야 할 책임을 먼저 본다.
예전에는 마음이 먼저 움직였고 판단은 늘 그 뒤에 도착했다. 지금은 그 순서가 바뀌었다. 좋아 보이는 사람이 나타나도 곧장 가까이 가기보다 잠깐 멈추고, 해보고 싶은 일이 생겨도 뛰어들기 전에 오래 계산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변했다고 느낀다. 순수하지 못해졌고, 마음이 닳았고, 더 이상 쉽게 설레지 못하는 나이에 들어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 줄어든 것은 설렘일까. 대개는 그렇지 않다. 줄어든 것은 설렘을 곧장 허락하는 태도다.
젊은 날의 설렘은 대체로 무지와 함께 온다. 다 모르기 때문에 쉽게 커지고, 다 잃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겁 없이 번진다. 잘될 수도 있다는 기대, 이번에는 다를지 모른다는 낙관, 좋아하는 것 하나만으로도 한참을 버틸 수 있을 것 같은 믿음. 설렘은 원래 그런 감정이다. 아직 증명되지 않은 가능성에게 마음을 먼저 주는 일. 그래서 설렘에는 늘 약간의 과장이 섞여 있다. 사람을 더 좋아 보이게 만들고, 일을 더 의미 있어 보이게 만들고,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벌써 빛나게 만든다.
시간이 지나면 사람은 그 과장의 대가를 배운다.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관계가 유지되지는 않는다는 것, 하고 싶은 마음만으로 일이 굴러가지는 않는다는 것, 끌린다는 감정만으로 삶 전체를 바꿀 수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문제는 이 앎이 머리보다 몸에 먼저 남는다는 데 있다.
한번 다쳐본 사람은 비슷한 온도의 기쁨 앞에서도 먼저 상처를 떠올리고, 오래 버텨본 사람은 설렘보다 피로의 시간을 더 빨리 상상한다. 사람을 덜 설레게 만드는 것은 냉정함이 아니라 기억이다. 예전에 어떻게 무너졌는지, 얼마나 오래 후회했는지, 무엇을 잃었는지를 몸이 먼저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설렘이 줄어든 것처럼 보인다. 정확히 말하면 설렘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설렘이 통과해야 할 문턱이 많아진 것이다. 예전에는 마음 하나로 시작할 수 있었던 일들이 이제는 시간과 체력, 거리와 비용, 생활의 구조까지 함께 통과해야 비로소 허락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주 이 변화를 오해한다. 전처럼 쉽게 뜨거워지지 않으면 마음이 식은 줄 알고, 전처럼 무모하게 시작하지 못하면 열정이 사라진 줄 안다. 그러나 많은 경우 달라진 것은 진심의 크기가 아니라 진심을 다루는 방식이다.
그렇다면 설렘은 어떻게 다시 오는가. 이 질문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먼저 새로운 자극을 찾는다. 더 새로운 사람, 더 낯선 장소, 더 강한 경험, 더 큰 변화가 있으면 마음도 다시 움직일 것이라고 믿는다. 물론 변화는 도움이 된다. 하지만 설렘을 막는 핵심이 바깥의 지루함만은 아니다. 더 깊은 문제는 마음이 움직이기 전에 이미 모든 가능성을 판정해버리는 습관에 있다. 좋아지기도 전에 끝을 상상하고, 시작하기도 전에 손실부터 계산하고, 마음이 생기기도 전에 이미 안 될 이유를 정리해두는 태도. 이런 마음에는 어떤 설렘도 오래 머물 수 없다.
그래서 다시 설레고 싶다면, 먼저 크게 바꾸기보다 조금 늦춰야 한다. 좋아하는 감정이 생겼을 때 곧바로 현실의 판정을 들이대는 속도를 늦추고, 무엇이든 시작하기 전에 끝의 표정부터 읽어내는 습관을 늦추고, 모든 가능성을 손익으로만 따지는 태도를 늦춰야 한다. 설렘은 대단한 자극에서 오는 감정이 아니라, 아직 다 알지 못해도 괜찮다고 자신을 잠시 열어둘 때 들어오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이때 필요한 것은 거창한 결심이 아니다. 아주 작은 허용이다. 쓸모를 따지지 않고 좋아하는 것을 조금 더 가까이 두는 일, 결과를 장담할 수 없어도 한번쯤 마음이 가는 쪽으로 걸어보는 일, 아직 판단하지 않은 채 조금 더 오래 바라보는 일. 설렘은 새로운 대상을 찾아 나선다고 반드시 돌아오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오래 닫아둔 감각을 조금 풀어줄 때, 마음은 생각보다 조용하게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물론 나이가 든 뒤의 설렘은 예전과 같지 않다. 전처럼 번쩍이지 않고, 전처럼 쉽게 타오르지 않는다. 대신 여러 번의 망설임을 통과한 뒤에도 남아 있고, 여러 조건을 따져본 뒤에도 포기되지 않는다. 쉽게 오지 않는 대신, 한번 오면 가볍게 사라지지도 않는다. 젊은 날의 설렘이 불꽃이었다면, 이후의 설렘은 불씨에 가깝다. 번쩍이기보다 오래 남고, 크게 흔들기보다 조용히 삶의 방향을 바꾼다. 겉으로는 덜 화려해 보여도, 그래서 오히려 더 진실하다.
중요한 것은 다시 쉽게 설레는 사람이 되는 일이 아니다. 계산과 경험을 모두 지나온 뒤에도 끝내 마음이 남는 것을 알아보는 눈을 잃지 않는 일이다. 설렘은 젊음의 특권이 아니다. 아직 다 알지 못해도 괜찮다고, 이번에는 조금 덜 방어해도 괜찮다고, 마음이 움직이는 동안만큼은 결과를 잠시 미뤄둬도 괜찮다고 자신에게 허락할 때 다시 찾아오는 감정이다.
설렘은 사라진 것이 아니다. 다만 너무 많은 예측과 해석 속에 오래 갇혀 있었을 뿐이다. 그러니 다시 설레고 싶다면 삶을 크게 흔들기보다, 모든 것을 미리 끝내버리는 마음의 습관부터 조금 늦추는 편이 낫다. 설렘은 언제나 거기서 돌아온다. 아직 다 알지 못해도 괜찮다고 허락한 마음의 틈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