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유럽 곳곳에서는 오래된 교회 건물이 카페나 문화공간, 박물관 등으로 재활용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스스로를 ‘종교 없음(None)’이라고 밝히는 인구가 전체의 30%에 육박한다. 한국 역시 사정이 다르지 않다.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 무종교 인구가 처음으로 절반을 넘어선 데 이어, 최근 여론조사들은 그 비율이 60% 가까이 근접하고 있다. 특히 20, 30대의 무종교 비율은 70%를 웃돌아, 종교는 점점 더 젊은 세대와 멀어지고 있다. 한때 종교가 한 사회의 중심 질서였던 시대는, 이제 분명 저물어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변화를 근대화와 과학 발전이 가져온 자연스러운 결과로 설명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오늘날의 탈종교화를 충분히 설명할 수는 없다. 종교 바깥에서의 변화 못지않게, 종교 내부에서의 실패 역시 오늘의 현실을 만든 중요한 원인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뼈아픈 것은 종교의 권력화다. 성직자의 권위가 영적 정당성이 아니라 혈연과 재력, 조직 논리에 의해 유지되는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실망을 안겼다. 신앙 공동체를 위해 바쳐진 헌금과 자산이 사적으로 운영되고, 종교 조직이 거대한 사유 구조처럼 기능하는 장면은 ‘종교는 과연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지게 했다. 이는 몇몇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제도 자체가 안고 있는 병폐로 읽을 수밖에 없다.
더 심각한 것은 범죄와 은폐의 반복이다. 성직자에 의한 성추행과 성폭력, 도박과 폭행, 교단 내부의 파벌 다툼, 불투명한 재정 운영 등 불법·부당한 사건은 이미 낯설지 않은 뉴스가 됐다. 문제는 사건 자체에만 있지 않다. 더 큰 절망은 그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종교계가 피해자보다 가해자를 감싸고, 성찰과 쇄신보다 침묵과 봉합을 택해 왔다는 데 있다. 성스러움을 말하는 자들이 그 이름으로 약자를 억압하고 종교적 권위로 옳음을 억누르려 하며 공동체의 신뢰를 허물었다는 사실은 종교 자체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종교의 정치화 역시 외면할 수 없는 문제다. 일부 종교 집단은 선거철마다 특정 정파와 결탁해 조직적인 정치적 동원의 수단으로 기능해 왔고, 종교 강단이 성찰과 위로의 공간이 아니라 혐오와 배제의 언어를 정당화하는 장소로 변질되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신앙의 이름으로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차별을 정당화하거나, 종교 지도자가 공공연히 특정 정치 세력의 대변인을 자처하는 모습은 종교를 신뢰하던 이들에게도 깊은 피로감을 안겼다. 그 결과 젊은 세대는 더 이상 종교 안에서 도덕적 권위를 발견하지 못한다. 믿음을 강요하는 목소리는 남아 있지만, 따르고 싶은 삶의 모범은 점점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종교의 쇠퇴를 곧 인간의 영적 욕구가 사라졌다는 뜻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인간에게 종교는 단순한 교리 체계가 아니었다. 그것은 고통을 견디게 하는 언어였고, 공동체를 묶는 정서적 기반이었으며,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삶을 해석하게 해 주는 틀이었다. 종교는 인간에게 의미와 위로, 절제와 연대의 감각을 제공해 왔다.
오늘의 현대인은 교회와 성당, 사찰을 떠나 그 빈자리를 다른 방식으로 메우고 있다. 누군가는 심리상담실을 찾고, 누군가는 명상과 요가에 몰입하며, 누군가는 독서 모임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 기도가 명상으로, 설교가 철학 강의로, 종교 공동체가 느슨한 취미 공동체로 대체되는 흐름도 낯설지 않다. 인간이 더 이상 성스러움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된 것이 아니다. 다만 그것을 담아내는 형식과 그릇이 달라졌을 뿐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종교계는 가장 불편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 왜 사람들은 종교를 떠나는가? 왜 위로를 구하던 이들이 이제는 종교 밖에서 위안을 찾는가? 왜 공동체를 원하던 사람들이 신앙 공동체가 아니라 취미 공동체로 향하는가? 이 질문 앞에서 종교가 해야 할 일은 자기변명이나 자기연민이 아니라 자기개혁이다. 투명한 재정 공개, 불법·부당행위에 대한 무관용 원칙, 권력의 자발적 분산, 그리고 무엇보다 말이 아니라 삶으로 증명하는 윤리적 헌신 없이는 그 어떤 부흥의 언어도, 설법도, 교화 사업도 공허한 메아리에 그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종교를 떠난 사회 역시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신의 자리가 비었다고 해서 그 자리가 더 이상 필요 없어졌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은 여전히 의미를 갈망하고, 고통을 견딜 서사를 필요로 하며, 서로를 지탱할 공동체를 찾는다. 종교가 감당해 왔던 역할이 약해진 자리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으로 삶을 붙들고, 무엇으로 서로를 위로하며, 무엇으로 죽음과 상실을 견딜 것인가.
결국 질문은 종교의 쇠퇴 자체가 아니다. 더 본질적인 질문은 그 이후다. 종교가 물러난 자리를 무엇이 대신할 것인가. 그리고 그 빈자리를 메우는 책임은 이제 누구의 몫인가. 그동안 종교가 맡아 왔던 의미와 위로, 연대와 성찰의 몫은 점점 더 우리 모두의 과제가 되어가고 있다. 종교가 떠난 시대를 사는 인간은, 바로 그 질문 앞에서 다시 삶의 방식을 새로 배워야 한다.
이진희
서울대학교 대학원 졸업(교육학박사)
(현) 진해세화여자고등학교 교장
(전) 서울대학교 강사
(전) EBS 수능윤리 강사










