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 침대에 누워있던 그 순간
어제 칼럼에 이어 오늘도 내시경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며칠 전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 전날부터 금식을 했고, 새벽에는 잠까지 설쳤다. 배는 고프고 몸은 피곤했다. 설상가상으로 멀쩡하던 아파트 엘리베이터까지 고장이 나는 바람에 결국 20층을 걸어 내려와야 했다. 평소라면 운동 삼아 내려갈 수도 있었겠지만, 금식 상태의 몸으로 내려가는 계단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그렇게 병원에 도착했다.
건강검진의 시작
건강검진은 순서대로 진행되었다. 채혈을 하고, 체지방 검사를 하고, 시력 검사와 청력 검사까지 다양한 검사를 마쳤다. 하나씩 검사를 마칠 때마다 이제 곧 내시경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조금씩 가까워졌다. 모든 기본 검사를 마친 뒤 간호사분께서 약을 건네주셨다. 장을 비우고 가스를 제거하기 위한 약이었다. 약을 먹고 건강검진 대기실로 향했다.
낯설었던 이동 침대
환복을 마친 뒤 간호사의 안내를 받아 이동 침대에 누웠다. 잠시 후 다른 간호사분이 오셨고 침대를 밀어 검사실로 향했다. 그 순간은 참 묘했다. 걸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침대에 누운 채 이동한다는 것이 어딘가 낯설었다. 평소에는 내 발로 걷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 당연했는데, 그날은 달랐다. 나는 그저 누워 있었고, 누군가가 나를 목적지까지 데려다주고 있었다. 그 작은 차이가 생각보다 크게 다가왔다.
옆 침대의 환자
검사실에 도착해 잠시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바로 옆 침대에 다른 환자 한 분이 들어왔다. 아마도 같은 수면내시경을 받으러 온 것 같았다. 그분은 위내시경만 진행하는 듯했고, 나보다 늦게 들어왔지만 먼저 검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누워 있는 상태에서 간호사분의 질문이 들렸다. 이름을 확인하고, 생년월일을 확인하고, 간단한 상태를 점검했다. 그리고 수면 약이 투여되는 것 같았다. 잠시 후 의사 선생님이 오셨고 검사가 시작되었다. 불과 몇 분 전까지는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조용해졌다. 5분 정도가 지났을까. 옆 환자의 검사가 끝난 것 같았다.
이제는 내 차례
그리고 이번에는 내 차례가 되었다. 간호사분은 같은 질문을 했다. 이름은 무엇인지, 생년월일은 어떻게 되는지, 몇 가지를 확인한 뒤 수면 약을 준비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조금 버텨볼까.’
‘수면 약이 들어가는 순간까지 의식을 유지해볼 수 있을까.’
하지만 결과는 첫 내시경 때와 같았다. 약이 들어가는 순간 모든 생각은 사라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검사는 끝나 있었다.
천장을 바라보며
사실 내가 가장 또렷하게 기억하는 것은 수면 약이 들어가기 직전의 순간이다. 옆 환자가 검사를 받는 동안 나는 이동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병원의 하얀 천장. 밝은 조명. 팔에는 주삿바늘이 꽂혀 있었다. 급박한 상황도 아니었고, 위험한 순간도 아니었다. 그저 건강검진을 위해 내시경을 받으러 온 평범한 아침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장면은 낯설게 느껴졌다. 이동 침대에 누워 있는 내 모습을 바라보니 문득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평범한 일상이란 무엇일까
‘만약 내가 정말 큰 병에 걸린다면 어떨까.’
‘만약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면 어떨까.’
‘그때도 지금처럼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게 되는 걸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물론 그런 상상은 필요 없는 것이었다. 나는 단지 건강검진을 받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침대에 누워 있는 그 짧은 시간은 평소에는 하지 않던 생각들을 하게 만들었다. 평소의 나는 걷고, 일하고, 글을 쓰고,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고, 아들과 뛰어놀며 살아간다. 내 의지대로 움직이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그 차이가 한 가지 사실을 떠올리게 했다.
감사는 거창하지 않다
우리가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다. 내가 원하는 곳으로 걸어갈 수 있다는 것. 내 손으로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 가족과 함께 웃을 수 있다는 것. 퇴근 후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 그 모든 것들이 사실은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에세이에서 평범한 밥 한 끼의 소중함을 이야기했다. 배고픔을 경험하고 나서야 밥 한 끼가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이동 침대 위에서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은 비슷한 방식으로 배운다
어쩌면 사람은 늘 비슷한 방식으로 배우는지도 모른다.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을 잠시 떨어져 바라볼 때, 그제야 그것의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 건강을 잃을까 걱정될 때 건강의 소중함을 알게 되고, 배고픔을 느껴야 밥 한 끼의 감사함을 알게 되며, 평범한 일상이 흔들릴 때 그 평범함이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함께 생각해볼 질문
나는 오늘 어떤 당연함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오늘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 가운데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건강한 몸. 따뜻한 집. 사랑하는 가족. 그리고 반복되는 평범한 하루.
나는 그것들을 얼마나 감사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이동 침대 위에서 얻은 배움
검사를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별다른 이상도 없었고, 다시 평소와 같은 하루가 이어졌다. 밥을 먹고, 일을 하고, 글을 쓰고, 가족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늘 같은 일상의 하루였다. 하지만 마음은 조금 달라져 있었다. 평범한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동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던 그 짧은 순간. 어쩌면 그 시간은 내게 건강검진보다 더 큰 배움을 주었는지도 모른다. 오늘도 평범한 일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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