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같은 시각, 지구 반대편의 미국 워싱턴 DC 내셔널 몰은 전혀 다른 차원의 에너지를 발산한다. 건국 250주년이라는 역사적인 이정표를 맞이한 미국의 하늘은 승리와 번영의 상징으로 가득 찬다. 기념탑 주위로 최첨단 전투기들이 저공비행을 하며 굉음과 함께 에어쇼를 선보이고, 시민들은 환호성을 지른다. 이들에게 이란에서 들려오는 통곡 소리는 먼 나라의 소음이자, 자신들의 안전을 증명하는 전과(戰果)일 뿐이다.
미국인들은 성조기 문양이 새겨진 화려한 옷을 입거나, 전설적인 영웅 배트맨 복장을 하기도 하며, 독립전쟁 당시의 삼각모를 쓴 채 축제를 즐긴다. 미군 군악대와 밴드가 'YMCA'나 '스위트 캐롤라인(Sweet Caroline)' 같은 친숙한 팝송을 연주하자 대중은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며 "USA"를 연호한다. 축제의 절정은 하늘을 수놓은 무려 85만 발의 불꽃놀이다. 암흑을 뚫고 솟구친 불꽃들은 미국의 압도적인 부와 군사적 전능함을 과시하듯 밤하늘을 찬란하게 번쩍인다. 폭죽이 터질 때마다 사람들은 환호하고 밤하늘은 잠시 낮처럼 밝아진다.
단상에 오른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연설은 이 극적인 대조의 정점을 찍는다. 그는 '미국에 바치는 헌사' 행사를 통해 미군의 가공할 전력을 가감 없이 자랑한다. "우리는 그것을 사용했고,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고 선언한 그는 이어 베네수엘라와 이란을 직접 언급한다. "이란을 보라. 우리는 그것을 제거했다. 그들의 군대를 궤멸시켰다." 이 무자비할 정도로 솔직한 승전보는 이란 광장에 놓인 14개월 어린아이의 관과 기묘하게 교차한다. 트럼프는 "250년 동안 미국은 전 세계 모든 나라의 희망이었고, 약속이었고, 빛이었고, 영광이었다"며 미국 공화국의 영원한 건재함을 강조한다.
이 축제의 장에서 이란의 눈물은 승리의 훈장으로 소비된다. 제국의 안보를 위해 타국의 지도자와 그의 가족을 제거한 행위는 전방위적인 군사적 쾌거로 묘사되며, 광장에 모인 수십만의 시민들은 그 힘의 질서 아래서 안도감을 느낀다. 번영의 단맛은 이처럼 철저히 타자의 파멸을 양분 삼아 피어나는 법이다.
흥미롭게도 이 극과 극의 평행우주 속에서 발견되는 단 하나의 기묘한 공통점은 대지를 달군 잔인한 무더위다. 테헤란은 섭씨 35도의 폭염이 가뜩이나 뜨거운 군중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더위를 식히기 위해 도로 곳곳에 물 분사 장치가 가동되었고, 슬픔에 지친 추모객들에게 생수와 수박, 오이가 전해졌다. 워싱턴 DC 역시 섭씨 38도가 넘는 살인적인 폭염이 닥쳐 낮에 예정되었던 대규모 퍼레이드가 취소되는 소동을 겪었다. 신이 내린 자연의 더위 속에서 인간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땀을 흘리고 눈물을 흘리며 자신들의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었다. 기후의 가혹함마저도 양국의 인간들이 뿜어내는 증오와 환호의 열기를 잠재우지는 못했다.
이 잔인한 평행선은 인간이 구축한 문명의 거대한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한쪽에서는 신의 이름으로 복수를 천명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자유의 이름으로 폭력을 정당화한다. 테헤란의 모살라 광장에 흩뿌려진 눈물과 워싱턴 내셔널 몰에 쏘아 올려진 불꽃은 본질적으로 같은 행성 안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비극이다. 기술은 대륙 간의 거리를 좁혀놓았으나, 인간의 마음과 연민의 거리는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멀어졌다. 광장에 모여든 수많은 인파는 거대한 집단적 최면에 걸린 채, 서로를 향한 적대감을 인류의 생존 법칙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쪽의 축제가 다른 한쪽의 절망 위에 세워지고, 한쪽의 정의가 다른 한쪽에게는 잔혹한 학살이 되는 이 야릇한 모순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국제 정세의 거대한 톱니바퀴 속에서 개인의 슬픔과 기쁨은 너무나 쉽게 거세당한다. 85만 발의 화려한 불꽃이 밤하늘을 수놓을 때, 그 불꽃의 원형이 되었던 폭탄 아래서 숨져간 이들의 비명은 어디로 사라지는 것일까.
우리는 같은 하늘 아래 살아가면서도 서로의 슬픔을 알지 못하고, 서로의 기쁨을 저주하는 단절의 시대를 목격하고 있다. 문명의 발전과 국가의 위대함이 타자의 파멸과 눈물을 담보로 해야만 증명되는 것이라면, 인류가 외치는 평화와 자유는 얼마나 허망한 신기루인가. 화려한 성조기 뒤에 숨겨진 오만함과 검은 차도르 속에서 끓어오르는 증오의 악순환을 끊어내지 못한다면 매년 맞이하는 7월 4일은 인류의 연대가 실패했음을 증명하는 서글픈 기념일로 남을 뿐이다.
결국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거대한 담론이나 통치자의 호기로운 연설이 아니다. 그것은 폭염 속에서 차가운 생수 한 모금을 나누며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는 인간적인 연민이며, 축제의 환호 속에서도 지구 반대편의 신음 소리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성찰의 시선이다. 14개월 된 아이의 관 앞에서도, 화려한 폭죽의 잔해 앞에서도 우리는 결국 같은 피가 흐르는 유한한 존재들이다.
분노와 환호의 거대한 소음이 잦아든 밤, 테헤란의 메마른 광장과 워싱턴의 잔디밭 위로 똑같이 내리쬐는 달빛을 보며 깊은 탄식을 숨길 수가 없다. 우리는 언제쯤 서로의 추모를 존중하고, 서로의 존재를 온전히 축하할 수 있는 진정한 인류 공동체를 이룩할 수 있을 것인가. 이 거대한 모순의 지구촌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오늘의 풍경은 절대 가볍지 않은 영혼의 숙제를 던진다. 눈물과 불꽃이 교차하는 이 밤, 가슴 깊은 곳에서 울리는 고요한 기도가 평화의 마중물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